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끝으로 정렬된 문장 사이, 숨 쉬듯 떠오르는 생각 사이로 달았다가 편안했다가 짭짤했던 스물여섯, 호기롭게도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던 여행은 이제는 도시의 건축가로 살아가는 저자의 가슴속의 숨결 한 줌이다. 그 숨결 속에 Y와 E의 이야기가 나는 특별히 좋았다. 연애를 원하는 소년 마냥 조심스럽게 툭툭 건네는 생각들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았고 선을 지키려고 애쓰지도 넘으려고 강요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글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라는 분류를 달고 너무 많은 것들을 담은 책들을 보다가 단순히 에세이여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 역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어떤자리에서 바라볼지 우리는 정해야 한다. 그의 친구가 될지. 연인이 될지. 혹은 규정하기 어려운 관계가 될지. 그림과 사람. 뒤에 이어지는 단계들도 연결고리가 있을까.E였다. 뜨는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피렌체역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두 번째 메시지를 보낸 것은 내가 역에 도착하기 한 시간도 전의 일이었다. 증거처럼, E는 어두컴컴한 기차역의 사진을 남겼다.”왼손으로 나는 그녀의 풍성한 갈색 머리칼을 만진다. 곧 어둠 속에서 눈이 마주치고 나는 입을 맞춘다. “혹시 그림 그리는 거랑 사람 만나는 거랑 비슷한 거 알아?”뱃멀미에 시달릴 때 E는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잠시 후에 그녀는 다정한 연인처럼 팔짱을 낀다. 그리고 E와 헤어질 때, 스케치북에 베네치아 그림은 단 한 장도 없었다.이쯤 되면 로맨스는 해피엔딩을 맞이해야 하건만 이건 현실이었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그대로 흩어진다. E도 Y도 독자가 기대한 달달한 로맨스의 그 기류는 어디로 가고 입국장을 지나 그저 이 책 안에만 남았다. 이 책은 청춘에 대한 찬가다. 누구든 어디에서 만나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함께하는 이의 연애?를 위해서 여행에 조금 양보를 하기도 하고, 타오르는 모닥불 아래 ‘Do you wanna Kiss?’를 속삭여보기도 하는... 책을 쓴 저자도 우리도 이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그 청춘 말이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전국의 대학생이 함께 타고 있던 광주로 향하던 버스와 기차들. 낯선 사람이 손목을 잡고 끌어주던 금남로. 그리고 어쩐지 목적이 있어 보이지만 1학년 여자(!)후배들에게 친절했던 복학생 선배들. 꽃다지. 이 책은 사랑을 원하는 상기된 소년같이 서툴기도 하고, 처음 교단에 선 강사마냥 어깨가 굳어있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다 좋았다고 적어둔다.<흐름 출판의 도서제공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