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지옥편 1곡)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메고 있었다.

,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안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자른 것들을 말하련다.

올바른 길을 잃어벼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잠에 취해 있어서, 어떻게

들어갔는지 자세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떨리는 내 가슴을 두렵게

만들었던 그 계곡이 끝나는 곳

언덕 발치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사람들을 각자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행성의 빛살에

둘러싸인 언덕이 등성이가 보였다.

그러자 그 무척이나 고통스럽던 밤

내 가슴의 호수에 지속되고 있던

두려움이 약간은 가라앉았다.


마치 바다에 빠질뻔하였다가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해변에 도달한 사람이

위험한 바닷물을 뚫어지게 뒤돌아보듯

아직도 달아나고 있던 내 영혼은

살아 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길을 뒤돌아서서 바라보았다.

잠시 지친 몸을 쉰 다음 나는

황량한 언덕 기슭을 다시 걸었으니

언제나 아래의 다리에 힘이 들었다.

그런데 가파른 길이 시작될 무렵

매우 가볍고 날쌘 표범 한 마리가

얼룩 가죽으로 뒤덮인 채 나타나

내 앞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내 길을 완전히 가로막았으니, 나는

몇 차레나 되돌아가려고 돌아섰다.


때는 마침 아침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성서러운 사랑이 아름다운 별들을

맨 처음 움직였을 때, 함께 있었던

별들과 함께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달콤한 계절과 시간에 힘입어

나는 저 날렵한 가죽의 맹수에게서

벗어날 희망을 갖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 앞에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나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자는 무척 굶주린 듯이 머리를

쳐들고 나를 향하여 다가왔으니

마치 대기가 떨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암 늑대 한 마리,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서 몰아넣은 암 늑대가

엄청난 탐욕으로 비쩍 마른 몰골로

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

언덕 꼭대기를 향한 희망을 잃었다.


마치 탐욕스럽게 재물을 모으던 자들이

그것을 잃어버릴 때가 다가오자

온통 그 생각에 울고 슬퍼하듯이,

그 짐승도 안절부절 나에게 그러하였다.

나를 향해 마주 오면서 조금씩 나를

태양이 침묵하는 곳으로 밀어냈다.

내가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하는 동안,

내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오랜 침묵으로 인해 희미해 보였다.


무척이나 황럏한 곳에서 그를 본 나는

외쳤다. 그대 그림자 이든, 진짜

사람이든 여하간 나를 좀 도와주시오!

그는 대답했다. 전에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내 부모는 롬바르디아

사람들로 모두 만토바가 고향이었다.

나는 말년의 율리우스 지하에서 태어나

그릇되고 거짓된 신들의 시대에 훌륭한

아우구스투스 치하의 로마에서 살았다.

나는 시인이었고, 오만스러운 일리온이

불탄 뒤 트로이아에서 돌아온 앙키세스의

그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하였노라.

그런데 너는 왜 수많은 고통으로 돌아가는가?

무엇 때문에 모든 기쁨의 원천이요.


시작인 저 환희의 산에 오르지 않는가?

그러면 당신은 베르길리우스 그 넓은

언어의 강물을 흘려보낸 샘물이십니까?

나는 겸손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오 다른 시인들의 영광이자 등불이시여

높은 학식과 커다란 사랑은 유익했으니

나는 당신의 책을 열심히 읽었지요.

당신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저자이시니,

나에게 영광을 안겨 준 아름다운 문체 는

오로지 당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나를 돌이키게 한 저 맹수를 보십시오

이름 높은 현인이시여, 내 혈관과 맥박을

떨리게 하는 저놈에게서 나를 구해 주시오

내 눈물을 보고 그분이 대답하셨다.

이 어두운 곳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너는 다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네가 비명을 지르는 이 짐승은

누구도 자기 길로 살려 보내지 않고

오히려 가로막으며 죽이기도 한다.

