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공부의 배신. 원제는 Excellent sheep : the miseducation of the American elite and the way to a meaningful life. 

Excellent Sheep

명문대 학생들은 특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마치 양떼처럼'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간다.

특별히 아주 새로울 것 없는 비판이지만, 미국의 현 교육제도의 상황, 그리고 우리의 모습까지 날카롭게 지적했다. 계속 책을 보는 중간에 덮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고여있는 현실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제 너무나 통속적인 비판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모두가 잊고 사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 읽고 끊임없이 우리의 상황을 비판하고 되돌아보아야 하기에 이 책의 저자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양치기와 양

저자는 이 책을 스무 살 무렵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저 채워나가야 할 인생의 '빈칸'처럼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도 막연히 안정된 직장을 향해 달려가는 스무 살 무렵의 저자와 소름돋게 겹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진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대학의 존재 이유와 우리가 대학에서 채워나가야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자아성찰 능력은 정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핵심적인 전제조건이며, 자아성찰의 주요한 전제조건은 고독이다." -p.9 대학에 다니면서 자아성찰, 고독, 정신적인 삶 같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요즘은 교육이라는 것의 가치가 거의 취업과 동일시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명문대에 들어가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걸까?

"교육이란 인간에게 사회적 가치를 설명하는 일이다. 다음 세대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 이것이 교육이다." -p.11

마치 특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목표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온순하게 그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은 우리가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이 교육 시스템에 대한 논의로 시작된다.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시스템에 잡아먹힌다는 걸 뜻하죠. 저는 제 친구들이 건강, 인간관계, 모험, 취미활동을 희생하는 것을 봐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량화할 수 없으며 영혼과 마음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걸 학점과 이력서를 위해 희생하는 거죠." -p.22 대학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모든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뎌내고 어쩌면 우리에게 더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을 공부와 관계없는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포기해왔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사실상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없으며 목적 없는 삶이 더 연장되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대학만 바라보며 입시 전쟁을 견뎌내고, 좋은 직장만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스펙을 쌓고 또 하나의 전쟁을 견뎌내고, 그리고 결혼 후에는 육아전쟁이 기다리고 있는게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씁쓸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남들이 잘 닦아놓은 인생의 노선을 그대로 온순하게 따라가는 양떼들 같다. "우리는 함께 모여 신중하게 움직였어요. 몇 안 되는 잘 닦인 길로, 앞서 찍힌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죠. 그 길을 따라 2년 혹은 4년을 가다 보면 우리가 다시 구분되지 않고, 여전히 가능성이 넘쳐나는 줄기세포가 될 수 있으니까요." -p.36


"이들이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보상은 더욱 커졌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 모두 자신이 가짜라는 기분을 느끼며 자신보다 남이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p.24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리 속에서 벗어나는데에 불안감을 느낀다.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으로 전락할 것만 같은 불안감. 그 길을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고통스럽지만 그저 혼자 고통받느니 다같이 고통받는 길을 선택한 걸까. "늘 바쁜 상황에 중독된 아이들의 경우, 무언가를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비어 있는 시간을 끊임없이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못하게 되고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부족해진다는 데 있다. " -p.103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일제히 가리키던 반짝반짝 빛나는 목표지점에 일단 도달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명문대의 정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때야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이제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교수님은 저희에게 '네 열정을 찾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 방법을 모릅니다."" -p.25

힘든 입시전쟁을 치른 후에 보상처럼 받은 대학생활이기에 처음 1-2년은 그저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아무생각없이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놀며 허비한 후에야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때문에 이 곳에 왔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아무 생각이 없다.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제 취업전쟁이 눈 앞에 다가왔음을 느끼고, 이제 그 문을 향해 달려가기에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에서, 취업하려는 회사에서, 때로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어른들에게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질문받는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을 하기 위해 그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도 그저 정해진 답을 찾아 그대로 대답할 뿐이다.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무엇에 열정을 바치고 도전하고 싶은지 우리는 그 답에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살면서 한 번도 그러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고,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엘리트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마주치는 가장 큰 문제는 탐욕이 아니라 바로 '관성'이다. 만약 엘리트 학생들이 돈을 쫓아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건 이들이 대학 시절에 가치 있는 내적 삶의 목표를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졸업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서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p.39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돈보다 가치 있는게 뭘까. 사실 그런 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거 아닐까. 하지만 사회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해도 한 개인이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 물질은 그저 이미 가치가 있는 내 인생을 최소한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연어의 회귀

