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전쟁 - 우리는 왜 이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가
요한 하리 지음, 이선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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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전쟁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약에 대한 전쟁으로, 국가가 마약 사용자 그리고 중독자와 벌이는 전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약을 위한 전쟁으로, 범죄자들이 마약 거래를 장악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전쟁이다.


1930년, 알코올과의 전쟁을 벌이다 대패하여 의기소침해진 미국 연방마약국의 수장으로 '해리 엔슬링어'가 임명되었다. 해리는 흑인, 멕시코인, 중국인들이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그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백인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재즈를 대마초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또 다른 증거라고 여겼고, 중국인들이 백인 소녀들을 아편굴로 끌어들여서 타락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약을 몽땅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마약 판매가 불법이 되기 전 마약 복용자들은 동네 약국에서 모르핀과 헤로인 등 아편제를 싸게 구입했다. 1914년 헤로인과 코카인을 금지하는 해리슨마약법이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은 마약 중독자들을 처벌이 아니라 의사의 진로에 맡겨야 한다고 판결했고, 의료 전문가들은 마약을 계속 처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무료 진료소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2만 명 정도의 의사들이 기소되었고, 95퍼센트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의사들을 제압한 후 해리는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위태롭게 하기 위해 마약을 대량으로 유입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전 세계에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엔을 찾아가 다른 나라들을 위협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마약이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었지만 1960년대가 되자 모든 나라에서 마약이 금지되었다.

해리 엔슬링어가 30년 가량 연방마약국 국장을 지내는 동안 마약과의 전쟁은 전세계로 확대되었고, 지금까지 10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 동안 두 가지 범죄가 급증했다. 첫째, 마약을 밀수하는 폭력 조직이 생겨났다. 둘째, 마약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고, 중독자들이 마약을 계속 얻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강간범을 많이 체포하면 강간사건이 줄어든다. 폭력적인 인종주의자를 많이 체포하면 인종차별 폭력이 줄어든다. 그런데 마약상을 아무리 많이 체포해도 마약 거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대신 살인이 늘어난다. 새로운 두목 자리를 놓고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약이 금지되면 도덕적 제약을 가장 먼저 버리는 사람이 마약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2006년부터 2012년의 멕시코 마약 전쟁 기간 공식적으로 최소 6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 수는 수십 만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마약 사건으로 압류한 소유물은 경매로 처분할 수 있고 그 수익의 80퍼센트는 지역 경찰의 예산으로 들어간다. 어느 시기든 미국에서는 15~35세 흑인 남성의 40~50 퍼센트 정도가 감옥에 있거나, 보호관찰을 받거나,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그들 중 마약사범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약에 반대하는 관료들로 구성된 미국 정부가 벌인 '마약에 대한 전쟁'은 결국 최근 몇 세기 중 가장 강력한 '마약을 위한 전쟁'을 만들어냈다. 마약은 '의사들 손'에서 '폭력배들 손'으로 옮겨갔고, 마약 중독은 공중보건의 문제에서 형사사법의 문제로 변화했다. 연방마약국이 마피아의 뇌물을 받고 무료 진료소를 폐쇄했다고 주장한 의사 '헨리 윌리엄스'는 마약과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미국에서 마약 밀수 사업의 규모가 50년 안에 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마약 사용자 중 90퍼센트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일상의 생활을 잘 해나간다. 문제를 일으키고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10퍼센트 정도다. 마약 중독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린 시절에 정신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평생 자기혐오에 빠져 사는 경우가 많고, 그런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환각 물질을 찾아서 의지하게 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땅과 문화를 빼앗겼을 때 집단 알콜중독에 빠졌다. 18세기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살던 땅에서 쫓겨나 도시로 내몰렸을 때 알콜중독에 빠졌다. 1970, 80년대 미국 저소득층 주민들은 공장의 일자리를 잃고 코카인을 피우기 시작했다. 1980, 90년대 미국 농부들은 농산물 시장이 쪼그라들자 약물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고립감을 느낄때 위안거리를 찾고 중독에 빠진다. 중독은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중독은 외로움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다. 중독은 적응의 문제다. 중독자들은 마약 때문에 부적응을 겪는 것이 아니라 부적응 때문에 마약에 의지한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문제다.

배트남전 종전 직전 미국 사회는 베트남에서 마약이 중독된 수많은 군인들이 돌아오면 거리마다 마약중독자들이 넘치게 될 것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돌아온 중독 군인들의 95퍼센트는 1년이 되지 않아 그냥 마약을 끊었다.