그놈은 천성이 사악하고 음험해서

탐욕스러운 욕심은 끝이 없고,

먹은 후에도 더욱더 배고픔을 느낀다.


많은 동물들이 그놈과 짝을 지었고

사냥개가 와서 그놈을 고통스럽게

죽일 때까지 더 많은 동물이 그러리라.

이 사냥개는 흙이나 쇠를 먹지 않고,

지혜와 사랑과 덕성을 먹고 살것이며

글을 올리는데 제동을 건다.

첫 번째 니가 뭐 좀 안다고 글을 올리느냐

두 번째 잘난체 하는 것 같다.


세 번째 소양을 닦은 다음 그 다음에 글을 올리자

네 번째 좋은글이라 나누고 싶다.

그의 고향은 비천한 곳이 되리라.

또 처녀 카밀라, 에우리알루스, 투르누스,

상처 입은 니수스의 희생으로 세워진

저 불쌍한 이탈리아의 구원이 되리라.

이 사냥개는 사방에서 암늑대를 사냥하여

질투가 맨 처음 그놈을 내보냈던

지옥으로 다시 몰아넣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니

나를 따르도록 하라. 내가 안내자가 되어

너를 이곳에서 영원한 곳으로 안내하겠다.

그곳에서 너는 절망적인 절규를

들을 것이며, 두 번째 죽음을 애원하는

고통스러운 옛 영혼들을 볼 것이다.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갈 때를 희망하기에 불 속에서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네가 그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는 영혼에게

너를 맡기고 나는 떠날 것이다.


그곳을 다스리는 황제께서는 내가

당신의 법률을 어겼기에, 그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곳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곳에

그분의 도시와 높은 왕좌가 있으니

, 그곳에 선택된 자들은 행복하도다.

나는 말했다. 시인이여, 당신이 몰랐던

하느님의 이름으로 간청하오니

나를 이 사악한 곳에서 구해 주시고

방금 말하신 곳으로 안내하시어

성 베드로의 문과 당신이 말한

그 슬픈 자들을 보게 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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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천국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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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천국)
단테 알리기에리

˝내 의지가 아니라 진리의 법대로 움직인다˝

그 어디에 있건 나는 태양과 별빛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불명예스럽게, 아니 치욕적으로, 국민과 조국 앞에 서지 않고도,
그 어디서나 고귀한 진리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내게는 빵조차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P.27vita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멈추는가?
왜 가슴속에 그런 두려움을 갖는가?
왜 용기와 솔직함을 갖지 못하는가?


˝전에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는 단테는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베르길리우스가 대답한 말입니다. 아주 유명한 문장입니다. 베리길리우스를 알아본 단테가 말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베르길리우스, 그 넓은 언어에 강물을 흘려보내는 샘물이십니까?˝
(지옥편 제1곡79~80행)

-인문고전강의


"이 어두운 곳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너는 다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
(지옥편, 제1곡 92~93행)


"(...)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니.
나를 따르도록 하라. 내가 안내자가 되어너를 이곳에서 영원한 곳으로 안내하겠다.
그곳에서 너는 절망적인 절규를들을 것이며, 두 번째 죽음을 애원하는고통스러운 옛 영혼들을 볼 것이다.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에게갈 때를 희망하기에 불 속에서도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네가 그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는 영혼에게너를 맡기고, 나는 떠날 것이다. (…)"
(지옥편, 제1곡 112~123행)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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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14p~50p
제1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제1장 좋음과 목적
제2장 최고선과정치학
제3장 논의의 방법
제4장 최고선에 관한 통념들
제5장 행복과 세 가지 삶의 유형
제6장 좋음의 이데아 비판
제7장 우리가추구하는 좋음과 행복
제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제9장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들
제10장 행복과 운명
제11장 행복과 죽음이후
제12장 칭찬과 명예
제13장 영혼의 탁월성

