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전쟁 - 우리는 왜 이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가
요한 하리 지음, 이선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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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전쟁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약에 대한 전쟁으로, 국가가 마약 사용자 그리고 중독자와 벌이는 전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약을 위한 전쟁으로, 범죄자들이 마약 거래를 장악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전쟁이다.


1930년, 알코올과의 전쟁을 벌이다 대패하여 의기소침해진 미국 연방마약국의 수장으로 '해리 엔슬링어'가 임명되었다. 해리는 흑인, 멕시코인, 중국인들이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그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백인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재즈를 대마초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또 다른 증거라고 여겼고, 중국인들이 백인 소녀들을 아편굴로 끌어들여서 타락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약을 몽땅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마약 판매가 불법이 되기 전 마약 복용자들은 동네 약국에서 모르핀과 헤로인 등 아편제를 싸게 구입했다. 1914년 헤로인과 코카인을 금지하는 해리슨마약법이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은 마약 중독자들을 처벌이 아니라 의사의 진로에 맡겨야 한다고 판결했고, 의료 전문가들은 마약을 계속 처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무료 진료소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2만 명 정도의 의사들이 기소되었고, 95퍼센트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의사들을 제압한 후 해리는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위태롭게 하기 위해 마약을 대량으로 유입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전 세계에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엔을 찾아가 다른 나라들을 위협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마약이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었지만 1960년대가 되자 모든 나라에서 마약이 금지되었다.

해리 엔슬링어가 30년 가량 연방마약국 국장을 지내는 동안 마약과의 전쟁은 전세계로 확대되었고, 지금까지 10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 동안 두 가지 범죄가 급증했다. 첫째, 마약을 밀수하는 폭력 조직이 생겨났다. 둘째, 마약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고, 중독자들이 마약을 계속 얻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강간범을 많이 체포하면 강간사건이 줄어든다. 폭력적인 인종주의자를 많이 체포하면 인종차별 폭력이 줄어든다. 그런데 마약상을 아무리 많이 체포해도 마약 거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대신 살인이 늘어난다. 새로운 두목 자리를 놓고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약이 금지되면 도덕적 제약을 가장 먼저 버리는 사람이 마약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2006년부터 2012년의 멕시코 마약 전쟁 기간 공식적으로 최소 6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 수는 수십 만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마약 사건으로 압류한 소유물은 경매로 처분할 수 있고 그 수익의 80퍼센트는 지역 경찰의 예산으로 들어간다. 어느 시기든 미국에서는 15~35세 흑인 남성의 40~50 퍼센트 정도가 감옥에 있거나, 보호관찰을 받거나,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그들 중 마약사범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약에 반대하는 관료들로 구성된 미국 정부가 벌인 '마약에 대한 전쟁'은 결국 최근 몇 세기 중 가장 강력한 '마약을 위한 전쟁'을 만들어냈다. 마약은 '의사들 손'에서 '폭력배들 손'으로 옮겨갔고, 마약 중독은 공중보건의 문제에서 형사사법의 문제로 변화했다. 연방마약국이 마피아의 뇌물을 받고 무료 진료소를 폐쇄했다고 주장한 의사 '헨리 윌리엄스'는 마약과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미국에서 마약 밀수 사업의 규모가 50년 안에 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마약 사용자 중 90퍼센트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일상의 생활을 잘 해나간다. 문제를 일으키고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10퍼센트 정도다. 마약 중독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린 시절에 정신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평생 자기혐오에 빠져 사는 경우가 많고, 그런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환각 물질을 찾아서 의지하게 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땅과 문화를 빼앗겼을 때 집단 알콜중독에 빠졌다. 18세기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살던 땅에서 쫓겨나 도시로 내몰렸을 때 알콜중독에 빠졌다. 1970, 80년대 미국 저소득층 주민들은 공장의 일자리를 잃고 코카인을 피우기 시작했다. 1980, 90년대 미국 농부들은 농산물 시장이 쪼그라들자 약물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고립감을 느낄때 위안거리를 찾고 중독에 빠진다. 중독은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중독은 외로움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다. 중독은 적응의 문제다. 중독자들은 마약 때문에 부적응을 겪는 것이 아니라 부적응 때문에 마약에 의지한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문제다.

배트남전 종전 직전 미국 사회는 베트남에서 마약이 중독된 수많은 군인들이 돌아오면 거리마다 마약중독자들이 넘치게 될 것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돌아온 중독 군인들의 95퍼센트는 1년이 되지 않아 그냥 마약을 끊었다.