"수가 많은 게 안전했다." -마이클 루이스

"충분한 자격, 방향상실, 선택권을 잃고 싶지 않은 열망을 뒤로하고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힘은 바로 '두려움'이다. (...) 설령 일시적인 경험이라 할지라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은 단순히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존재론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은 아예 회피하기 때문에 실패할 일이 전혀 없다." -p.41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 문제 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닦아 놓은 안전한 길로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모두의 등에 얹혀진 그 수많은 기대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목표의식을 상실한채 그저 안전한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헬리콥터 부모: 아이의 곁을 빙빙 돌며 압력을 가하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 부모.

"헬리콥터 육아법은 자녀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된다. 즉, 삶을 예측이 가능하며 안정과 위안을 보장하는 질서정연한 성취의 과정이라 여긴다. 열일곱 살인 자녀에게 수학 과목에서 A학점을 받으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여덟 살인 자녀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이 두 가지 모두 자녀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로 다루는 행동이다. " -p.71

답이 정해져 있는 인생은 없다.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부모에게서, 대학에서도 우리는 인생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답을 온순하게 찾아가는 착한 아이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을, 십 대에게서 청춘을 훔치고 있다. 우리는 젊음을 규격화했다. 수많은 대학생이 순종과 용기 사이에 갇혀 있듯이, 많은 부모가 아무런 생각 없이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이들이 달라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아이들을 다르게 키워야 한다." -p.92

"부모의 승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 부모 없이 혼자 힘으로 사는 걸 배우는 것이다. 즉 성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항을 해보지 않은 아이는 영원히 아이로 남는다. (...) 부모의 상속을 자의적으로 수정하는 것. 부모의 실망을 거부하고 폭로하고 투덜거리는 의지를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지적이고 정신적인 자유를 위한 절대적인 전제조건이다. " -p.181 ~ p.183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헬리콥터 부모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이든, 부부든, 연인이든 서로가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누군가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의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독립된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아닌 부모를 위해, 누군가의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양에서 '인간' 되기

"삶이란 직업 그 이상이다. 직업이란 봉급 그 이상이다. 국가란 국부 그 이상이다. 교육이란 시장에 내놓으면 잘 팔릴 기술을 습득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리고 당신은 고용주의 순이익 또는 국가의 GDP에 공헌하는 가치 그 이상이다. " -p.120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을 울린 구절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앞만 보고 내달리던 인생 앞에 한 발자국 물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돈도 벌고 일자리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그저 고용주의 충실한 일꾼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은 단지 학생들을 취업시키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직업전문학교와 대학이 다른 이유가 그저 이력서에 붙는 간판이어서는 안된다. 


"대학이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 습관적으로 의심하고 이러한 의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을 개발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각자 자신만의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잊어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깨닫도록, 그것에 의문을 품도록, 그것에 대해 자기 방식대로 사고하도록 가르쳐줘야 한다." -p.122~123

중고등학교때의 주입식 교육도 문제지만 대학까지도 그저 떠먹여주는 식의 교육이어서는 안된다. 답이 정해져 있는 교육이 아닌 생각하고 의심하고, 사고를 키우는 방법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10년 넘게 끊임없이 배웠지만 누군가 알려준 정답 이외의 것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이다.

"대학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대학의 힘이다. 저명한 인문학자 앤드루 델반코가 말했듯이, 대학은 "삶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에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p.124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에, 어른들이 말하는 '가장 좋을 때'인 대학생은 '자신'에 대해,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답이 있는 시험지가 아닌 답이 정해져있지 않은 백지 앞에 서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대체 가능한 상품이 되길 거부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교육의 결과다." -p.132

내가 다른 '나'와는 다른 인격체임을, 그들과 대체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는 것이 시작이다. 