제2권
제1장 탁월성의 기원
제2장 성격과 습관
제3장 성격적 탁월성은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한다
제4장 풍성상태와 행위
제5장 탁월성의 유
제6장 탁월성의 종차(중용)
제7장 성격적 탁월성들의 소묘
제8장 중용과 극단

제3권

제4권

제5권

제6권

제7권

제8권

제9권

제10권


책소개
2,300년을 이어온 서양 윤리 사상의 정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끼친 사상사적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17~18세기 무렵까지 유럽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철학과 과학의 역사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수용, 전개, 비판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이후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배적 권위가 상실되고 나서도 그의 사유는 근대 지성인들의 체계적 학문 활동에 중요한 방법론적 역할을 해왔다.
그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의 사상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며, 특히 이 책의 가치는 2,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양 윤리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고전(古典)으로 꼽히고 있다.

‘행복‘ ―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행복(eudaimonia)이다. 행복이 윤리학적 사유의 핵심 주제라는 것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이 책의 전체 텍스트에서 개진되고 있는 숱한 세부적 문제들과 숱한 관련 논문들은 모두 하나의 기본 관심사, 즉 "어떤 삶이 좋은 삶, 즉 행복한 삶인가?"라는 하나의 문제에 정위(定位)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철학적 행복론을 구성할 때 건전한 상식을 따르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행위들이 지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최고선이며, 최고선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 행복이란 인간의 좋음[선] 중에서 가장 큰 선이다. 우리가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행복 그 자체를 위해서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7장에서 연구자들 사이에서 ‘기능 논증‘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석 틀에 입각해 행복의 구체적 정의에 도달하고자 한다. "각각의 인공적 존재의 기능은 무엇인가? 각각의 자연적 존재의 기능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의 연쇄로 이루어진 이 논증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의미심장한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고유 기능은 ‘탁월성에 따르는 이성적 영혼의 활동‘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최고선이며 행복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탁월성만 갖고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따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도 충족되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러나 물질적 조건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행복을 구성하는 핵심 인자는 탁월성[덕]이다.

탁월성 ― 행복을 구성하는 핵심 인자
따라서 우리는 반성적 수준에서의 행복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탁월성‘이란 무엇이며, 또 탁월성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탁월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적 탁월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성격적 탁월성이다. 지적 탁월성은 유전과 교육의 결합을 통해 생겨나며, 성격적 탁월성은 모방, 실천, 습관 등을 통해 얻어진다. 우리가 계발한 습관들은 결국 품성상태(hexis), 즉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안정적 성향으로 전환된다.
성격적 탁월성은 성격적 상태가 중용(中庸)의 원칙과 일치할 때 얻어진다. 탁월한 발휘의 품성상태, 즉 탁월성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 상태로 성격적 탁월성은 결국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중용 안에 있으면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품성상태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고전 그리스 문명이 지닌 도덕적 세계관의 정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러한 궁극적 목표를 위해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그는 서양윤리학의 근간을 세우는 이정표를 남기게 되었다.




- P14

1. 생애와 전승된 저작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북동부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냈다.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왕실의 시의(侍醫)였기 때문에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후견인의 손에 양육되는데, 이 후견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플라톤밑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기원전 367년에 그를 아테네로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단지 강의와 토론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학자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20년이라는 긴시간 동안 플라톤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아테네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지만, 『정치학 집필과 강의를 통해 학문적 차원에서 정치에 관한 독자적인 이론을 제시했으며, 후에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학문적 연구와 교육에 인생을 바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풍부한 지식과 박식함을 갖춘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플라톤과 아카데미아 동료들의 사상뿐 아니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과 고대 그리스의 시문학, 나아가 생물학과 그 시대의 첨단 과학 지식에도 정통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학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 P388

