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14p~50p
제1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제1장 좋음과 목적
제2장 최고선과정치학
제3장 논의의 방법
제4장 최고선에 관한 통념들
제5장 행복과 세 가지 삶의 유형
제6장 좋음의 이데아 비판
제7장 우리가추구하는 좋음과 행복
제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제9장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들
제10장 행복과 운명
제11장 행복과 죽음이후
제12장 칭찬과 명예
제13장 영혼의 탁월성

제2권
제1장 탁월성의 기원
제2장 성격과 습관
제3장 성격적 탁월성은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한다
제4장 풍성상태와 행위
제5장 탁월성의 유
제6장 탁월성의 종차(중용)
제7장 성격적 탁월성들의 소묘
제8장 중용과 극단

제3권

제4권

제5권

제6권

제7권

제8권

제9권

제10권


책소개
2,300년을 이어온 서양 윤리 사상의 정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끼친 사상사적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17~18세기 무렵까지 유럽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철학과 과학의 역사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수용, 전개, 비판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이후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배적 권위가 상실되고 나서도 그의 사유는 근대 지성인들의 체계적 학문 활동에 중요한 방법론적 역할을 해왔다.
그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의 사상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며, 특히 이 책의 가치는 2,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양 윤리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고전(古典)으로 꼽히고 있다.

‘행복‘ ―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행복(eudaimonia)이다. 행복이 윤리학적 사유의 핵심 주제라는 것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이 책의 전체 텍스트에서 개진되고 있는 숱한 세부적 문제들과 숱한 관련 논문들은 모두 하나의 기본 관심사, 즉 "어떤 삶이 좋은 삶, 즉 행복한 삶인가?"라는 하나의 문제에 정위(定位)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철학적 행복론을 구성할 때 건전한 상식을 따르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행위들이 지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최고선이며, 최고선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 행복이란 인간의 좋음[선] 중에서 가장 큰 선이다. 우리가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행복 그 자체를 위해서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7장에서 연구자들 사이에서 ‘기능 논증‘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석 틀에 입각해 행복의 구체적 정의에 도달하고자 한다. "각각의 인공적 존재의 기능은 무엇인가? 각각의 자연적 존재의 기능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의 연쇄로 이루어진 이 논증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의미심장한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고유 기능은 ‘탁월성에 따르는 이성적 영혼의 활동‘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최고선이며 행복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탁월성만 갖고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따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도 충족되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러나 물질적 조건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행복을 구성하는 핵심 인자는 탁월성[덕]이다.

탁월성 ― 행복을 구성하는 핵심 인자
따라서 우리는 반성적 수준에서의 행복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탁월성‘이란 무엇이며, 또 탁월성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탁월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적 탁월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성격적 탁월성이다. 지적 탁월성은 유전과 교육의 결합을 통해 생겨나며, 성격적 탁월성은 모방, 실천, 습관 등을 통해 얻어진다. 우리가 계발한 습관들은 결국 품성상태(hexis), 즉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안정적 성향으로 전환된다.
성격적 탁월성은 성격적 상태가 중용(中庸)의 원칙과 일치할 때 얻어진다. 탁월한 발휘의 품성상태, 즉 탁월성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 상태로 성격적 탁월성은 결국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중용 안에 있으면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품성상태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고전 그리스 문명이 지닌 도덕적 세계관의 정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러한 궁극적 목표를 위해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그는 서양윤리학의 근간을 세우는 이정표를 남기게 되었다.




- P14

1. 생애와 전승된 저작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북동부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냈다.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왕실의 시의(侍醫)였기 때문에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후견인의 손에 양육되는데, 이 후견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플라톤밑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기원전 367년에 그를 아테네로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단지 강의와 토론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학자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20년이라는 긴시간 동안 플라톤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아테네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지만, 『정치학 집필과 강의를 통해 학문적 차원에서 정치에 관한 독자적인 이론을 제시했으며, 후에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학문적 연구와 교육에 인생을 바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풍부한 지식과 박식함을 갖춘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플라톤과 아카데미아 동료들의 사상뿐 아니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과 고대 그리스의 시문학, 나아가 생물학과 그 시대의 첨단 과학 지식에도 정통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학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 P388

