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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 유명한 책이라 긴 말을 덧붙일 필요없다. 명불허전. 일본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문화를 접하면서 호기심을 느껴왔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시간을 적잖이 아꼈을 것 같다. 왜 고마운 상황에 '스미마센'이라고 하는지도 알았을 거고. 고맙다고 하지 왜 미안하다고 할까. 고맙다는 뜻의 말도 '아리가토'도 말 그대로 고맙다는 말은 아니다. 갚을 길이 없다는 뜻이란다.
혼네와 다데마이란 일본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는 말이 있다. 속심과 겉으로 드러난 표정은 다르다는 건데, 겉으로는 한껏 예의를 차린다. 거절의 말을 못하고, 알아서 상대가 물러나주길 기다린다. 그 사람을 미안하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갚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일본이란 나라는 정치부터가 특색있다. 천황에 대한 주(忠)와 바쿠후의 쇼군에 대한 것이 양립한다. 중국에서 유교와 정치제도를 베껴갔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바쿠후는 바뀌었지만, 단 한번도 천황은 바뀌지 않았다.
내각도 영국제도를 응용했지만 또 나름의 특색이 있다. 혁명이 없고, 각자에게 부여된 정확한 위치가 있으며, 카스트가 존재한다.
제목처럼 국화와 칼이 공존한다. 평화주의와 실리를 위한 전투가 함께 있다. 지금까지 느끼기로는 양극단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군국주의와 평화주의, 천황과 쇼군, 정복과 복종. 그리고 기무와 복수.
일본의 문화를 '잔인한 절제의 미학'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철저히 쇼군 한 사람만을 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분재를 봐도 아름답긴 하지만 정해놓은 크기 만큼 자라게 하기 위해 못 크게 하고, 잘라낸다.
쇼군에게는 많은 오오쿠 내에 여인들이 존재하지만 평생 싱글로 늙어죽는다.(우리나라 국왕도 같았으니 특이한 내용은 아니다.) 그 한 사람만 위해 단장하고 바라보고 산다.
나막신, 종종거리고 걷게 만드는 일본특유의 유카타, 하얗게 칠한 가부끼 분장. 지극히 절제된 몸동작까지. 한 명의 명령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나라 일본은, 가정의 형태도 비슷하다. 오야지(가장)를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절대적인 의무와 권력이 부여된다. 정략결혼을 명하면 그대로 따라야한다.(지금은 좀 다르다)
서열이, 가장, 장남, 차남, 딸, 어머니 뭐 이렇게 되었던 거 같은데, 여자는 상당히 존재감이 낮다. 쇼군과 천황이 중시되고, 나머지는 부속으로 여겨진 것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주, 고, 기리, 진. 인정 등의 표현 등에 일본인의 인생관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치 지도위에 여러 지역을 표시하듯이 이들은 정확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 인생관이 상충할 때도 있다. 그러면 셋푸쿠하는 일을 당연시한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성내에 첩자로 들어갔던 여인이 목적을 달성하고, 적군을 가까이서 보필한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놀라운 건, 이런 가치관을 가진 그들이, 일단 한번 그 틀을 벗어나면 다시 일본의 굴레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포로가 되어서 천황을 위해 자폭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상세하게 약도까지 다 그려서 정보를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지침이 없어져버린 순간에 그들은 할 바를 알지 못한다.
물론, 지금은 21세기. 저자가 글을 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일본인의 사고도 다양해졌고, 은혜갚기 위해서만 살거나 하지는 않는다. 허나 문화에 배어나오는 모습과, 두가지가 공존하기 어려운데 버젓이 어울리고 있는 데 대해 이 책은 많은것을 알려주고 있다. 일본에 가본 적 없이 깊은 통찰로 쓴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