1389그러나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고 그의 조카 스페우시스가 아카데미아의 새 원장이 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아테네를 떠난다. 플라톤이 사망한 직후에 그가 아카데미아를 떠난 이유를 알려주는 정확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과 학문적 관심이 달랐던새 원장 밑에 남아 있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는 아소스에서 아카데미아의 분교를 설립했으며 이때부터 독자적인 견해를발전시키기 시작한 듯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타르네우스의 통치자인 헤르미아스의 양녀 피티아스와 결혼한다. 기원전 342년에는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이 그에게 자신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위탁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 원정 준비에들어가던 335년,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학원을 별도로 설립한다. 이미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들을 발전시키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아카데미아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학원은 아폴론신전의 경내인 리케이온에 있었기 때문에 리케이온 이라고 명명된다. 이곳에서 토론하던 학원 구성원들은 지붕이 덮힌 산책로를 이리저리 오르내리며 토론하는 습관 때문에 페리파토스 학파‘, 즉 이리저리 걷는 자들 이라고불리기도 한다. 리케이온은 교육을 담당한 것 외에도 성숙한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연구 및 조사를 수행하는 공동체의 성격을 띠기도 했는데, 이런 성격은 리케이온이 아카데미아보다 더 두드러졌던 것 같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불경죄 - 소크라테스가 기소당한 바로 그 죄로 기소당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아테네인들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테네를 떠났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어머니의 고향인애우보이아의 칼키스로 가서 이듬해(322년)에 세상을 떠났다.


- P389

니코마코스 윤리학 작품 해제

1. 작품 제목과 문헌의 전승 문제

고대의 한 보고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약 200년 동안의 세월을동굴 속에서 보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떠난후(기원전 322년) 그의 문헌들은 제자였던 테오프라스토스에게 전해졌고, 그가 죽자 다시 넬레우스에게 상속됐다. 그에 의해 소아시아 지방의 한 도시로옮겨진 문헌들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보관됐다. 어느 날 도시를통치하던 왕이 페르가몬에 세울 도서관을 위해 열심히 책을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넬레우스의 후손들은 소장하던 문헌들을 일종의 지하동굴 속에 숨기는데,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세상과 절연된 채 20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아펠리콘이 거액을 주고 이 문헌들을다시 아테네로 사들이는 데서 이어진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고향에 오래 머물지 못할 운명이었는지 곧 로마 장군 술라의 전리품으로 로마로 옮겨지게 된다(기원전 84년). 이때 로마에 도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이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편집되었으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이라고 알고 있는 작품들의 근간을 형성한다. 안드로니코스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묶어 적당한 제목의 책으로 편집하고 작품들을 일련의 순서에 따라 정돈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 - P406

에서 유명해진 작품이 앞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s)이다. 안드로니코스는 편집 과정에서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는저작들이긴 하지만 그 주제적 통일성을 표현할 제목을 찾지 못해서, 이 일련의 소저작들을 타 메타 타 피지카(ta meta ta physika), 즉 "자연학 저작(physika) 뒤에 (meta) 오는 작품들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다. 

만약이러한 보고가 맞다면, 내용에 맞는 적당한 제목이 없어서 전체 작품군 내에서의 위치를 지시하는 방식으로 붙여진 제목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이상학(metaphysics)‘ 이라는 말의 역사적 뿌리인 셈이다. 1831년에 벡커에 의해 편찬된 『이리스토텔레스 전집』이 근거하는 필사본들은 로도스 섬 출신의 안드로니코스가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20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이야기는 전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작품들의문헌적 성격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가지고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애초에 그렇게 의도하지않았던 작품들일 수 있으며, 전승 과정에서 위치가 바뀌거나, 편집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와는 달리 여러 편을 묶어 제목을 붙인 것처럼 전승 과정에서의 우연에 기인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전승 과정의 문제는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도 적용된다. ㄱ
- P407

