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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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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땐 오르한 파묵을 연상했었다.

하지만 역시 전혀 다른 우리 글을 가장 잘 쓴 우리 소설이었다.

 

사람이 그처럼 철저히 고독해 질수 있을까?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그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껴보는 것은 왜였을까?

 

c국으로 파견근무를 나가며, c국의 입국장에서 검역과정을 시작으로 소설의 문은 열린다.

본사로의 파견이 결정된 것은 오로지 그의 쥐를 잡는 과감한 솜씨때문이고, 그 솜씨는 c국에서의

또다른 삶의 복선이 된다.

구석구석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어찌보면 미래공상과학 소설같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은 사람의 소외를 담는다.

변함없이 반복되어 온 일상이 갑자기 구토의 원인이 된 그 옛날의 어느 소설처럼 일상으로부터 소외된 그의 낯설음이 끝날 때까지 따라다닌다.

 
한 계단씩 떨어져 가면서 이 보다 나은 삶이 바로 앞의 삶이었슴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그렇게 떨어져 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땐 소설이 끝나버린다.

지상에서의 또 다른 마지막 일상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그냥 또 다른 일상에서 아무 의미없이 마주치는 삶의 가벼움을 쉬이 받아넘기기만 하자는 것일까?

 

우리 앞에 이토록 고독한 삶이, 이 처럼 가벼운 삶이 그래서 공중에 부양해 버릴 것 같은 그 삶이 펼쳐진다면

받아들이는 것말고 뭘 할수 있을까?

 

 

소설은 사건을 열어놓고는 닫지 않고 마무리된다.

닫아야 될 그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고, 닫을 필요도 느끼지 못할만큼

무의미하게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다.

가슴에 정말 알수 없는 동의가 꿈틀되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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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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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한 자식들은 각자의 가정을 출가를 하여 각자의 가정을 가진다.

만약 이러한 자식들의 한꺼번에 가정과 사회에서 실패하고, 다시 어머니의 집에 들어온다면, 그래서 가족평균연령 49세의 고령화 가족을 만든다면....

 

갑갑하다. 정말 갑갑하다.

이런 갑갑한 상황이라면 난 두 손을 모두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갑갑한 현실에서도 소소한 사건들이 생겨 그들을 살아가게 한다.

그들의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크게 느끼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더욱 젊어진다.


중년의 자식들은 어머니에겐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가장 절망해야 할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다시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책을 덮고난 후 이 말을 가장 먼저 되뇌이게 된다.

 
천명관의 소설은 끊어 읽기가 안된다.

저녁을 먹고 편안히 누워서 책을 펼치면 새벽이 되어 책을 덮을 때까지 끊을 수가 없다.

개인적 취향이 강한 문체라서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의 글은 '냉소'가 담겨있다.

사회를 향해 맘껏 비웃어 주는 그런 '비웃음'이 있다. 
 

이야기는 너무 사소하지만, 왠지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가 이끄는대로 따라만 가게 된다.  

그래서 끝나고 나면 마치 영화를 한편 본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다섯명의 고령화 가족이 절망의 최고점에서 만나 어떻게 끝이 날까?

희망으로 끝이 날깤? 아니면 더욱더 절망할까?

결론은 열려있다.

끝나는 상황을 보고 각자가 생각하면 그만이다.

 

'가족애'라는 것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지만, 귀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아주 특이하게 귀찮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가족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며 사랑하고, 싸우고 하는 삶자체가 가족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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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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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가 사람을 홀린다고 유명한 작가 천명관의 작품을 이제서야 보았다. 

한 여성이 한 남성으로 그리고, 흙벽돌. 

무협지같기도 하고, 대하소설같기도 한 왠지 낯설지만 그냥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너무도 분명한 시트콤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나의 밤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바람이 불어서 마을을 떠났고 그 바람이 결국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고, 그 바람으로 그녀는 아니 그는 또다시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어디서 시작된 바람일까? 