1389그러나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고 그의 조카 스페우시스가 아카데미아의 새 원장이 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아테네를 떠난다. 플라톤이 사망한 직후에 그가 아카데미아를 떠난 이유를 알려주는 정확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과 학문적 관심이 달랐던새 원장 밑에 남아 있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는 아소스에서 아카데미아의 분교를 설립했으며 이때부터 독자적인 견해를발전시키기 시작한 듯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타르네우스의 통치자인 헤르미아스의 양녀 피티아스와 결혼한다. 기원전 342년에는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이 그에게 자신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위탁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 원정 준비에들어가던 335년,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학원을 별도로 설립한다. 이미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들을 발전시키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아카데미아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학원은 아폴론신전의 경내인 리케이온에 있었기 때문에 리케이온 이라고 명명된다. 이곳에서 토론하던 학원 구성원들은 지붕이 덮힌 산책로를 이리저리 오르내리며 토론하는 습관 때문에 페리파토스 학파‘, 즉 이리저리 걷는 자들 이라고불리기도 한다. 리케이온은 교육을 담당한 것 외에도 성숙한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연구 및 조사를 수행하는 공동체의 성격을 띠기도 했는데, 이런 성격은 리케이온이 아카데미아보다 더 두드러졌던 것 같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불경죄 - 소크라테스가 기소당한 바로 그 죄로 기소당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아테네인들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테네를 떠났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어머니의 고향인애우보이아의 칼키스로 가서 이듬해(322년)에 세상을 떠났다.


- P389

니코마코스 윤리학 작품 해제

1. 작품 제목과 문헌의 전승 문제

고대의 한 보고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약 200년 동안의 세월을동굴 속에서 보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떠난후(기원전 322년) 그의 문헌들은 제자였던 테오프라스토스에게 전해졌고, 그가 죽자 다시 넬레우스에게 상속됐다. 그에 의해 소아시아 지방의 한 도시로옮겨진 문헌들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보관됐다. 어느 날 도시를통치하던 왕이 페르가몬에 세울 도서관을 위해 열심히 책을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넬레우스의 후손들은 소장하던 문헌들을 일종의 지하동굴 속에 숨기는데,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세상과 절연된 채 20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아펠리콘이 거액을 주고 이 문헌들을다시 아테네로 사들이는 데서 이어진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고향에 오래 머물지 못할 운명이었는지 곧 로마 장군 술라의 전리품으로 로마로 옮겨지게 된다(기원전 84년). 이때 로마에 도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이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편집되었으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이라고 알고 있는 작품들의 근간을 형성한다. 안드로니코스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묶어 적당한 제목의 책으로 편집하고 작품들을 일련의 순서에 따라 정돈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 - P406

에서 유명해진 작품이 앞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s)이다. 안드로니코스는 편집 과정에서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는저작들이긴 하지만 그 주제적 통일성을 표현할 제목을 찾지 못해서, 이 일련의 소저작들을 타 메타 타 피지카(ta meta ta physika), 즉 "자연학 저작(physika) 뒤에 (meta) 오는 작품들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다. 

만약이러한 보고가 맞다면, 내용에 맞는 적당한 제목이 없어서 전체 작품군 내에서의 위치를 지시하는 방식으로 붙여진 제목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이상학(metaphysics)‘ 이라는 말의 역사적 뿌리인 셈이다. 1831년에 벡커에 의해 편찬된 『이리스토텔레스 전집』이 근거하는 필사본들은 로도스 섬 출신의 안드로니코스가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20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이야기는 전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작품들의문헌적 성격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가지고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애초에 그렇게 의도하지않았던 작품들일 수 있으며, 전승 과정에서 위치가 바뀌거나, 편집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와는 달리 여러 편을 묶어 제목을 붙인 것처럼 전승 과정에서의 우연에 기인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전승 과정의 문제는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도 적용된다. ㄱ
- P407

2. 작품의 역사적 배경IDEO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고전 그리스 문명이 지닌 도덕적세계관의 정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도덕적 사유들은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혹은 다른 시인의 작품 속에서개진되는 형태이든, 혹은 인구에 회자되는 속담과 격언의 형태이든, 논의되는 주제에 관한 선대의 의견 내지 통념의 형태로 검토되고 있다. 문학작품이나 속담 속에 담겨 있는 도덕적 사유들은 이미 서로 다른 입장들을 보여 주고있는데, 이러한 사정은 그리스 문명 세계가 소위 소피스트들의 등장을 경험한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소피스트들의 등장이 가져온 도덕적 - P412

