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역사 - 설탕 알갱이 한 알에 담긴 달콤한 ‘야만’을 넘어서
이성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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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젠틀맨'이라는 말은 '젠트리'라는 계급에서 비롯된 말이다. 젠트리는 귀족보다는 한 단계 낮았지만, 막대한 토지와 경제력을 소유한 상류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젠트맨들은 많은 경우 노예 무역상이었다. 영국에서는 인자하고 자선을 베푸는 신사들이 식민지에서는 노예들을 착취하는 대농장의 주인이었다. 이들은 설턍과 노예의 삼각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유럽 선뱍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라는 '화물'을 싣고 브라질이나 아메리카의 설탕 농장으로 향했다. 노예를 팔고 그 돈으로 설탕을 사서 리버풀, 리스본, 런던으로 와서 판매했다. 그리고 나서 의류나 면직물을 싣고 아프리카로 향했다.이들은 매 항해마다 돈을 벌었고, 노예 무역으로 이룬 막대한 부는 산업 혁명의 초석이 되었다.
설탕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영국인들은 설탕에 중독되었다. 영국인의 1인당 설탕 소비량은 1700년 4 파운드에서 1890년 90 파운드로 증가했다. 그들은 설탕을 듬뿍 넣은 차를 마셨고,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대화와 토론의 장소였던 커피하우스를 통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싹텄다. 또한 커피하우스는 증권거래소의 역할을 하여 로이드 보험사 같은 금융 회사들의 산실이 되었다.

설탕이 영국에서 산업 혁명의 밑거름이었다면,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밑거름이었다. 일본이 설탕 생산 기술을 습득하면서 사츠마 번 지역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설탕 산업을 통해 막대한 세수를 확보한 사츠마 번은 군사력을 키우고 근대 공업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결국 사츠마 번이 막부를 쓰러뜨리면서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졌다. 서부 아프리카 연안의 권력자들은 젊은 남성들을 카리브해나 아메리카의 식민지로 팔아치웠다. 이렇게 팔려간 노예들은 그야말로 참혹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들을 팔아치운 권력자들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부와 권력을 잃고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흑인 노예들이 탑승했던 노예선은 지옥 그 자체였다. 노예들은 철저한 화물로 여겨졌다. 이들은 수심보다 낮아 춥고 축축한 배의 밑바닥에서 다른 노예들 사이에 끼여있었다. 길이는 1.5m, 폭은 28cm 정도의 공간에서 사슬에 묶여 숨 쉬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몇 개월을 지내야 했다. 결국 노예들에게 병이 돌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은 설탕 농장의 노예로 투입되었다. 설탕 플랜테이션의 삶은 말 그대로 참혹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노예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노예들은 사탕수수 원액이 펄펄 끓고 있는 솥으로 뛰어들거나 나무와 문에 목을 매달았다. 이들은 죽으면 영혼이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설탕 생산이 가져다 주는 막대한 이익 때문에 카리브해 연안의 식민지들은 오직 사탕수수 생산을 위한 기지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한 가지 작물에만 몰입하는 농업 형태를 '모노컬처'라고 부르는데, 이로 인한 폐해는 식민지 국가에 오래도록 싶은 상처를 남겼고, 이들 국가들은 현재까지 빈곤과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젠틀맨'들이 노예무역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며 배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카리브해 연안 15개국으로 구성된 '카리콤'이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등을 대상으로 2014년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에는 손해 배상금이 지급되었지만, 흑인 노예 무역에 대한 배상금은 어느 누구도 지급하지 않았다.

많은 흑인 노예들은 잔혹한 삶을 다양한 방법으로 거부하고 투쟁해왔다. 자메이카에서는 탈출한 노예들이 모여 '마룬' 공동체를 구성하여 서구 제국주의 세력과 싸웠다. 영국은 끝내 마룬 빌리지를 토벌하지 못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프랑스 식민지 아이티에서는 흑인 노예들의 독립 혁명이 일어나 독립을 쟁취하고, 최초의 흑인 공화국 아이티가 탄생한다. 그러나 사탕수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아이티 공화국은 서구 열강들에 봉쇄되어 기아에 시달리다 결국 프랑스에게 1억 5천만 프랑의 '독립배상금'을 약속하고 외교 관계를 복원한다. 노예무역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아이티가 프랑스에 배상금을 지급 받는 대신, 프랑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게 된 것이다. 아이티는 지금까지도 이 거액의 배상금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사탕수수가 백인 농장주와 흑인 노예들하고만 연관되는 남의 얘기는 아니다. 사탕수수는 우리 하고도 연결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최초 미국 이민자들이 1902년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이다. 첫 이민을 시작으로 1905년까지 단기간에 7,000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왔다. 이들 중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한 사람의 숫자는 약 5,000명이었다. 어린 아이들과 환자들을 빼고 나면 거의 모두였다.

