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고 그 자리에 도달하라고 요구하는 현대사회. 줄을 세우는 우리의 교육은 질투로 움직입니다. 이건 괜찮을까요? “질투라는 감옥” 출판사에서 보내주셨습니다.“자신의 생존 조건을 조금도 바꾸지 않더라도 옆 사람이 확실하게 유리한 조건을 획득한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최저 수준에서 ‘평등’해야 하며 완전히 균등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도덕성의 한계선이다.”저는 질투를 발전을 위한 부스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러워하고 되고 싶어 하는 게 바람직한 감정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질투라는 감정은 나의 현재 위치를 남보다 낮게 보게 만드는 잘못된 기준점이었습니다.질투의 가장 큰 문제는 과시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과시라는 차별화 게임이 존엄성이 기준이 된 세상에서 잠시나마 자본주의적으로 욕망을 채워주는 방법인 이상 과시의 욕구는 끝이 없고 스스로를 굴레로 밀어 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투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죠.질투라는 개념에 대해 철학적으로 말한 부분보다. 질투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고 적어둡니다. “자신과 유사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업적을 가진 타인을 거듭 칭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을 칭찬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라든가. 부적절한 자기 자랑을 하지 않기 위해서 타인이 칭찬받는 자리, 대단한 지도자나 저명인사와의 연회 후 귀갓길, 타인을 질책하거나 몰아세우는 상황등을 피하라는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공식 행사의 뒤풀이! 꼭 피해야겠습니다.베이컨의 말처럼 질투를 치료하려면 마법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우리에겐 마법이 없으니까요. 질투라는 감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철학자들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부분들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음해한다면 질.투.해.서 그런다는 걸 알게 되어 스트레스가 싹 내려갔다고 적어둡니다. 각종 루머와 음해공작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두통약대신 권합니다. 명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