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한 사람은 나쁜 시스템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1950년 영국 인구 중 임상적으로 비만인 사람은 1퍼센트 미만이었다. 요즘은 그 수치가 28퍼센트에 이른다. 그 사이에 영국 대중의 의지력이 완전히 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변한 것은 대중이 아니라 식량 시스템이다.

식량 시스템은 이제 지상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혁신적이며 파괴적인 산업 중 하나가 되었다. 1만 2000년 전, 홀로세가 시작되었을 때 지구의 인구는 250만 명으로 수많은 야생동물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오늘날 야생동물은 85퍼센트나 줄어들었다. 요즘 우리가 기르는 반려동물은 지구상의 전체 야생동물과 무게가 비슷하다.


수많은 종을 부양하던 땅은 이제 오로지 인간을 위해 경작된다. 식용으로 기르는 동물의 총 무게는 현재 인류 전체 무게의 2배이고, 야생 척추동물과 조류의 무게를 합친 것보다 20배가 넘는다. 식량 시스템은 연료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이자 산림 파괴, 가뭄, 단수 오염, 수생 생물 고갈의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이중 많은 부분을 식용 가축 산업이 차지한다. 영국의 경우 농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2가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의 트림과 배설물에서 나온다.

환경 파괴, 특히 기후 변화는 현재 식량 시스템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인이다. 그런데 우리의 식량 시스템은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 시스템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대 3분의 1을 차지한다. 식량 시스템은 지구의 물, 질소, 탄소의 순환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위협한다.

현대 식량 시스템에서 가장 싸고 풍부한 재료는 설탕 같은 단순당,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갈망하도록 프로그램된 재료들이다. 현대 가공식품 중 80퍼센트 이상이 건강에 해롭다. 이는 식품 제조업체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해로운 식품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영국인의 28퍼센트는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제조업에, 11퍼센트는 농업에 종사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영국인의 비율은 10명 2명으로 줄어들었다. 1970년대 중반 영국인이 연평균 410킬로미터를 걸은 반면, 2010년에는 288킬로미터로 줄어들었다. 근데 그렇게 삶의 방식이 달라졌어도 칼로리 소비량은 변하지 않았다.

신체 활동이 매우 활발한 집단이나 좌식 생활을 하는 사무직 집단이나 하루 칼로리 소모량은 거의 비슷하다. 수렵 채집을 하는 탄자니아의 하드자 부족이나 도시의 미국인이나 하루 평균 칼로리 소모량은 다르지 않다. 신체 활동이 늘어나면 몸은 이에 대응해 휴식대사에 소모하는 에너지를 줄인다. 운동만으로는 살을 빼기 어려운 이유다.


식량 시스템이 환경 파괴와 비만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도 만들어 낸다.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10세 ~ 11세 아이들은 가장 부유한 지역에 사는 또래 아이들보다 더 뚱뚱하고 키도 눈에 띄게 작다. 소득 하위 20퍼센트 가정의 아이들은 소득 상위 20퍼센트 가정의 아이들보다 과일과 채소는 3분의 1, 등 푸른 생선은 4분의 3, 섬유질은 5분의 1 적게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결과 소득 하위 10퍼센트 가정의 아이들은 소득 상위 10퍼센트 가정의 아이들보다 5세 때 충치가 생길 확률이 3배 더 높고, 11세 때 과체중이거나 비만일 될 확률이 2배 가까이 높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식이성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거의 2배 더 높다. 또한 이 부모들은 예방 가능한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평균 2.1배 더 높고, 예방 가능한 암으로 사망할 확률도 1.7배 높다.

현재 영국에서 소득 하위 10퍼센트 지역에 사는 여성들의 기대수명은 가장 부유한 지역에 사는 여성들보다 7.7년 짧다. 남성의 경우 두 지역간 기대수명의 차이가 9.5년이다. '건강 기대수명', 즉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은 더욱 큰 차이를 보여 부유층과 빈곤층의 건강수명 격차는 19년이다.


가난할수록 장보기는 어렵다. 영국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은 가장 부유한 지역보다 패스트푸드 매장이 2배 가까이 많다. 영국인 중 330만 명이, 대중교통으로 15분 거리에 신선한 식재료를 파는 매장이 없는 곳에 산다. 최저소득 가구의 40퍼센트는 자동차가 없다. 이들에게 '건강한' 장보기는 추가적인 시간과 에너지, 교통비, 노동을 요구한다.

현재 영국에서는 190만 명이 가스레인지가 없이 살며, 280만 명은 냉동고가, 90만 명은 냉장고 없이 생활한다. 이보다 더 많은 자정이 주방용 가전제품을 갖추고 있지만, 전기요금이 부담돼서 선뜻 활용하지 못한다.

음식을 직접 요리하려면 시간과 지식, 자신감이 필요하다. 예산이 빠듯하면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건강에 해로운 가공식품이 신선식품보다 칼로리당 가격이 더 저렴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여기에 장보기와 요리에 드는 귀중한 시간, 서툰 요리 솜씨로 식재료를 낭비할 위험까지 고려하면, 가공식품은 더욱 경제적으로 느껴진다. 가난할수록 식비 예산이 유연하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난방비나 월세보다 식비 예산을 우선 줄이게 된다. 이들에게 학교 급식은 아주 중요하다.

자유주의자는 항상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교육! 운동! 의지력! 다들 알다시피 전혀 효과가 없는 것들이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이 사랑하는 '선택'이라는 구호도 착각일 뿐이다. 소비자에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선택권이 있을까? 최하위 소득층에게는 제대로 먹기 위한 선택 자체가 몹시 힘겨울 수 있다. 기업들도 그리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정부는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해 성공적으로 개입한 것처럼, 이제 정크푸드 악순환을 끊기 위해 같은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식량 시스템은 수정할 수 있다. 우리의 식욕과 행동은 식량 시스템의 작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가 식욕과 행동을 조절하면, 식량 시스템도 조절할 수 있다. 사실 변화는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의 식습관 때문에 국가가 치러야 할 비용은 조만간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를 것이다. 위기가 재앙으로 번지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요리사다. 그러면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패스트푸드를 지향하는' 외식업 프랜차이즈 레옹(LEON)의 공동 창립자이며 영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영국의 식품 정책 전문가이다. 그는 2019년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국가식량전략>을 세운다.

이 책에는 그 당시의 경험과 연구가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한다. 우리의 식량 시스템은 우리의 건강을 망치고 있다. 그리고 지구를 먹어 치우고 있다. 우리는 식량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변해야 한다. 초가공식품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육식을 줄여야 한다. 농지를 자연에 돌려주어야 한다. 토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구의 위기 앞에서, 그의 요구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이다. 그리고 매우 영국적이다. 그의 관점은 1세계적이고, 그의 진단과 처방은 영국에 대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매우 공감 가고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죽이고 있는 것은 한국이나 영국 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과 지구 전체니까.

우리는 절박하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지금 당장.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책에서 요구하는 식량 시스템의 변화는 그 중의 하나이다. 하나의 해법을 실행한들 지구의 위기가 없어지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다. 좋든 싫든, 쉽든 어렵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망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