이들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참상이 이곳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가혹한 노동조건 때문에 중국, 일본, 한국 순으로 대규모 이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많은 이민 노동자들이 학대받거나 고문을 당했으며 수족이 절단되거나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죽었다. 아프리카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펄펄 끓는 솥에 뛰어들어 자살한 일도 있었다.

대부분 건장한 젊은 남성인 이들이 하와이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들의 결혼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결국 전문 브로커를 통해 오로지 신랑의 사진 하나만 들고 신부들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이른바 '사진 신부'들이다.

사진 신부들은 교회를 통해 신식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많았다. 이들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배를 탔지만, 그들을 불러들인 남편들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평생 중노동에 시달린 사람들이어서 거칠고 억셌다. 그들의 환상은 참혹하게 깨어졌다.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나이 차이 때문에 남자들이 일찍 죽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인 사진 신부들의 삶은 이처럼 각박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하와이의 여성들은 1908년 '신명 부인회'를 시작으로 여러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1919년 3.1 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자 '부인 구제회'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 조직을 통해 모금을 하고, 옷을 만들어 팔아 모은 자금까지 더해서 상해 임시 정부와 만주 독립군을 후원했다. 이들이 하와이에서 만든 독립 선언서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설탕은 생각해보면 매우 특별한 물질이다. 공장에서 정제된 설탕은 순도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하고, 눈부시게 하얗다. 형태도 균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콤'하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 뒤편에는 잔혹한 대비가 자리한다. 흑인들은 납치, 강제 이주, 감금, 폭행, 살인을 겪는다. 백인들은 설탕 공예와 커피, 차와 같은 음식 문화를 넘어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이루고 그 달콤함을 만끽한다. 이보다 더한 대비가 있을까.

설탕의 역사는 우리에게 착취와 폭력 그리고 획일성이 지배해온 '야만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설탕 알갱이 한 알에 담김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착취와 폭력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이 책 '설탕의 제국'은 부산 MBC의 PD가 지은 책이다. 자신이 수년을 준비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펴낸 책이다. 저자는 '설탕'을 매개로 젠틀맨과 노예와 해적을 잇는 대하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살린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젠틀맨의 우아한 교양과 친절, 그 이면에서 1천만 명의 노예가 흘린 피땀, 그리고 이 사이에서 저항하는 해적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항하는 해적'이라는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작가는 '저항하는 해적의 이미지를 '마룬'과 '사략'에 투영한다. 탈출 노예의 공동체인 마룬이 저항을 상징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자유 공동체였던 마룬과 해적의 연관성을 나는 모르겠다.

반면 사략(私掠)은 해적 맞다. 이들은 국가에게 허가 받은 해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저항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들은 사략선으로 약탈한 재물을 국가와 나누었다. 이들은 저항자라기 보다는 차라리 약탈자 아니었나?

당시 해적은 민주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설탕이나 아프리카 노예와 연관되어 보여주는 해적의 저항성은 미흡하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 하다. 설탕을 통해 '달콤한 야만'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제국의 풍요롭고 우아하고 멋진 문화와 삶과 철학이 식민지 노예들의 피와 죽음을 밑거름으로 태어난 열매임을 알려준다. 그 풍성하고 찬란한 열매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류의 양심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음을 이 책은 넌지시 알려준다.

게다가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책 답게 깊고 복잡하게 얘기를 끌어가지 않는다.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세상을 담아낸 카메라의 메모리를 문장으로 풀어낼 뿐이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설탕이 흘러온 길을 흩는다.

게다가 텍스트로 부족하다면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에서 '설탕의 제국'을 검색하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쉽고 편안한 역사 입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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