2. 작품의 역사적 배경IDEO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고전 그리스 문명이 지닌 도덕적세계관의 정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도덕적 사유들은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혹은 다른 시인의 작품 속에서개진되는 형태이든, 혹은 인구에 회자되는 속담과 격언의 형태이든, 논의되는 주제에 관한 선대의 의견 내지 통념의 형태로 검토되고 있다. 문학작품이나 속담 속에 담겨 있는 도덕적 사유들은 이미 서로 다른 입장들을 보여 주고있는데, 이러한 사정은 그리스 문명 세계가 소위 소피스트들의 등장을 경험한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소피스트들의 등장이 가져온 도덕적 - P412

혼란은 전통적 가치에 대한 소피스트적 이성이 도전한 결과라고 진단할 수있을 것이다. 자연적인 것과 규약적인 것, 혹은 법(nonos)과 자연(physis)의 대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혼란은 전통적인 가치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의 단면을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 2권에 등장하는 아데이만토스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말을 남긴 최초의 영웅들을 위시해서 요새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올바름(정의)의 예찬자들이라는 여러분 모두 가운데서 아직껏 그 두구도 올바르지 못함을 비난하시거나 올바름을 찬양하심에 있어서 평판 이나 명예 또는 이것들에서 생기게 되는 선물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만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각각이, 그걸 지니고 있는 자의 혼 안에 있으면서, 그 자체의 힘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신들도 인간들도 주목하지않았습니다.

 시를 통해서건 또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통해서건, 한쪽은혼이 자신 안에 지닐 수 있는 나쁜 것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인 반면 에, 올바름은 가장 좋은 것임을 논변으로써 (이론적으로) 충분히 펴신 분은 아직껏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발언에 따르자면 올바름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는 이제 논변을 통한설득을 요구받는 단계에 이른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가치들은 이제소피스트적 논변의 길을 통해서건, 아니면 소크라테스적 논변의 길을 통해서건 본격적인 도덕철학의 주제가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은 문학작품이나 격언 속에 드러나는 전통적인 도덕, 삶 속에 침윤된 - P413

도덕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철학적 반발 내지 반성까지 자신의 윤리적 사유의 체계적인 재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그리스 문명이 보여 준 도덕적 세계관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유의 재료로부터 나온 결과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라는 작품이며, 이 작품은 이전의 전통적 사유, 철학적 논변들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에 종합해 냈기 때문에, 고전 그리스 문명이 내놓은 도덕적 세계관의 정점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하는 것은일차적으로 역사적인 관심의 결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나타난 도덕적 사유의 전통들이 어떤 방법을 가지고 어떤 체계 속에서 정돈되어 왔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전통이 제기한 문제들을 어떤 형태로 중재하거나종합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역사적인 문제가주어졌으며 어떤 철학적 반성을 통해 결국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에 일차적인관심을 가진다는 뜻이다. 물론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이러한 역사적 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 전제하는 인간 본성(physis)이 역사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그의 논의가 단순히역사적 인 것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차적 관심은당연히 그의 윤리적 사유와 그가 동원한 방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 가지는관심은 철학적이다.


1. 전통과 이성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관심을 위해 몇 가지 관점을 동원할 수 있겠지만 일단전통과 이성을 축으로 접근해 보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즉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모든 점에서 - P414

그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병들었을 경우에는 의사의 말을 따르고 장군을 선출할 경우에는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마찬가지 하는지, 동료에게 선행 (charis)을 베풀기보다 먼저 은인에게 선행을 갚 로, 만약 둘 다 할 수 없을 경우 신실한 사람을 돕기보다 친구를 도와야아야 하는지. 이런 종류의 모든 문제들을 엄밀하게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사안의 크기, 경중이나 고귀함, 또 절실함에 있어서 수없이 많고 다양한 차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 제기에 등장하는 아버지‘ 를 전통적인 도덕이 제시하는 삶의 질서를대표하는 사람으로, ‘의사‘나 ‘장군‘을 전문적인 합리성의 대표자로 이해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하는 문제의 수준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이나 결론도 물론 관심의 대상이지만,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은 이런 물음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당대 그리스인들의 딜레마의 뿌리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친숙하지만정확한 근거를 대지 않거나 댈 필요를 느끼지 않는 전통과 전문적인 지식 내지 이성이 충돌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또 어떤 이유에서 선택해야 하는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이러한 문제를 문제로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문제는 그리스 사회의 역사적 진행이 자신과 함께 가져온 도덕적 문제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사유는 이것을 소재로 출발한 것이다. 도덕이 전적으로 이성의 문제라고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가 낯설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역사적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감히 지나칠 수 없는 도덕적 문제였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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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의 달인 호모큐라스>