혼란은 전통적 가치에 대한 소피스트적 이성이 도전한 결과라고 진단할 수있을 것이다. 자연적인 것과 규약적인 것, 혹은 법(nonos)과 자연(physis)의 대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혼란은 전통적인 가치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의 단면을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 2권에 등장하는 아데이만토스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말을 남긴 최초의 영웅들을 위시해서 요새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올바름(정의)의 예찬자들이라는 여러분 모두 가운데서 아직껏 그 두구도 올바르지 못함을 비난하시거나 올바름을 찬양하심에 있어서 평판 이나 명예 또는 이것들에서 생기게 되는 선물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만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각각이, 그걸 지니고 있는 자의 혼 안에 있으면서, 그 자체의 힘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신들도 인간들도 주목하지않았습니다.

 시를 통해서건 또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통해서건, 한쪽은혼이 자신 안에 지닐 수 있는 나쁜 것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인 반면 에, 올바름은 가장 좋은 것임을 논변으로써 (이론적으로) 충분히 펴신 분은 아직껏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발언에 따르자면 올바름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는 이제 논변을 통한설득을 요구받는 단계에 이른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가치들은 이제소피스트적 논변의 길을 통해서건, 아니면 소크라테스적 논변의 길을 통해서건 본격적인 도덕철학의 주제가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은 문학작품이나 격언 속에 드러나는 전통적인 도덕, 삶 속에 침윤된 - P413

도덕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철학적 반발 내지 반성까지 자신의 윤리적 사유의 체계적인 재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그리스 문명이 보여 준 도덕적 세계관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유의 재료로부터 나온 결과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라는 작품이며, 이 작품은 이전의 전통적 사유, 철학적 논변들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에 종합해 냈기 때문에, 고전 그리스 문명이 내놓은 도덕적 세계관의 정점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하는 것은일차적으로 역사적인 관심의 결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나타난 도덕적 사유의 전통들이 어떤 방법을 가지고 어떤 체계 속에서 정돈되어 왔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전통이 제기한 문제들을 어떤 형태로 중재하거나종합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역사적인 문제가주어졌으며 어떤 철학적 반성을 통해 결국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에 일차적인관심을 가진다는 뜻이다. 물론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이러한 역사적 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 전제하는 인간 본성(physis)이 역사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그의 논의가 단순히역사적 인 것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차적 관심은당연히 그의 윤리적 사유와 그가 동원한 방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 가지는관심은 철학적이다.


1. 전통과 이성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관심을 위해 몇 가지 관점을 동원할 수 있겠지만 일단전통과 이성을 축으로 접근해 보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즉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모든 점에서 - P414

그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병들었을 경우에는 의사의 말을 따르고 장군을 선출할 경우에는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마찬가지 하는지, 동료에게 선행 (charis)을 베풀기보다 먼저 은인에게 선행을 갚 로, 만약 둘 다 할 수 없을 경우 신실한 사람을 돕기보다 친구를 도와야아야 하는지. 이런 종류의 모든 문제들을 엄밀하게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사안의 크기, 경중이나 고귀함, 또 절실함에 있어서 수없이 많고 다양한 차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 제기에 등장하는 아버지‘ 를 전통적인 도덕이 제시하는 삶의 질서를대표하는 사람으로, ‘의사‘나 ‘장군‘을 전문적인 합리성의 대표자로 이해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하는 문제의 수준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이나 결론도 물론 관심의 대상이지만,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은 이런 물음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당대 그리스인들의 딜레마의 뿌리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친숙하지만정확한 근거를 대지 않거나 댈 필요를 느끼지 않는 전통과 전문적인 지식 내지 이성이 충돌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또 어떤 이유에서 선택해야 하는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이러한 문제를 문제로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문제는 그리스 사회의 역사적 진행이 자신과 함께 가져온 도덕적 문제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사유는 이것을 소재로 출발한 것이다. 도덕이 전적으로 이성의 문제라고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가 낯설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역사적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감히 지나칠 수 없는 도덕적 문제였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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