우리의 인생도 이런 바람에 이끌려 살아 지는 건 아닐까? 

삶은 이처럼 무한한 얘기들로 넘쳐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의 원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바람때문이다. 

천명관. 

그의 문체가 너무 익살스럽고, 세상의 살집을 꼬집어 주어서 너무 시원했다. 

넘쳐나는 재기를 어디서 가져왔을까 

아마도 바람때문이겠지. 

오늘은 정말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아니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바람에 날 태워 멀리 멀리 날려 보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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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융 심리학이 밝히는 내 안의 낯선 나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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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대해 아주 어릴 때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가 바로 이 세상이라고. 

그래서 이 세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라고. 

하지만 난 그림자 세상에 살고 있고 여기를 탈출하려면 죽음이라는 의식을 통과해야 

나갈 수 있는 것인데, 그럼 난 무엇을 해야하지? 

플라톤의 동굴비유에서 느낀 학생시절의 생각의 단편들이다. 

 

이제 또 한번 그림자를 만난다. 

이 사람은 외부로 들어나 있는 자아가 다가 아니라고 한다. 

내 속에 그림자가 있다한다. 

이건 허위나 허상, 뭐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인정해야 할 또 다른 내 자아란다. 

이 그림자는 고도의 도덕적인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빛이라는 그 빛에 지는 그림자라고 한다. 

이런 에너지는 인간 사회에서 배제된 어떤 것이기 때문에 마음 구석에서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것이란다. 그래서 어느 순간 핵폭발처럼 터져 나온다고 한다. 전쟁, 테러, 범죄, 등등 수많은 

허용되지 않은 행위의 모습을 띠고서... 

그래서 그 그림자를 껴안아야 하고, 그래야 균형잡힌 자아를 만난다고 한다. 

 

세상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상반되는 두 개념이 항상 존재한다. 

이건 아주 오래전에 알던 것이다. 

그냥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모순이니까. 

세상에서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와 그 어떤 방패도 다 뚫는 창은 함께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게 있는 게 세상이다. 

그런 모순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사는 방법이다. 

내 마음 속에도 이런 모순이 있다. 한 없이 선한 모습과 한 켠에 울고 있는 그림자. 

그 그림자를 잘 못 버려두면 나중에 어떤 이에게 이 그림자를 내려 놓을지 모른다. 

어떤 폭력적인 모습으로 그림자를 내려 놓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 더 큰 그림자를 

만들지... 

나는 오늘 내 그림자를 보았다. 

울고 있는... 

그래서 그 아이를 조용히 일으켜 내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제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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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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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죽였다 

이미 범인이 밝혀져 있는 맥빠진 미스테리를 어떻게 전개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강했다. 

결과는 "참 잘했어요" 이다. 

사건간의 유대, 인물간의 유대가 진행될 수록 하나씩 밝혀져가는 잘 짜여진 미스테리이다. 

그리고 지식이라는 것은 결국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 할 수없는 것이고, 그런 절대적은 자리는 

권력이 함께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해 준다. 

진리를 훔친 현자, 진리를 발견한 제자 

숨기고, 밝히고. 

이 두가지 상반된 에너지가 책 전체를 흥미롭게 만든다. 

역시 미스테리는 반전이 묘미인지라 이 책에 걱정된 것은 그 반전이라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있다. 아주 작지만 다 읽고 난 후 그것만이 남는 반전이 있다. 

그것을 내가 있는 이 곳에서 바라본 그리스인지라 동양적인 표현을 빌려 "인연"이라는 반전이라 

해야 겠다. 아니 "악연"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2500여년 전의 그리스 

아마 지금처럼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진리들이 활보했을까? 

알기 때문에 권력이 생기는가, 아니면 권력이 있어 알게 되는 것인가? 

아는 것이 힘이다 반대로 힘이 아는 것이다. 

권력과 진리와의 관계,  

철학자처럼 형이상학적으로 고민하지 말고 스릴 넘치는 이 책과 함께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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