"당신이 대학에서 경험하는 것들 대개는 불가피하게도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남는 것은 바로 당신뿐이다." -p.133

"무엇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는지 모른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p.137

직업이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관심이 있고, 잘하고, 가치 있다고 믿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다시 '나'에 대한 공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공부해야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 것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이 삶을 위해 노력해야하는지 알 수 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내게 어느 날 교양과목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 교수님은 영어 과목 교수님이셨지만 교재에 있는 말보다 인생 수업을 더 많이 해주시던 분이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의미있었던건 그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것과 송만석 교수님의 철학 수업을 들은 것이다. 물론 전공수업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인생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도 많이 읽었다면 모를까 입시 공부만 하던 중고등학교때부터 본 책이라곤 수능이나 논술에 관련된 것들 뿐이어서 한 번도 인생을 살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알려주고, 처음으로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도와준 시간들이었다. 그 당시 교수님은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인생에서 인간관계, 가족의 가치가 무엇인지, 돈보다 행복을 찾아야하는 이유가 뭔지 알려주었다. 다른 어떤 수업보다 더 기억에 남고 뜻 깊은 수업이었다.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그 일을 하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라.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게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라." -p.148

고맙게도 난 꿈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을 보고 그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내 어깨에 올려져 있는 모든 책임과 기대감을 저버릴 용기가 내겐 없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 기억은 아직도 살면서 나에게 많은 의문을 준다. 그 때 포기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후회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없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믿지만, 그저 이게 최선이라고 합리화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 이렇게 사는건 행복할까. 때때로 드는 의문에 아직도 확실히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나는 여전히 주변 상황을 물리치고 나만을 위해 살 용기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 모든게 제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고마운건 그 때의 그 절박했던 심정이 대학생활 4년을 계속 고민하게 만들어주기도 했고, 결국 좀 오래걸렸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길을 찾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기회가 없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나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서있는 이 길 위에서 멈춰서서 의문을 던져야한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생각은 모두 버리고 백지상태에서 새로 배워야 한다. 한번도 공부해보지 않은 '나'에 대해, 내가 살아야 할 '삶', '세상'에 대해. 


"유니스는 모건스탠리에서 하루에 12시간 일했다고 했다. "심장이 그곳에 있지 않으면 지독한 생존경쟁에 몸담고 있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집에 갈 때 행복해야 하는 겁니다." 열망하는 것과 살아가야 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유니스는 이를 '지속가능한 삶'이라고 멋지게 표현했다." -p.157

어떤 일을 몇 시간이고 푹 빠져서 해본 적이 있다면, 그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하루하루 연명해나가는 삶이 아닌 '지속가능한 삶'일 것이다. 몇 시간이고 푹 빠져서 즐겁게 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이유가 될 것이고, 그렇게 즐겁고 잘 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용기가 있다고 해도 이 모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해도 쉽게 선택하기 힘들다. 어쩌면 이 모든건 어느정도 집안 사정이 여유가 있을때나 할 수 있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자아실현은 사치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살기 빡빡한 세상이니까. 게다가 어떤 직업은 슬프게도 돈이나 연줄이 본인의 직업에 대한 확신이나 능력보다도 중요하기도 하다. 좋은 대학에 가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알기 힘드니 일단 선택의 폭을 넓히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현실이고 우리는 이 현실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시간을 가져라,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되돌아보아라. 끊임없이 재생되는 성취욕의 고리를 끊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감시에서 벗어나 학교 밖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그리고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기술을 개발하고 능력을 탐구하라." -p.183 정해진 답은 없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나를 둘러싼 울타리를 벗어나 나에 대해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러분이 열정을 찾는 게 아니라 열정이 여러분을 찾을 겁니다. 오랜 시간 여러분이 그다지 원치 않는 일을 열심히 한 뒤에야 비로소 말이지요." -p.187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의미있는 것들일 수 있고, 낭비라고 느끼는 것이 낭비가 아닐 수 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창조하라는 거 무엇이든 원하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란 뜻이 아니다. "노력 앞에 불가능이란 없다." 또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될 수 있다."는 말은 요즘 아이들에게 주입되는 일종의 신화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다. (...)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것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p.189


대학이라는 '특권'

미국 재무부 장관과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배운 것은 10년 내에 장해물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빠르게 말이죠. 배우는 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배움입니다." -p.226

진정한 배움이란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힘들고 더디게 정보를 얻어내 자신의 생각을 논리있게 정리하고 의심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쟁하고 자신의 논리를 정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기초학문 교육은 더이상 돈 벌어먹기 힘든 학문이 아니다. 기초학문은 우리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인문학은 나와 사람, 삶을 알게 해준다.


