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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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버지가 홀로 부엌에 섰다. 딸이 넷이요, 아들이 떡 하니 있었지만 아버지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솔로인 셋째는 아버지의 판박이라 성격이 더 똑 닮았다. 그러고 보니, 모시고 살기는 더 어려웠다. 차라리 떨어져 살면서 도와드리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나았다. 이 책은 아버지와 셋째딸이 주고받은 일기와 편지를 모은 책이다.

부모님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하시지만 이 책에서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아들’을 선호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 가문의 성(사하시)을 가지고 있는 건, 아들과 출가하지 않은 딸 뿐이라면서 아들에게 몸을 맡기려다가 여의치 않자, 딸에게 자신을 책임지라고 아버지가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딸이 참으로 솔직하게 ‘곤란하다’ 글 속에 자분자분 표현해 놓았다.

아버지는 된장이며 두부를 어떻게 아끼고 살림을 하는지 새로이 배워 나간다. 노망을 피하려고 머리를 쓰려고 애쓰고, 깔끔하게 씻고, 참으로 눈물겨운 홀로서기에 나선다. 올해로 내 어머니도 환갑이다. 아직 중년으로밖에 안보이지만 고작해야 몇 년 이후면 엄마도 힘들어 하실 게다. 일하면서 손을 놓으면 팍삭 늙는다고 하지 않던가. 아버지도 역시 머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어느 샌가 부엌의 일정부분을 차지 하신 지 이미 상당히 되었다. 엄마의 일을 나눠주신 것이다. 이제는 명절에 엄마는 음식을 하시고 아버지는 설거지를 하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분이 아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의 모습은, 입장은 어떨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딸이다. 아들이 둘이니 두 분은 아들들을 의지할런지도 모르겠다. 아들 딸이 어딨냐는 세상이지만, 사소한 거 하나에도 곧잘 헤어지는 세상이다. 한편 내가 사랑하는 부모가 혹여 쬐금이라도 소홀할까 싶어 차라리 혼자 사시도록 권해드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나도 내내 해보았다.

이 책의 최대 감동은, 솔직함이었다. 치부라 생각될만한 것도 주저없이 드러내놓고, 다함께 노인들의 실제 어려움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대단했다. 내 부모도 늙어가고 있다. 운신하지 못할까봐 점차 두려워하실 것이다. 나 역시 이대로 싱글로 살아간다면 전씨 가문의 성이 내 동생이 자손을 보지 않는 한, 끊어질 것이다. 고령화 사회다.

부자만 결혼할 수 있고,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유럽에서 나왔다. 아니, 설문이 아니고, 결혼한 사람들을 분석해보았더니 그랬다는 이야기다. 예전엔 가난한 집에 아이가 더 많았다. 상황이 이러고 보니, 이 사회는 고령화 인구를 짊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를 맞딱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노인들도 무척 처량하다.

이제 추풍낙엽이라고, 노인들이면 벌써 저문 나이다. 나이 들어 몸을 추스려 돈을 번다는 것이, 외로움을 이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잘 공양하는 것도 사람이 할 도리지만,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할 거리와, 잔잔한 감동, 가슴 짠한 구체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도록 한 아주 좋은 수필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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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둘리 2007-08-0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읽다보니 저도 이 책이 싶어지네요. 추천합니다. ^^

뽀작 2007-08-2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이 책 읽고 많이 울었답니다. 꼭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