 

P. 91

독서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독서라는 한자를 한번 써보라. . 보다시피 말씀 언이 들어있다. ‘소리 내어 읽는다는 의미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은 간서看書라고 했다.

인류는 수천 년간 책을 소리로 터득했다. 구술과 낭독, 암송과 낭송 등등으로.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몸 전체가 그 소리의 파동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그 파동과 기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쿵푸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묵독만이 책읽기라는 편견에 빠져 있다. 그 결과 학교 교육에서도 어느덧 낭송이 사라져 버렸다. 학교 교육이 생동감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P. 116

어떤 고전이든 암송하고 또 암송하면 욕망과 상념을 잊고 본성을 깨우치게 된다. 온몸의 세포와 뼈들을 진동시키고 영혼에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도 이런 식으로 독서를 했다. 소리 내어 읽고 또 읽다 보면 책이 없어도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면 몸이 곧 책이 된다.

 

P. 128

공부의 기본은 역시 몸이다. 그래서 모든 수업은 암송으로 시작하고 학기말에는 항상 조별로 낭송오디션을 연다. 연말에는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낭송페스티벌을 열기도 한다. 이때는 무대가 아주 풍성하다. 노래와 액션, 구술과 연극이 가미되면서 한바탕 축제가 된다. 감이당의 연령은 10대에서 6080세대까지 아주 다채롭다. 이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고전의 향연을 펼치는 장면은 참으로 장관이다. 책이 곧 축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축제를 거치고 나면 다들 친구가 된다. ‘book-소리의 파동 속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로고스가 아니라면 이런 우정이 어떻게 가능할까. 자본주의는 모든 관계를 거래로 환원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서로를 불신한다. 그렇게 서로를 밀어내고는 또 고립과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이런 식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로고스에 접속하라! 그것은 결코 교환과 거래로 환원되지 않는다. 교환과 거래가 증발되면 신체가 릴랙~스된다. 그 유연성이 우정의 토대다. 그때 비로소 귀를 열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니 낭송이야말로 우정을 나누는 최고의 기술임에 틀림없다.

 

1. <낭송의 달인>이 포함된 낭송Q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간략하게 어떤 책들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출간된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고전을 낭송하기 위한 책인데요,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만든 건데, 너무 절실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소리를 내장하고 있는 텍스트들이에요. 그래서 소리 내어 읽어야 완성이 된다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고전을 보면 사실 막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 시대는 책을 읽는다이러면 눈으로 이렇게 뚫어지게 막 보는 거고, 책을 째려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게 항상 좀 하고 안 맞는 공부법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낭송집을 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소리가 막 제 몸 속에서 터져 나와서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 소리에 부응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사실 달인 시리즈는 돈의 달인쓰고, ‘이제 끝이다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낭송의 달인을 쓸 때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고전을 낭송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안내하는 글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낭송의 달인>을 쓰게 된 것이고요. 사실 메인이벤트는 낭송집 28권에 있는 거죠. 그럼 왜 28권인가? 이게 동양 별자리에서 빌려온 거예요. 동양 별자리가 동청룡, 남주작, 서백호, 북현무에 각각 7개씩 이렇게 28개가 일 년 동안 쭈욱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1년 내내 낭송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내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까지 막 아이디어가 폭발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조금 대작이 된 것이죠.