스위스는 헤로인 처방 진료소에서 중독자가 원하는 헤로인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에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점점 더 많은 양의 헤로인을 요구한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투여량을 줄여간다. 마약중독자들은 얼마든지 오랫동안 이 진료소를 이용할 수 있지만, 평균 3년 정도만 찾아온다. 그 기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매일 마약을 찾는 사람은 1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진료소가 문을 연 후 헤로인 처방을 받은 사람들의 차량 절도는 35퍼센트, 강도와 도둑은 80퍼센트 줄어들었다. 마약 판매는 94.7 퍼센트 즐어들었고, 노숙자가 사라졌다. HIV 신규 감염자 중 마약 주사 비율이 68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감소했다. 마약중독자 한 명을 체포하고 처벌하는데 하루 44스위스프랑이 들어가지만, 헤로인 처방 진료소는 환자 한 명당 하루 35스위스 프랑의 비용을 들인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포르투갈에서는 2001년 마약 혁명을 일으켰다. 이제 포르투갈에서는 마약 사용자와 중독자에 대한 박해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마약 판매는 불법이지만, 마약 사용은 금지되지 않는다. 미국과 반대로 마약 예산의 90퍼센트를 예방과 치료에 사용하고 10퍼센트만 처벌에 사용한다.

10년이 지난 후 포르투갈의 마약 사용률은 유럽 평균보다 낮고, 이웃한 스페인보다 훨씬 낮다. 마약을 주사하는 사람은 절반으로 줄었고, 주사로 인한 HIV 감염률은 52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떨어졌다. 중독자가 줄어들었고, 헤로인 사용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중독은 처벌해야 할 범죄가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 중독의 반대는 마약 끊기가 아니라 관계 맺기다. 혼자라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 중독은 절망의 표현이고,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다. 이런 치유의 노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마약과의 전쟁이다. 마약 전쟁은 중독자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중독의 원인에 대한 전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해리 엔슬링어는 한때 정신이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했을 정도로 편집증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나중에는 그 자신이 마약 사용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약상 역할을 했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마약중독자인 매카시 의원에게는 몰래 마약을 공급했다. 은퇴 후 협십증에 걸리자 그는 매일 모르핀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설득되고 싶었다. 인종, 불평등, 지정학처럼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들을 몇몇 가루와 알약의 문제로 치부해서 세상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런 일은 십자군 전쟁부터 마녀사냥, 그리고 오늘날까지 되풀이되고 있다.

해리가 물러나고 벌어진 1970년 토론회에서 정신과 의사 '조엘 포트'는 해리 엔슬링어를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은 이 나라가 과학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를 중세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도록 이끌어왔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약과는 무관한 나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유독 사춘기의 방황이 심했던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느꼈었고, 그들에 대해 혐오나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억들은 다 잊혀졌고, 나는 10대를 보면 눈쌀을 찌푸리며 외면하는 아저씨가 되었다.

내가 마약에 대해 아는 것은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마약 복용자나 중독자를 실제로 접한 적도 없고, 마약의 폐해를 실제로 목격한 적도 없고, 마약 판매상을 실제로 본 적도 없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마약은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 관점은 고스란히 내 안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은 또 다른 관점을 접하곤 했다. 미국 정부가 효과가 전무한 마약 전쟁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재정의 일부라도 마약 치료에 돌리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판적인 시각.

법정 소설의 대가 '존 그리샴'의 소설 '수호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교도소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거대 고용주이다. '미국에서는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교도소에 갇혀 있다. 이를 운영하려면 1백만 명의 직원과 800억 달러의 세금이 필요하다.' 미국 교도소의 상당수는 민간 기업이고,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흑인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마약 사범들이다. 그렇다고 백인들이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가 느꼈던 것은 미국의 교도소와 인종 문제와 마약 문제는 서로 무관한 듯 하면서도 얽혀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한 갑씩 30년 간 담배를 피우다가 끊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중독에 대한 화학물질의 강한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끊은 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심리적, 정신적, 문화적 요인이 화학물질 이상으로 중독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마약과 중독자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낯설고 불편하고 난해한 문제를 접했을 때 제일 쉽고 명확한 건 혐오와 기피다. 답답하고 어려운 건 고민과 성찰이다. 그러나 나는 고민과 성찰이야 말로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겪어본 적도 없이 수십 년 간 혐오와 공포로 다져온 마약 문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이 책 '마약전쟁'은 고민과 성찰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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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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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은 거의 고유 명사다. 자칭 문명 국가의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을, 중장년층이라면 숀 코네리나 로저 무어를 통해서, 좀 더 젊은 사람이라면 피어스 브로스넌이나 대니얼 크레이그를 통해서 접했을 그 유명한 '제임스 본드'의 별칭이다. 그러나 본래 007은 고유 명사가 아니다. 살인 면허 번호다.

