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맞물리면서 나미야 잡화점과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큰 비누방울처럼 뭉쳐진 느낌이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져서 결국 속독해서 한 번 더 봤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기적같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나미야 잡화점은 뭔가 판타지스러운 분위기지만, 그 속에서 생겨난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잡화점의 기적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들이 모여 만든 기적이다.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잡화점이 아니라 잡화점에 들어간 아이들이고. 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편지를 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헤아려주는 따뜻함과 진지함이 만든 기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고스케의 비틀스 이야기.
파산한 부모님을 따라 야반도주를 해야하는 상황이 비겁하다 여긴 고스케는 결국 혼자 도망친다. 그래도 함께하라는 편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p.269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스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야반도주 전날 마지막으로 비틀스의 영화를 본 고스케는 침몰하는 배와 같은 비틀스의 마지막 연주를 보고, 마음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인연이 끊어질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p.281
아버지와 자신을 이어주던 끈은 이미 끊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함께 있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비틀스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스케 자신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떠난 상태의 고스케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음을 느낀다.
마음이 단절된 상태에서 야반도주를 해서 함께한다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고스케는 결국 도망쳐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산다.
하지만, 나중에야 우연히 알게된 부모님의 희생과 배려를 느낀 고스케는 속죄하며 다시 한번 마지막 비틀스의 연주를 떠올린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를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그 장면이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고스케가 새로운 인생을 살면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고스케가 마지막에 후회하면서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답장 편지를 고쳐쓰는 장면에서 너무 감정이입하는 바람에 진한 여운이 남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힘에 버거워 가장 편한 길로 도망친 것이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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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