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의 최신작을 읽고 싶었던 한 켠에 미루어 두었던 작품 [높고 푸른 사다리].

이제야 내 손에 살포시 들어왔다. 여러 가지 이슈로 이름이 항상 뉴스지면에 오르내리긴 했지만 순전히 작가로서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도가니]이후 소설로는 좀 오래 된 듯하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때 14,000명을 기적적으로 구해낸 선장 마리너스의 실제 이야기, 그 후 뉴튼 수도원의 수사로서 살다가 뉴튼 수도원을 인수하러 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그 과정을 털어놓고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그것이 작가로 하여금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기인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삶. 사제의 길과 애틋한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요한의 믿음, 사랑, 정의, 죽음...... 그 의미들. 삶과 커다란 사랑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신부 서품을 앞둔 젊은 수사 요한, 그는 아빠스님의 조카인 소희와의 애틋한 사랑에 빠져 수도자의 길을 고민한다. 그러던 중 같은 길을 가던 친구 안젤로, 미카엘의 갑작스런 죽음은 커다란 충격을 갖게 된다. 미카엘은 무단으로 시위 현장에 뛰어드는 현실 세계의 정의를 부르짖다 경찰에 연행되어 아빠스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된다. 이때에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야학에 갔다 돌아오면서 차량 운전을 해 준 안젤로와 함께 새벽에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던 동료도 잃고 소희를 떠나보내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사제의 길을 무기력하게 걷게 된 요한.

 

과거 할머니의 흥남철수 때의 이야기를 통한 한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했던 할아버지의 희생적 사랑, 배의 선장으로써 위험을 무릎 쓴 구원의 사랑, 아빠스님의 사랑을 통해 이세상의 작고도 큰 사랑을 알아가게 된다.

공감하는 글귀, 되새김질 하고자 적어본다.

 

 

'비판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비판 속에 비판자의 비난이 교모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판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그 비판이 나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하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만일 그 비판이라는 것이 비난을 내포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염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회기해난 사람을 만들어냈을까? -68p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직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p165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호함이다. 모호함 중에서도 진한 불행의 기미를 가진 모호함이다. 기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그것도 그 사건의 여파에 대한 불신, 모호함 때문이며, 그보다 더, 가족의 죽음보다 더 실종이 고통스러운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차악의 희망인 체념조차 불가능하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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