1953년,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은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살인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면허 번호 00을 만든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에게 7번째 살인 면허를 발급한다. 007은 일곱 번째로 발급된 살인 면허 번호다.

상상력을 살짝 열어서 한 발짝만 더 나가보면 어떨까? 살인 면허를 바우처로 발급하면 어떨까? 제임스 본드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 살인 쿠폰을 구매할 수 있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거다. 3만 8482유로. 원화로 65,908,506원. 살인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금액일지라도 구호만의 평등이 아니라 거의 실효적 평등에 가까운 것 아닐까?

2022년, 영국 소설가 '네드 보먼'은 소설 '독쑤기미'에 그런 세상을 담았다. 다만 살인 면허가 아니라 멸종 면허다. 어떤 생물을 지구상에서 멸종시키고 싶은 회사가 있다면 멸종 크레딧을 구매하면 된다. 너무 비현실적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상에서는 이미 '탄소 배출권'이 또 하나의 산업이 되어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5년 11월 현재 국내 탄소배출권은 톤당 1만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진작부터 인류에 대한 살인 면허를 거래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포식성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살인도, 멸종도, 지구 파괴도 모두 시장으로 집어 삼킨다. 그러면서도 시장의 상인이면서 동시에 손님인 우리들에게 최면을 건다. 우리는 자신이 시장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멸망으로 달려가는 세상을 바꾸는 대신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주 능숙하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세계멸종위원회는 '멸종'의 기준을 바꾸려고 한다. 어떤 종이 지구상에서 모든 개체가 사라지더라도, DNA 스캔, 행동 기록, 서식 자료가 남아 있다면 그 종은 멸종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 멸종은 그저 산업일 뿐이다. 사람도, 생명도 다 상품인 세상에서 자연마저 상품인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멸종 크레딧으로 투자라는 도박을 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헬야드' 또한 그런 평범한 사람의 하나다. 광업 회사 직원인 헬야드의 담당 구역에는 '독쑤기미'라는 멸종 직전의 물고기가 있다. 개발이 시작되면 독쑤기미는 멸종될 것이고, 그의 회사는 해당하는 멸종 크레딧을 납부하면 된다. 독쑤기미의 지능이 없다면 1개, 지능이 있다면 13개를 납부해야 한다. 그를 위해 그는 회사의 멸종 크레딧 13개를 갖고 있다.

세계멸종위원회가 멸종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는 계획을 미리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관리하는 회사의 멸종 크레딧을 팔고 현금을 챙긴다. 곧 계획이 공표되고 멸종 크레딧 가격이 폭락하면 그때 다시 크레딧을 구입해서 회사에 돌려주면 된다. 일종의 공매도인 것이다. 그는 꿈에 부푼다. 그렇게 그는 영리한 개미 투자자다.

그러나 개미 투자자 위에는 언제나 개미핥기 같은 작전 세력이 있는 법. 주인공이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는 어느 날 사고가 터진다. 세계멸종위원회의 데이터베이스 센터가 해킹 당하고, 센터에 보관되어 있던 모든 생물종의 DNA와 자료가 소멸된다. 멸종 크레딧 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부자의 꿈은 감옥의 공포로 바뀐다. 주인공은 회사가 알기 전에 어떻게든 13개의 멸종 크레딧을 채워 넣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작가 네드 보먼은 1985년생이다. 젊은 나이의 작가 답게 책도 젊고 산뜻하다. 나처럼 칙칙하고 우울하지 않다. 담고 있는 주제는 무겁고 암울해도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경쾌하고 매끄럽다. 이제 낡은 나는 그래서 오히려 몰입하기 어렵고 헷갈렸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생물종 이름과 유럽의 지역명과 사건들. 그것들이 작가의 지어낸 허구의 것인지 실제의 것들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이야기의 분위기와 감성도 나에게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반가운 것이 하나 있었다. 영화 '나의 사촌 비니'. 조 페시와 마리사 토메이가 주연한 코메디 영화 나의 사촌 비니가 책의 앞에서 그리고 뒤의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 번 거론된다. 어떤 장치로 이 영화 얘기를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젊은 시절 내가 재미있게 봤던, 그러나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1992년 영화를 이 젊은 작가가 의미심장하게 다룬 것 자체가 반가웠다.

