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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흰기러기
전쟁이 사람에게 남기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문학을 통해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전쟁에 휘말린 일반인의 삶은 처참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것에 대한 민감성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생떽쥐베리의 작품에서도 왠지 모를 전쟁 냄새가 났었고, 헤밍웨이나 기타 여러 작가에게는 더욱 전쟁이라는 틀거리를 통해 새롭게 조명된 인간사는 깊은 통찰을 주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이상하게도 이 고요함이, 전쟁과 악다구니 치는 삶에 정면으로 반하면서도 기묘하게 어울린다. 이 책에 실린 두 가지 이야기는 각각 평범하지만 작은 용기를 발휘한 사람을 그려낸다. 두 사람의 삶은 어쩌면 바닥인생이다. 일반의 기준치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이들은 용감하다.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이들에게 기대고 깃들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의 여유며 둥지가 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의 여유없이 살기도 한다. 기존의 것을 지키느라 에너지가 많이 드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가진 자의 여유없음이 생경하다. 이런 상황이 말없이 그저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가진자의 마음이 되어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벌써 많은 것을 가졌고 ,욕심을 내고, 마음이 황폐해졌구나. 이들 주인공처럼 용기를 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사람이 중하고, 미물이 중한 두 주인공은 사랑으로 자기것을 포기하고 자기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어쩌면 나머지를 다 잃을 수 있는 상황에도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했다. 그 결단에 감탄했다. 그 누군가가 쳐든 그 깃발 하나가 많은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오늘, 나는 누구이며, 무슨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통해 누구에게 유익을 주고 있으며, 살아 숨쉬고 산소를 소모하여 남긴 이윤은 무엇인가. 긍정적이고 따스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죽어서 남길 것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점검하고, 삶의 리스트를 곰곰 따져볼 때다.
항상 급한 일 먼저, 부닥치는 일, 괴롭게 하는 일 먼저 하다보니, 내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고, 주변에 마음과 눈길 줄 여유가 너무도 없었다. 이 책은 짧은 우화지만 용기를 가르쳤다. 사랑을 말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속에 기러기를 돌보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자가 설움받는 쪽을 택할 것인지 유익을 끼치는 쪽을 택하는 것인지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고아면서 내몸같이 당나귀를 아낀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뭐든 안된다는 기성세대의 불가능과 긍정성으로 상황을 바꾸고, 포기하지 않는 삶을 배웠다.
한발 다가가는 용기.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안될 것을 바라보지 않고 되리라 믿고,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후회없으리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