"명문대들은 자신의 전공 영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최고의 학생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p.248

지식세계가 복잡해질수록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것보다 다양한 학문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의 교육은 현금화, 사유화되었다고. 대학은 수업의 질보다는 이윤을 추구하고 있고, 교수는 더 이상 학생들의 멘토가 아닌 학자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닌 앞으로 이끌고, 깨우고,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기관은 어느 누구도 복제하거나 자동화할 수 없으며, 대학은 기초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p.272

보통 좋은 대학에 가는 이유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학생들만 다르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실로 아주 큰 차이다." -p.278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똑똑한 양떼 무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은 당신이 원하는 사람, 당신이 되고자 결심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한 번도 꿈꿔보지 못했던 사람이 될 수 있는 당신만의 기회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학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당신 자신이다." -p.289


'학벌사회'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이번 주에 교수님이 대형 강의실에서 모두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이미 자네들이 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의 99.9%를 얻었네.'" -<하버드 크림슨>

"여러분은 명석하고, 열심히 공부했을 것입ㅈ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행운아입니다. (...) 여러분의 또래 중 90퍼센트는 경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경주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p.303

"공정하게 취급받는 게 그 자체로 하나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열심히 일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 -p. 315

저자는 책에서 지적한 명문대 신입생 선발과정의 문제점, 기회의 불평등 같은 것들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결국 진짜 필요한 건 최고의 교육을 받기 위해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에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껏 쓸모없다고 모른체 해온 수 많은 가치들에 대해 뒤돌아보고 교육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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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중국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이욱연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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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분열과 통일의 반복
"분열하여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져서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한다."
상나라, 주나라, 그리고 공자, 한비자, 노자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난세를 해결하고자 고민하며 지식을 꽃피운 춘추전국시대까지 중국은 분열과 통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하나의 일통제국인 진나라를 만든 인물이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영토뿐만 아니라 글자, 사상, 제도 등 모든 것을 통일하지만, 화려한 업적 뒤에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 분서갱유로 산채로 묻힌 지식인들을 모른척 할 수는 없다.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당나라 때에는 보다 개방적인 왕조로 이 시기에 꽃피운 문화들이 지금 중국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당나라의 멸망과 함께 이민족인 몽골족과 만주족이 통치하는 원나라와 청나라 시대가 열린다. 한족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나라와 달리 한족과 한족의 문화를 존중한 청나라는 마지막 중국 전통 왕조로 여러 면모에서 태평성대를 이루지만 청나라 말부터 시작된 전쟁들과 아편전쟁에 패한 이후로 맺은 난징조약으로 인해 거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 이후 서구의 것을 배워야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공화제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로써 쑨원의 혁명으로 중화민국 정부가 수립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대 중국의 사상적 기원이 된 신문화 운동이 일어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한 중국은 러시아와 같은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되고 마오쩌둥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인 중국 공산당이 등장한다. 
마오쩌둥은 낡은 것들을 타파하고 완전한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 문화 대혁명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홍위병이 등장하고 사회주의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타도하고 몰아낸다. '10년 재난'이라고 불리는 문화 대혁명을 통해 수많은 지식인이 죽고, 많은 전통문화 유산이 파괴되었다. 지금의 중국이든 이 시대의 홍위병이든 역사적으로도 어느 한쪽으로만 너무 기우는 것은 결국 분열을 일으키고 어느쪽이든 건강한 체제가 되기 힘든 것 같다. 
마오쩌둥의 시대가 끝나고 과감하게 개혁 개방 정책을 내세운 덩샤오핑의 시대가 온다. 이로써 중국의 경제는 빠르게 발전하였다.

지리.문명. 땅은 넓고 문화는 다양하다
"강은 30년은 동쪽으로 흐르고, 30년은 서쪽으로 흐른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인생이나 세상일은 고정된 것이 없고 황허의 물길처럼 변하기 마련이며, 행운과 불행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 p.74
이는 중국인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말인데, 이처럼 중국인들에게 세상 만물은 영원히 고여있거나 멈추어 있지 않고 변하며 모든 것은 극에 이르면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주역>의 음과 양을 상징하는 두 괘도 나뉘어있지 않고 늘 결합된 채 서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중국인의 세계관이 이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인생관이 생겨난 점은 흥미롭다.