책은 블랙 코미디다. 멸종과 환경 뿐만 아니라 인공 지능, 경제 시스템, 미래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하고 산만했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어 오는 좋은 이야기의 뻔한 책들과 트렌디하고 독특하게 뻔한 책들에 질려있던 나에게 이 책은 그 소재와 주제 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고 강렬했다.

"동물 학살은 거대한 공동 프로젝트였다. 어쩌면 인류의 기본적인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기여하는 자선 활동이나 전쟁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여는 매우 단편적이고 간접적이라서, (...) 희생자의 의식에 깊은 인상을 남길 기회가 없었다." (343쪽)

작가의 모든 생각을 내가 알 수는 없다. 작가의 모든 이야기에 내가 다 공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에게 깊이 공감하는 것이 있다. 망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류다. 인류는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섰지만, 자연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인류는 종말을 맞이할 겁니다. 그 후 인류가 남긴 상처가 사라질 것입니다. 생물다양성은 다시 회복될 겁니다. 새로운 종들이 탄생할 것이고, 그중 상당수는 사라진 종들만큼이나 놀라운 종이 될 것입니다."(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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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는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에 침묵하는가 - 잔해 속의 그리스도
문터 아이작 지음, 김상기 옮김 / 동연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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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학살이고 인종 청소다. 전쟁이 아니라 반인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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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질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클라라 E. 마테이 지음, 임경은 옮김, 홍기훈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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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도 안 되는 호황 기간을 제외하면, 긴축은 현대 자본주의를 내내 지배해왔다. 자본주의가 있는 곳에는 늘 위기가 따르고, 이 위기 때마다 긴축이 등장했다. 긴축은 역사적으로 부채 감소, 성장 촉진 등 정해진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축은 계속 시행되어왔고, 긴축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보루였다. 그러나 긴축은 저성장이나 고인플레이션 같은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긴축의 진짜 목적은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 경제지표가 회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항의와 노조의 파업을 틀어막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세계 1차 대전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적 각성을 이끌었다. 전쟁 기간 모든 참전국 정부는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느라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 개입주의는 임금 관계와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계급제 사회의 정치적 선택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쟁이 끝난 후 유럽 노동자들은 강력하고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신념을 표출했다. 유럽 전역에서 유례없는 민주적 격동이 일어나고 통화 인플레이션이 고조될 무렵, 경제 관료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긴축'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긴축은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라는 절대 진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긴축은 다수의 노동자에서 소수의 저축자, 투자자에게로 자원을 이동시켰고, 이는 대중들에게 경제 생산의 억압적 조건을 견디라는 무언의 강요였다. 이러한 순응 요구는 자본주의를 유일한 최선으로 묘사하는 경제이론 전문가들에 의해 더욱 확고해졌다. 긴축이 그토록 효과적인 이유는 '근면'과 '검약'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시대부터 찬양된 이 미덕은 후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전후 경제 위기를 시민권이 과하게 신장한 탓으로 돌렸다. 그 결과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약해졌고 경제적 희생, 절제, 근면, 임금 삭감을 통해 각자도생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을 축적하고 경제적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유럽 정부와 중앙은행은 부유층의 자본 축적을 돕기 위해 노동계급에 긴축을 강요했다. 역진적 과세를 통해 소수 부유층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예산 삭감을 통해 공공 자원을 대다수 민중에서 부유층에게 전환하였고, 통화 긴축을 통해 부유층의 재산 가치를 높였고, 산업 긴축을 통해 수직적 임금 관계를 강화하고, 임금을 억제하였다.

긴축과 기술관료제 사이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강압적 정책으로 합의를 꾸집어내려 한 20세기 초의 노력은 성공했고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현실로 이어지는 중이다. 경제 위기는 늘 반복되는데도, 새로운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해결책을 고안하라고 부름을 받는 사람은 여전히 경제학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은 임금 삭감, 노동시간 연장, 복지 축소 등 항상 노동자가 가장 큰 고통을 떠안는 방식이다.

