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사진 신부들의 삶은 이처럼 각박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하와이의 여성들은 1908년 '신명 부인회'를 시작으로 여러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1919년 3.1 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자 '부인 구제회'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 조직을 통해 모금을 하고, 옷을 만들어 팔아 모은 자금까지 더해서 상해 임시 정부와 만주 독립군을 후원했다. 이들이 하와이에서 만든 독립 선언서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설탕은 생각해보면 매우 특별한 물질이다. 공장에서 정제된 설탕은 순도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하고, 눈부시게 하얗다. 형태도 균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콤'하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 뒤편에는 잔혹한 대비가 자리한다. 흑인들은 납치, 강제 이주, 감금, 폭행, 살인을 겪는다. 백인들은 설탕 공예와 커피, 차와 같은 음식 문화를 넘어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이루고 그 달콤함을 만끽한다. 이보다 더한 대비가 있을까.
설탕의 역사는 우리에게 착취와 폭력 그리고 획일성이 지배해온 '야만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설탕 알갱이 한 알에 담김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착취와 폭력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이 책 '설탕의 제국'은 부산 MBC의 PD가 지은 책이다. 자신이 수년을 준비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펴낸 책이다. 저자는 '설탕'을 매개로 젠틀맨과 노예와 해적을 잇는 대하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살린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젠틀맨의 우아한 교양과 친절, 그 이면에서 1천만 명의 노예가 흘린 피땀, 그리고 이 사이에서 저항하는 해적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항하는 해적'이라는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작가는 '저항하는 해적의 이미지를 '마룬'과 '사략'에 투영한다. 탈출 노예의 공동체인 마룬이 저항을 상징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자유 공동체였던 마룬과 해적의 연관성을 나는 모르겠다.
반면 사략(私掠)은 해적 맞다. 이들은 국가에게 허가 받은 해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저항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들은 사략선으로 약탈한 재물을 국가와 나누었다. 이들은 저항자라기 보다는 차라리 약탈자 아니었나?
당시 해적은 민주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설탕이나 아프리카 노예와 연관되어 보여주는 해적의 저항성은 미흡하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 하다. 설탕을 통해 '달콤한 야만'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제국의 풍요롭고 우아하고 멋진 문화와 삶과 철학이 식민지 노예들의 피와 죽음을 밑거름으로 태어난 열매임을 알려준다. 그 풍성하고 찬란한 열매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류의 양심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음을 이 책은 넌지시 알려준다.
게다가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책 답게 깊고 복잡하게 얘기를 끌어가지 않는다.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세상을 담아낸 카메라의 메모리를 문장으로 풀어낼 뿐이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설탕이 흘러온 길을 흩는다.
게다가 텍스트로 부족하다면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에서 '설탕의 제국'을 검색하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쉽고 편안한 역사 입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