베이징과 상하이. 중국은 넓은 영토만큼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다. 베이징은 한 번도 안가봤지만 여행을 가보았던 상하이는 서구적이고 굉장히 화려한 도시이지만 곳곳에 식민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홍콩. 홍콩은 영국에 빼앗긴 중국의 땅이지만, 여행 다녀온 사람들은 중국이지만 중국 같지 않은 곳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중국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되찾으면서 홍콩은 중국에 빠르게 흡수되고 있지만 '노란 우산 혁명'처럼 이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퍼진 홍콩의 정체성을 잃을까 우려하는 홍콩인들도 많다. 
타이완. 중국은 타이완(대만)을 국가가 아닌 섬으로 간주하고, 타이완의 국기나 국가도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이주하면서 중국과는 다른 체제를 유지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미 타이완에 거주하고 있던 본성인과 국민당과 함께 넘어온 외성인들간의 갈등까지 심화된다. 2.28사건은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는 본성인과 언젠가 국민당의 주도로 중국 대륙과 통일하려는 외성인과의 갈등으로 대립한 타이완의 상황을 보여준다.
티베트. 티베트 또한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인과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이 대립하고 있다. 

정치.경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림길에서
중국은 독재와는 다른 일당 지배체제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받아들였지만 덩샤오핑 때 이후로 정치는 사회주의지만 경제는 자본주의인 "붉은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와 같이 중국도 부유한 사람은 계속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지는 모습이다. 21세기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중심에 있는 인물들에 대해 쓴 <야망의 시대>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중국에 대해 "중국은 고도로 기능하는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독재자가 없는 독재 정권이었다."라고 썼고, 이 말에 동감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당 독재 시스템과는 다르고 내부적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개방적인 태도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도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억압하는 '고도로 기능하는' 독재 정권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역사나 문화, 경제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피상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나열한 것 같아 그부분이 좀 아쉬웠다. <야망의 시대>를 다시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저 짝퉁 문화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산자이 문화는 새로웠다. 단순히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짝퉁 문화와 달리 산자이 문화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국회까지 가짜로 패러디해서 만듬으로써 풍자, 저항하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 변화를 거듭하는 중국
중국의 사회에 관해서는 언론 통제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공산당이 허용하지 않은 것들은 사용할 수 없고, 공산당이나 국가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 할 수 없다. 이에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단어들을 비슷한 소리가 나는 다른 단어들로 바꾼다거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저항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통제가 느슨해지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개혁 개방 시대에 한 자녀 정책으로 태어난 포스트80세대는 시장 경제 속에서 자라났는데, 이들이 교육받는 90년대에는 톈안먼 시위 이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애국주의 교육으로 인해 강한 민족주의 경향을 보인다. 이 세대가 지금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니 우리가 보는 중국의 민족주의적인 모습에 이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예술. 중국인의 다채로운 일상
중국인은 '나'를 중심으로 나와 관계(관시)가 전혀 없는 사람, 가까운 사람,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구분 짓는 관시 문화가 있어서, 친구 관계를 인간관계의 정점으로 생각하는데, 친하고 잘 아는 순서에 따라 대우도 다르다고 한다. 사람과 친해질 때 밥을 먹으면서 친해진다거나,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등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친숙하게 느껴졌다. 


음식 문화는 여행 갔을때도 신기했어서 다시 보니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다. 예전 중국 여행에서 밥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야 마지막에 볶음밥이 나와서 이해가 안갔는데, 원래 중국의 음식문화가 요리를 먼저 먹고 주식을 마지막에 먹는거라고 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한자의 동일한 발음때문에 생긴 문화인데, 배를 쪼개서 먹지 않는다거나 연인사이에 우산이나 시계를 선물하지 않는 것들이 한자의 해음현상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은 돈을 번다는 '파차이'와 음이 같아서 행운의 숫자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이 한자와 성조의 특징으로 인해 시가 특히 발달한 점도 흥미롭다.