1920년대나 지금이나 긴축의 승자는 언제나 소수의 부유층이다. 최상위층 1%는 배당금, 이자 등 불로소득으로 살아간다.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나머지 인구는 패자가 되었다.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핏은 말한다. "계급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투쟁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속한 부자 계급이다. 게다가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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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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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유부남 아니에요?" 그녀가 물었다.
..........................................................
우리는 비상구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와 주차장으로 가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이르자마자 입을 맞췄다. 키스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잊고 있었다. 내 품에 안기고 싶어 하는 사람을 품에 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잊고 있었다. 내 손길에 녹아내리는 사람, 내가 자신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주기를 바라는 사람, 내 손이 더 멀리까지 닿기를, 더 심하게 밀어붙이기를 바라는 사람, 그럴 때 작게 소리를 내는 사람,
...........................................................
이것은 욕망이 아니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고 죽는 인간. 지금 이곳에 나는 살아 있었다.
(31 쪽)


아내였다. 혈관의 피가 멈추는 기분으로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가 힘들게 말했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내가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던 여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는 소리뿐이었다. 그녀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가 숨을 몰아쉬고는 또 엉엉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내가 말했다. 메리는 거의 숨도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당신을 정말 사랑해. 미안해"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곧바로 다시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45쪽)

스무 살 시절에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랑은 정의 내리기에는 너무나 가슴 벅찼다. 규정 짓기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했다. 담아두기에는 너무나 뜨거웠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파괴적이었다. 함께하기에는 너무나 아팠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했다.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어지러웠다.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사랑은 나를 부드러운 미풍에 실어서 짓무른 꽃내음 가득하고 햇살 따사로운 공중으로 둥실둥실 떠올려 주었다. 그리고선 변덕스럽게 나를 끌어내려 쓰러뜨리고 굴리고 짓밟고 모욕하고 더럽혔다. 사랑은 나를 오물 속에 내동댕이쳤다. 그러고 나서도 사랑 그놈은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랑은 숭고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원초적이고, 파괴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관대하고, 아프다고 하기에는 너무 요란하고, 달콤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계산적이고,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어지럽다고 하기에는 너무 맹목적이다.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찾기에는 나는 너무 비루하고, 누추하고, 탐욕스럽다. 이제 사랑마저 내게 오면 부끄러운 무엇이 된다. 그 정도로 나는 더럽혀져 살아왔다. 내 손으로.


도서관이었다. 다시 영미소설 신작 코너였다. 작가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에단 호크' 그 에단 호크인가? 책을 뽑았다. 맞다. 그 에단 호크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그 여린 소년, '가타카'의 그 절박한 젊은이, '트레이닝 데이'의 그 거친 형사, '비포 시리즈'의 그 에단호크, 그가 지은이였다. '톰 행크스'의 '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를 보았을 때처럼 부러움과 호기심, 그리고 질투심이 확 밀려왔다.

이 책은 에단 호크가 쓴 소설이다. 연극에 대한 얘기고, 예술에 대한 얘기고, 사랑에 대한 얘기고, 상실에 대한 얘기고, 위로에 대한 얘기고, 치유에 대한 얘기고, 이별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지루한 얘기고, 뻔한 얘기고, 진부한 얘기다.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얘기다. 그렇게 삶은 상투적이다.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영화 배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30대 후반의 남자 영화 배우, 세계적인 록스타를 부인으로 두고서 한 순간 일탈을 한 영화 배우. 그로 인해 이혼을 겪게 되고, 덕분에 온 세상의 조롱을 받는 유명한 남자 배우. 그런 그가 뉴욕의 연극 무대에 서는 이야기다. 그렇게 연기를 통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책을 잡고 있으면 자꾸 눈이 감겼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얘기 같았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지루했다. 그러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책을 다 덮은 지금 내 가슴은 따뜻하게 벅차오른다.

책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 얘기만 말하련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으련다. 다른 얘기들까지 하는 건 나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 사랑에 대한 얘기로 읽었듯이, 다 읽은 지금 사랑의 얘기로만 기억하겠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 다 읽은 지금 나에게 이 얘기는 사랑 얘기가 아니다. 이 얘기는 욕망에 대한 얘기고, 고통에 대한 얘기고, 실존에 대한 얘기다. 삶은 그렇게 혼란스럽다. 최소한 나에게는.

"우리 둘 다 서로를 놓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미친 듯이 서로를 사랑했다. 수많은 젊은 연인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시를 쓰고, 별을 보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밤을 꼬박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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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달플 때도 있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하기를 잘했다 싶기도 하고, 끝나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이 모든 감정이 어떻게 동시에 진실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정말로 진실이었다"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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