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 -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죽음, 태어나는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예약된 삶을 살지만 마치 죽음이란 내 것이 아닌 양 나와는 먼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며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죽음을 부르는 질병과 사고가 항상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시한부 인생인데도 말이다.


죽음과 생명을 다룬 에세이는 많이 보았지만 소설의 형식으로 만나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며 지금 사는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랄까. 좀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의 소설이다. 투구를 쓰고 결박당한 듯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음산한 구름사이에 홀로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표지가 왠지 섬뜩하고 우울해 보이는 분위기다.


이 책은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 암환자들, 이를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인 두 남녀의 식물인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잘나가는 방송 PD지만 하루아침에 자동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강찬, 그는 3년을 꼬박 식물인간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나 이제 가족은 호흡기를 제거해 과학적 삶의 연장이 아닌 하늘에 뜻에 생명을 맡겨보려 한다. 강찬 역시 이런 식물인간의 삶보다 죽음을 더 소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건지 죽음이 멀어 그랬는지 여전히 자가 호흡으로 숨을 쉬며 살아가게 된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존엄사 논의가 이루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를 실행에 옮겨 뉴스가 되었던 어떤 자산가 할머니의 대한 이야기도 말이다.


어느 날 행복요양원이란 곳으로 이송된 강찬은 같은 병실에서 틱 현상도 존재하지 않는 식물인간인 소녀 찬강을 만나게 된다. 열일곱이란 꽃다운 나이에 식물인간이 되어 6년간 누워 있는 소녀다.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인 채로 1미터의 거리를 두고 침대에 누워있는 둘은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 ‘목소리 바라보기’라는 말이 있대요. 사실은 그 사람의 얼굴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의 목소리에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스타일, 개성, 인격 이런 게 다 들어있대요. 그래서 우리는 거울만 볼 게 아니라 가끔 우리 목소리를 바라 보는 게 중요하대요. 아저씨 목소리가 어떤지 들어봤어요? 모든 게 원망스럽고 짜증스럽고 절망스러운 아저씨 목소리, 정말 짜증나요.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든다고요.”

- p.168


짜증스런 강찬의 말투에 찬강이가 한 이 말이 가슴에 콕하고 박히는 느낌은 왜일까? 그건 평소 다른 이에게 들리는 내 목소리는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반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똥만 굴러도 까르르 웃던 십대에서 시원스럽게 웃어본 적이 언제인지, 혹시 지금의 내가 강찬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한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 사람이든 동물이든 행복요양원에 오는 식구들은 애달픈 사연 하나쯤은 반드시 있었다. -p.95

환자들을 가족처럼 돌보는 수간호사 용희, 자원봉사자 소연, 대학생 상혁, 서길자 여사님, 이칠현씨, 그리고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 죽음을 준비하고 바라보아야하는 그들의 마음 따뜻한 이야기 속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죽음에 대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다섯 가지 정도 된다. 첫째 누구나 죽는다는 것, 둘째 순서가 없다는 것, 셋째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 넷째 대신 할 수 없다는 것, 다섯째 미리 경험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진 죽음의 조건인데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도 달랐다. ‘마지막 저 세상으로 갈 때의 모습은 놀랍도록 이 세상에서 그가 살아간 모습과 닮아 있다’라고 했던가?

- p.388


있을 때 잘하란 말도 있다. 우린 모든 것이 갖추어지고 풍족할 때는 그 가치를 모른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불행이 찾아와서야 비로소 그 때가 행복이구나 그게 사랑이었어 하고 느끼는 아이러니처럼 죽음을 통한 삶의 여정이나 가치를 재고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갖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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