중국 학회에 갔을 때 경극의 일부분을 본 적이 있는데, 이 경극은 중국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데,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는 연극이나 오페라와 달리 사람의 정신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더 중시한다. 이것을 나타내는 동작이나, 역할에 따른 분장이나 복장 등도 정해져있는데 경극에 대해 아는 것 없이 보았던지라 그 의미들이 다 있다는게 그리고 그게 역사와 관련된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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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시대 세트 - 전5권 공부의 시대
강만길 외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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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공부한당에서 받은 공부의 시대 소책자. 공부의 시대 5권 세트의 일부분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샘플북이다. 창비 출판의 책을 즐겨보는데 이번 공부의 시대 세트는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자본주의적인 그런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하는 것.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가는 것이 진정한 공부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를, 타인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진정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사람의 평생이란 길고도 험한 길입니다. 그럴수록 꼭 이 길을 걷고 싶다, 이 길만이 내 길이다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강만길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할까, 혹은 어떤 길을 가고있을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가진 신념이 가끔 합리화라고 느껴질때가 있다. 내가 확신을 갖고 있는게 맞을까. 정말 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이 곳이 맞을까. 그저 주변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가 없는 것 뿐 아닐까. 한 사람의 신념이라는건 역시 자신이 바로 서야만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해야 행복할지,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내 삶,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 같다. 나에 대한 공부, 나아가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공부.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역시 독서만큼 세상과 우리, 나에 대해 공부하기 좋은 것은 없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더불어 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정말 나만을 위한 시간. 그런 의미에서 마음에 남을 수 있는 독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 예전에 그 책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그 당시의 나는 뭘 느꼈는지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짧게 서평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글을 쓰기가 어려웠는데, 쓰다보니 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에서는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글이 많이 인용되었는데, 올해안에 리스트에 담은 것들을 꼭 읽어보고 싶다. 많이 보다는 잘 읽는 방법은 천천히 읽는 힘이고, 그 힘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는 말에 정말 공감했다. 어려운 책이어도 꼭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면 천천히 메모하면서 남기는 독서를 하는 것. 그리고 책 속의 또 다른 책들을, 좋아하는 장르를 찾아서 읽어보게 되는 파생 독서에 대해서도 말한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 책도 일단 시작하면 계속 읽고 싶은 책들이 불어나고, 글도 쓰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도 읽어보고 싶고, 공부의 시대의 저자들의 대표 서적들도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어려워서 몇 달째 펼쳐보지도 못한 <대담>도 이제는 천천히 시작해보고 싶다.


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한 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때로는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을 때.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 꼭 하고 싶거나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을 내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고려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선까지 최선을 다해 하며 사는 것, 이것이 제 인생론입니다." -유시민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인다는 게 참 큰 거 같다. 이 질문은 내가 요즘 많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인데, 개인의 역량껏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좋다 말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뭔가 위로가 되었다. 요즘은 너무 치열하게 살고 싶지가 않다.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사는 게 꼭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여유도 가지며 살 수 있다면 최고일 것 같은데, 어릴 때는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인줄 몰랐다. 

"이렇게 태어난 것도 운명인데,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의미있게 살아야죠." -올로프 팔메

이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의미있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볼 차례인 것 같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를 많이 한 사람 혹은 공부만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인 틀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살이를 분석하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거죠. 진짜 앎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 학문과 학위에 대한 이상화 또는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면 진짜 공부에 접근하는 것이 더 수월할 거라 생각합니다." -정혜신

나에 대한 공부만큼 어려운게 사람 공부인 것 같다. 진짜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면 이론과 학문에 대한 이상을 떨쳐내야 한다. 사람은 개개인이 하나의 독립체고 어떤 이론으로도 규정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정혜신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과학자들이 다루는 것은 기계를 통한 인간 기능의 '시뮬레이션'이지 인간 그 자체는 아니거든요. (...) 과학과 기술은 철학을 제거하기는 커녕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무더기로 제시하고 있지요. 과학이나 기술이 인간의 비밀에 접근하면 접근할 수록, 외려 인문학은 결코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거라 믿습니다." -진중권

과학이 발전할 수록 인문학은 과학과 공존할 수 밖에 없음이 더 분명해진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발전할 수록 인문학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요즘을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도 인공지능을 공부하지만 기계는 결국 인간 기능의 시뮬레이션일 수 밖에 없다는 말에 동감한다. 스티븐 핑커의 말처럼 지성과 지능은 다르다. 


하루 하루 채워나가기도 벅차지만 진짜 내가 가는 길에 대한 믿음을 갖기 위한 나에 관한 공부,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공부가 필요한 시대이다. 전문적인 것, 학문에 대한 이상을 떨치고 사람을 진정성있게 바라보는 것, 기술과 함께 공존하는 인문학을 배우는 것, 그리고 행위 자체가 아닌 독서 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얇은 책이었지만 요즘같이 살기 벅찬 시대에 나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여러가지 문제의식을 제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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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 서로를 안아주는 따스한 위로와 공감
유경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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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말했다.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논리적인 말을 몇 마디씩은 해야 한다.