그리고 낭송의 달인을 뭐라고 해야지 맞을까. 호모 쿵푸스, 호모 에로스, 호모 코뮤니타스……, ‘호모 큐라스가 어떨까. ‘케어care’의 어원인 라틴어 큐라스curas. 양생이라는 뜻도 있고, 또 심지어 책을 쓴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래서 그 의미들이 다 결합이 되어 있는 호모 큐라스가 좋겠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몸과 고전의 마주침낭송Q시리즈를 내게 된 것이죠.

 

 

2.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는 실제로 '낭송'을 여러 과정에서 중요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모 쿵푸스>에서도 낭송을 중요한 공부법으로 언급하기도 하셨구요. '낭송'이 어째서 '쿵푸(공부)의 비법'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고전을 일단 소리 내서 읽는다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논어나 불경, 이런 것들이 제자들한테 말로 한 것을 기록한 것이니까요. 서재에서 문법에 맞게 글을 쓴 다음에 고전이 된 게 아니거든요. 다 현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이 고전들을 읽을 때 내 몸이라는 현장이 살아 있어야 해요. 그런데 혼자서 눈으로만 묵독을 하면, 이것은 울려 퍼지는 개념이 아니고, 안에서 고이는 느낌이 들죠. 이런 걸 우리가 이제 지식’, 굉장히 건조한 정보이렇게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그럼 이게 울려 퍼지는데, 제일 먼저 내 몸에서 울려 퍼져야 되니까, 그러면 낭송을 해야 되겠구나하는 이걸 모두가 공유를 하게 돼서 제가 있는 남산강학원이나 감이당에서는 공부를 시작할 때, 끝날 때 꼭 낭송을 해요. 그리고 책을 제대로 정독했는지 이런 걸 확인하는 방법도 암송을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자꾸 하다 보니까 학기마다 낭송오디션을 하게 되었죠. 물론 처음에는 낭송이라니까 외워야 하잖아요, 그걸 소리 내어 말해야 하고, 그러니 다들 이런 걸 어떻게 해요, 이것만은 못하겠어요, 막 이랬었요. 그랬는데, ~ 이제는 막 온갖 끼를 다 발휘해서 낭송을 너무너무 즐겁게 하죠. 그 모습을 보고 , 여기에 공부의 길이 있구나이걸 이제 더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죠. 지금은 다른 것은 힘들지만 낭송오디션은 하고 싶다 이런 분이 생겼을 정도예요. 그리고 그것은 10대나 6080세대까지 다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연세 드신 분들이 더 막 자기가 소리 내서 이걸 표현하고자 하는 이 욕망이 엄청 커졌다는 걸 알고, 이게 정말 기가 막힌 공부법이라고 말씀하세요. 이런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의 어떤 리듬과 딱 합쳐지는 기획으로 낭송Q’시리즈가 나오게 된 겁니다.

 

 

3. 막상 낭송을 하려고 해도 무슨 책으로 해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가 난감합니다. <논어><맹자> 같은 동양 고전을 무작정 소리 내어서 읽으면 되는 것인가요? 또 모든 책을 낭송으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같은 서양 - 과학 책들도 낭송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묵독이 필요할 때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낭송할 책과 묵독할 책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책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기 때문에 독서 방식이 기본적으로 묵독이에요. 예전에는 책 자체가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사서삼경이든 불경이든, 일단 책을 읽는다고 하면 자기 소리를 내서 읽었죠. 심지어 일억 번 읽었다는 기록도 있었요. 물론 그 시대에도 묵독이 있긴 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건 소리를 내서 읽는 그런 시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책이 너무 많기 때문에 빨리 읽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묵독이 보편화되었죠.

