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김영하, 그는 이미 소설가로서 명성도 얻고 있을 때 [위대한 갯츠비]의 번역도 해낸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팟캐스트의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들어온 내게 그는 그렇게 낯선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아직 한 편의 작품도 직접 마주하지 않은 게으름에 부끄럽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그의 역량을 훔쳐보기로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 책은 중편소설이야 하지 않을까? 그리 길지 않고 어딘가 여백이 많은 소설 중 하나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문장으로 한 면을 다 채우지 않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행간을 가지게 하는 작가의 장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명료하고 반전이 있는 스토리가 반듯하며, 기억과 망상, 슬픔과 고독,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철학적 행간을 읽어내게 하는 소설이다.

 

 

70세 노인 김병수. 그는 25년전 살인을 마지막으로 평범히 지내왔다. 그에겐 은희라는 딸이 하나 있다. 그가 죽인 여자의 딸. 그런데 그는 지금 치매를 앓고 있다. 그래서 점차 사라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면서 지금 은희가 사랑하는 남자이자 현재 연쇄살인범의 용의선상에 있는 박주태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목표라 설정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난날은 더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현재의 기억은 자꾸 자꾸 잊어버리고 새롭게 느껴지는 치매. 그는 살인의 과정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생생히 기억해내지만 현재의 기억은 자꾸 지워가고 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본문 중에서>

 

 

그의 소설 처음과 마지막에 강조하는 반야심경의 이야기 다시한번 되뇌보지만 조금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무심코 외우던 반야심경의 구절이 이제 와 닿는다. 침대 위에서 내내 읊조린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 148p

 

 

속도감 있고 반전 있는 스토리,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맛본 책으로 이전에 출간된 그의 다른 책도 찾아봐야 할 듯하다. 한두 권 더 읽어봐야 조금은 심오한 그의 세계를 탐문할 수 있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