유명한 화가의 미술작품에 얽힌 이야기들. 그림의 선 하나하나에도 얽혀있는 이야기와 감정들. 

시도 그림도 역시 시인, 화가를 이해하는게 감상하는 방법이구나. 시도 중고등학생때 시의 성격, 음절, 구조 같은 피상적인 것들만 공부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시인의 이야기와 평전같은 책들을 보면서 좋은 시들이 왜 좋은 시인지 이해하고 마음으로 감동받았다. 그림도 유명한 박물관에 가서 봐도 감동이 안 오던 것 역시 그림을 두고 분석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내면을 이해해야 감동이 오고 그 아름다움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입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인터넷에서 좋은 작품들을 검색해서 글과 함께 저장해두기도 했다. 예전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뉴욕 MOMA에서도, 그저 유명한 작품이구나 하며 아무생각 없이 감상만 하고 왔던 것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림이라는 세상, 예술이라는 세계가 당신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예술가와 그 그림즐이 당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넬 것이다. 다 괜찮다고, 당신에게 느낌과 감정이 있다는 건, 당신이 뜨겁게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그렇게 살아 숨 쉬는 한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감동할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린 당신, 이제 당신을 예술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도록 방기하자. 당신은 그냥 시선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프롤로그



"모든 사랑의 출발은 자기사랑이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인간 사랑의 근원은 바로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이다." -p.22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술이든 덕성이든 시든, 그대 좋을 대로 취할 일이다." -샤를 보들레르


"반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고 해바라기를 보면 노란 해바라기가 황금빛으로 이글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반 고흐는 환시상태에서 본 불타는 듯한 찬란한 노랑을 캔버스에 재현하기 위해 압생트를 자주 마셨다. 그렇게 탄생한 반 고흐의 작품이 바로 <해바라기> <노란 집> <밤의 카페> <밤의 카페 테라스> 등이다." -p.100



전쟁과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 행복을 그린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름답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가난했던 클로드 모네를 죽을 때까지 도와준 동료 마네를 위해 모네가 모금을 해서 국가에 기증한 작품, 올랭피아.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고독하게 삶을 마감한 렘브란트의 인생을 축약한 작품, 돌아온 탕자.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예술작품이란 예술가가 가진 근친상간, 동성애, 살인충동, 파괴욕망 등을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방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창작 행위는 일종의 자가 치료행위이다. 또한 그런 예술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고통과 고독, 상처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그림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p.180


다른 것보다 뭉크의 그림들이 가장 좋았다. 자신의 감정, 상처, 치부를 그림을 통해 솔직하게 표현한게. 솔직하게 자기 내면의 어두운 면, 상처, 고통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그림에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고 정감가게 느껴졌고, 알수없는 감정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작품의 가치가 자기 자신에게로 옮겨진다고 믿는다. " -위너 뮌스터 버거 <컬렉팅, 그 못 말리는 열정>


왼쪽에 독서하는 소녀는 처음 보자마자 한참을 들여다봤다. 따스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저 그림들을 보고 재수의 연습장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소장해뒀던 그림들이 떠올랐다. 나이를 불문하고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참 아름다운 것 같다.




몰랐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 표지부터 책 속에 있는 그림들이 너무 좋았는데 게다가 엽서까지.

저장해논 그림들이랑 엽서의 그림들을 보고만 있는데도 힐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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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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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려웠다.
채식주의자부터 몽고반점까지 읽으면서 느낀 분위기는. 어두움. 불쾌함. 무엇보다 작가가 전달하려는게 뭘까? 어렵다는 느낌.
마지막 나무불꽃을 보고나서는 그제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뭐라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채식주의자

"올해로 결혼 오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p.12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p.22


영혜는 꾸미지 않고, 말수도 적고 묵묵히 아내의 본분만을 하는 소박한 여자다. 영혜의 남편은 특별한 사랑없이 그런 소박한 영혜가 아내로 제격이라는 생각에 결혼했지만 갑자기 육식을 혐오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영혜를 보며 괴로워한다.