그러면 어떤 책을 낭송하는 게 좋으냐. 어떤 책을 읽고 이건 정말 내가 몸에 새기고 싶다. 그러면 낭송하고 암송해야 돼요. 그래야지 이 텍스트가 내 몸의 세포하고 섞여서 내 몸의 에너지나 기운을 만들어 낼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하면 다들 좋아요”, “하고 싶어요”, “그런데 뭐부터 해야 되나요?” 이걸 꼭 물어요. 그냥 자기가 책을 읽다가 이것은 내 몸에 새기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낭송을 하면 되는데 좀 어색한가 봐요. 그래서 이제 낭송집을 기획하게 된 거죠. 낭송집으로는 특히 동양고전이 가장 좋은데요, 현대인들은 몸이 좀 많이 들떠 있거든요. 이 들떠 있는 화()기운을 좀 가라앉히고, 평정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 건 동양의 음기(陰氣), 그러니까 물의 기운이 필요해요. 동양고전은 이런 파동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시작하라고 권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동양고전 28권을 기획을 한 거예요.

보통 낭송이라고 하면 시나 동화 같은 것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파동을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책이든 그 책에 어떤 인생과 우주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면, 그 파동은 우리 몸을 변화하게 하고 기질도 아주 맑게 해주고 이런 기능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또 어려운 수학책 이런 것도 다 낭송할 수 있죠. 제가 고등학생일 때 수학선생님을 짝사랑해서 수학책을 다 외워 버렸잖아요. 그 덕분에 제가 로그와 수열을 아주 사랑하게 되었죠. 제가 수학선생님을 짝사랑할 때 진도가 그거였거든요. 그때 저는 풀이과정이나 이런 것을 계속 머리로 리플레이하면서 중얼거렸어요. 마찬가지로 과학책이든 수학책이든 소리 내서 내가 친구들 앞에서 풀어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물리구조나 수의 이치 같은 것을 이야기로 해본다, 이러면 되게 멋진 일이에요, 사실. 되게 멋있어요, 그렇게 하면. 그러니까 사실 낭송에는 경계가 없죠. 인생과 우주의 지혜가 담긴 언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우주적 파동이 담겨 있다, 이걸 기억하시면 아마 굉장히 많은 책들을 낭송으로 만나게 될 겁니다.

 



<사유>

지식 지혜 진리를 몸의 파동으로 접하다

소리의 파동은 뼈에 새겨진다.

새벽에는 옴(우주가 열리다)

존재의 변화

밤에는 반드시 불을 끄야 한다.

샘명은 자기 힘으로 한 걸음 내 딛을 때 살맛이 생긴다.

내 힘으로 했다. 소리내어서 읽다.

소리내어서 배출구를 걸어야 된다.

살아있다. 생각 말 걸어야 한다. 살아있다라는 증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으로 관계를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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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결실의 철학

방법서설(2부)

아주 어려운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하학자가 흔히 사용하는 이주단순하고 쉬운 근거들의 긴 연쇄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했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참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선뜻 받아들이지 말고, 어떤 것을 다른 것에서 연역할 때 항상필요한 순서를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 도달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숨겨져 있어도 결국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말이다.
 
 이러한 통일성에 착안하여, 그는 모든 학문이 하나로 통일된 ‘학문의 나무‘ 를 구상한다. 이 나무의 뿌리는 형이상학으로, 줄기는 자연학으로, 가지는 실천학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선, 그의 주요한 관심사는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인식, 곧 자연학(오늘날로 말하자면 물리학, 화학 등의 이론과학)이었다. 이 자연학은 학문의 나무에서 줄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론은 단지 이론으로 끝나선 안 된다. 인간에게 유용한 결과를 가져다주어야 한다. 인간이 따먹을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열매를 따는 것은 나무의 뿌리에서도 아니고 줄기에서도 아닙니다. 열매는 오직 가지 끝에서만 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의 주요한 유용성은 바로 이 부분에 달려 있으며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것도 이 부분뿐입니디 - P148

 데카르트는 (인식론을 포함한) 형이상학을 뿌리에, 자연학(물리학)을 줄기에, 실천학을 가지에 두는 학문의 나무를 완성했다. 

이는 그가 학문을 바라보는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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