스위스는 헤로인 처방 진료소에서 중독자가 원하는 헤로인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에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점점 더 많은 양의 헤로인을 요구한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투여량을 줄여간다. 마약중독자들은 얼마든지 오랫동안 이 진료소를 이용할 수 있지만, 평균 3년 정도만 찾아온다. 그 기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매일 마약을 찾는 사람은 1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진료소가 문을 연 후 헤로인 처방을 받은 사람들의 차량 절도는 35퍼센트, 강도와 도둑은 80퍼센트 줄어들었다. 마약 판매는 94.7 퍼센트 즐어들었고, 노숙자가 사라졌다. HIV 신규 감염자 중 마약 주사 비율이 68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감소했다. 마약중독자 한 명을 체포하고 처벌하는데 하루 44스위스프랑이 들어가지만, 헤로인 처방 진료소는 환자 한 명당 하루 35스위스 프랑의 비용을 들인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포르투갈에서는 2001년 마약 혁명을 일으켰다. 이제 포르투갈에서는 마약 사용자와 중독자에 대한 박해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마약 판매는 불법이지만, 마약 사용은 금지되지 않는다. 미국과 반대로 마약 예산의 90퍼센트를 예방과 치료에 사용하고 10퍼센트만 처벌에 사용한다.

10년이 지난 후 포르투갈의 마약 사용률은 유럽 평균보다 낮고, 이웃한 스페인보다 훨씬 낮다. 마약을 주사하는 사람은 절반으로 줄었고, 주사로 인한 HIV 감염률은 52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떨어졌다. 중독자가 줄어들었고, 헤로인 사용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중독은 처벌해야 할 범죄가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 중독의 반대는 마약 끊기가 아니라 관계 맺기다. 혼자라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 중독은 절망의 표현이고,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다. 이런 치유의 노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마약과의 전쟁이다. 마약 전쟁은 중독자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중독의 원인에 대한 전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해리 엔슬링어는 한때 정신이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했을 정도로 편집증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나중에는 그 자신이 마약 사용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약상 역할을 했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마약중독자인 매카시 의원에게는 몰래 마약을 공급했다. 은퇴 후 협십증에 걸리자 그는 매일 모르핀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설득되고 싶었다. 인종, 불평등, 지정학처럼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들을 몇몇 가루와 알약의 문제로 치부해서 세상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런 일은 십자군 전쟁부터 마녀사냥, 그리고 오늘날까지 되풀이되고 있다.

해리가 물러나고 벌어진 1970년 토론회에서 정신과 의사 '조엘 포트'는 해리 엔슬링어를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은 이 나라가 과학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를 중세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도록 이끌어왔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약과는 무관한 나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유독 사춘기의 방황이 심했던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느꼈었고, 그들에 대해 혐오나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억들은 다 잊혀졌고, 나는 10대를 보면 눈쌀을 찌푸리며 외면하는 아저씨가 되었다.

내가 마약에 대해 아는 것은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마약 복용자나 중독자를 실제로 접한 적도 없고, 마약의 폐해를 실제로 목격한 적도 없고, 마약 판매상을 실제로 본 적도 없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마약은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 관점은 고스란히 내 안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은 또 다른 관점을 접하곤 했다. 미국 정부가 효과가 전무한 마약 전쟁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재정의 일부라도 마약 치료에 돌리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판적인 시각.

법정 소설의 대가 '존 그리샴'의 소설 '수호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교도소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거대 고용주이다. '미국에서는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교도소에 갇혀 있다. 이를 운영하려면 1백만 명의 직원과 800억 달러의 세금이 필요하다.' 미국 교도소의 상당수는 민간 기업이고,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흑인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마약 사범들이다. 그렇다고 백인들이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가 느꼈던 것은 미국의 교도소와 인종 문제와 마약 문제는 서로 무관한 듯 하면서도 얽혀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한 갑씩 30년 간 담배를 피우다가 끊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중독에 대한 화학물질의 강한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끊은 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심리적, 정신적, 문화적 요인이 화학물질 이상으로 중독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마약과 중독자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낯설고 불편하고 난해한 문제를 접했을 때 제일 쉽고 명확한 건 혐오와 기피다. 답답하고 어려운 건 고민과 성찰이다. 그러나 나는 고민과 성찰이야 말로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겪어본 적도 없이 수십 년 간 혐오와 공포로 다져온 마약 문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이 책 '마약전쟁'은 고민과 성찰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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