 


"나쁜 놈의 개, 나를 물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p.53

 

어린 시절 개가 물었다는 이유만으로 보신탕을 끓여먹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영혜가 어느 날 요리를 하다 칼에 손이 베이고, 남의 살을 먹는 육식이라는 행위를 극도로 거부하게 된다.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 어두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뭉개어져 있어." -p.37


"입 안에 침이 고여. 정육점 앞을 지날 때 나는 입을 막아. 혀뿌리부터 차올라 입술을 적시는 침 때문에.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흘러내리려는 침 때문에." -p.42


"떨면서 눈을 뜨면 내 손을 확인해.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p.43


그 후로 영혜는 꿈속에서 계속 육식을 하려는 자신의 욕망, 해치고 피를 흘려내서 무언가를 먹는 행위를 혐오스러운 장면을 통해 보면서 온갖 고기를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채식에서 벗어나 나중에는 급기야 먹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고, 영혜 자신의 몸의 살을 모두 걷어내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물만 먹고 사는 나무처럼 지낸다.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 남편, 지인들에게 저항하며 나무 그 자체가 되어버린 영혜. 

몽고반점


"많은 것들이 그의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p.76


영혜의 몽고반점에 어떤 예술적인 열정과 육체적인 욕망을 동시에 느낀 '나'는 어떤 예술적인 영감에 사로잡혀 영혜를 식물로 표현하는 비디오작업을 하게된다. 가정의 파탄을 감수하고라도 불태운 예술혼과 육체적 욕망을 그 비디오작업에 드러냈지만 결국 모든 것이 파탄난 듯한 결말을 보이며 끝난다.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p.107


"마치 정상적인 여자 같았다. 아니, 실제로 정상적인 여자야. 그는 생각했다. 미친 건 내쪽이지." -p.111


"처음으로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p.146


자신의 몸이 식물로 표현된 바디페인팅을 마음에 들어하는 영혜, 그리고 형부와의 사건 이후 영혜는 점점 인간이 아닌 식물, 나무와 같은 상태로 돌아간다.


나무불꽃

"당신은 나에게 과분해. 결혼 전에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그 말은 다소 어려웠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오히려 그가 사랑 따위에 빠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고백은 아니었을까." -p.161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p.197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p.201

 

나무 불꽃에서 영혜의 언니는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잔잔하게 물 흐르듯 살아왔지만, 삶에 자기자신이 없는, 죽어있는 삶을 산다. 영혜와 남편과의 끔찍한 기억 속에서도 아들 지우와 평소처럼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아이를 숲에 버리고 나서 자신이 단 한번도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그저 죽어있는 와중에 연극같은 삶을 살았음을 느낀다. 영혜가 손목을 그었을때 보았던 피, 자신의 몸에서 병이 들어 나온 선혈을 보면서 영혜의 언니는 죽음을 떠올리고, 마치 죽은 사람 같은, 세상 속에 단 한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 같은 자신의 삶을 보게 된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p.169


"잠깐만 참아.

그때 그녀는 기억했다. 그 말을 그녀가 잠결에 무수히 들었다는 것을. 잠결에, 이 순간만 넘기면 얼마간은 괜찮으리란 생각으로 견뎠다는 것을. 혼곤한 잠으로 고통을, 치욕마저 지우곤 했다는 것을. (...) 아무것도 문제될 것 없었다.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언제까지나 살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어떤 다른 길도 없었다." -p.199


"그녀는 무덤처럼 지쳐 있었다." -p.198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p.200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p.204


인내로 뭉쳐진 그녀의 인생에 일련의 사건들. 죽어가는 영혜의 모습과 남편을 다시 보게된 영혜와의 끔찍한 사건. 그럼에도 계속 지금까지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자신. 나무불꽃에서 유독 강조되는 멈추지 않는 시간은 이미 죽어있는 언니의 삶을 더욱 죽어있게 만드는 듯 하다. 언니는 계속 시간을 되돌려서 이 사건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저쯤의 미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병원에 자주 드나들게 된 뒤, 그녀에게는 가끔 정상적인 인간들로 가득 찬 평온한 거리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p.172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p.186

그게 죽음을 의미한다하더라도 그저 햇빛만 받으며 아무런 생각도 말도 하지 않는 나무가 되고자 하는 영혜,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워보이지만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나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다 결국 바닥까지 치닫는 영혜의 언니.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영혜를, 그런 영혜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본인 역시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영혜의 언니를, 그리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욕망, 예술에 대한 열정을 먼저 생각했던 영혜의 형부인 '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하고 낯선 감정들이 이 소설이 주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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