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 인류 - 산만함의 시대, 우리의 뇌가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
리사 이오띠 지음, 이소영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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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표지 날개의 글에서부터 '이 짧은 글을 다 읽기까지 몇 번은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게 될 것'이라며 경고를 한다. 환영의 인사도 한다. '끝없는 산만함의 시대에 오신 것을...'

이 경고와 환영의 글에 부응이라도 하듯 내가 그랬다. 검색하려고,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뉴스를 보려고 스마트폰을 연신 들여다보느라 산만함의 극치를 달리며 책을 읽었다.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 (p. 66)'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며 산만함의 초절정 시대에 살고 있는 8초 인류,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 8초 인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있을까? 다큐픽션 및 탐사보도 분야에서 활동하는 리사 이오띠의 <8초 인류>는 뇌과학자와 인터넷 전문가들을 만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책이다.


우리는 지금 하이퍼커넥션의 시대를 산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선 이어폰을 장착한 채 통화를 하니 타인 사생활을 무방비로 엿듣게 됨은 물론 내 사생활도 빼앗긴다. 가족, 지인을 만나 그들을 앞에 두고 스마트폰에 연결된 이들과 대화한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상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 스마트폰이 없는 상태는 두려움 그 자체다.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는 혼자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렵고 고민스러울 뿐이다. 몇 분 동안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전기 충격을 느끼는 쪽은 선택한다.

디지털 기기 위로 몸을 숙이는 우리 미래의 모습은 돌연변이 '민디'다. 민디의 목은 짧고 굵으며, 눈은 블루라이트의 양을 차단하려고 불투명 커튼처럼 눈꺼풀이 두껍게 발달했다. 사고의 단계를 컴퓨터에 위임한 우리의 뇌는 기계가 대신한 기능을 점차 제거해 간다. '원리는 단순하다. "쓰지 않으면 잃는다." (p. 130)'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지옥을 경험한다. 연락처, 스케줄, 비밀번호, 메모, 은행 액세스 코드 등 많은 것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정보)를 잃어버려 선택도, 추론도, 의견도 가질 수 없다.

'좋아요'와 '엄지 척'이라는 관심과 쾌락에 중독된 나머지 이런 보상 시스템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원하면 언제든 얻는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텍스트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맥락은 없다. 읽고 '골똘히 생각하기 think hard'의 독서는 죽은 시대다.


급기야 사회적 불평등을 결정적인 도구가 되어버린 디지털 기기 중독에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매리언 울프의 해결 방법이다.

'"저는 매일 아침, 알람을 일찍 맞추고 일어나서는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스마트폰에 문자를 찍는 대신에 가장 먼저 책을 읽습니다. 주로 철학이나 신학 에세이 같은 진지한 내용의 책을 골라 읽습니다. 저녁에는 소설을 읽습니다. 물리적인 글이 적힌 책을 하루의 시작과 끝에 놓는 것입니다. 마치 그 가운데 하루를 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사물의 복잡성과 질서와 깊이에 내 두뇌를 단련시키는 방법입니다. 저는 하루에 10시간을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보며 지내는데, 이것은 업무에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그 작업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은 항상 물리적인 종이 책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그 사이에 나머지가 흐르는 거죠." (p. 275, 276)'


내가 외우는 전화번호 서너 개에 불과하다. 내비게이션이 없이 차를 몰고 나선다는 건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뇌가 사고하는 기회를 빼앗아 갔다.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에 연결된 삶은 집중하는 기회도 빼앗아 갔다.

중독과 산만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볼로냐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저자 리사 이오띠가 대응책으로 권하는 건 종이 책이다. 종이 책을 읽는 노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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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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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 조지 엘리엇'

운행하던 가마쿠라선의 모든 열차가 멈췄다.
'가마쿠라 탈선 사고, 14시 현재 사망자 26명'
'탈선 사고, 세 번째 차량 절벽 아래로 낙하?'
인터넷 포털에 주요 뉴스는 모두 가마쿠라선 상행 열차 탈선 사고였다. 수많은 중상자가 발생한 대형사고였고,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랑하는 가족, 연인을 잃었다.

몇 달 후 니시유이가하마 역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령은 유키오라는 이름의 여고생. 유키호에게 부탁하면 사고 난 열차를 타서 사랑하는 가족, 연인을 만나게 된다.

'단, 그 열차에 승차하려면 다음 네 가지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하나,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다.
둘,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셋,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역을 통과하기 전에 어딘가 다른 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사고를 당해 죽는다.
넷,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만일 열차가 탈선하기 전에 피해자를 하차 시키려고 한다면 원래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p. 8)'


'만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하겠는가. (p. 9)'

약혼자 네모토를 가슴에 묻은 도모코,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 사카모토 유이치,
짝사랑하는 누나 다카코를 잃은 다즈유키,
그리고 이 사고의 피의자로 지목된 기관사의 아내 미사코는 네 가지 규칙을 지키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니시유이가하마 역에서 가마쿠라선 상행 열차에 몸을 싣고, 가족, 연인을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30대 초반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엔 너무 이른 나이인 69세였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으며 처음으로 '어머님을 만난다면?' 상상을 해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10분 정도 지나니...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다. 살아계실 때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서 더욱 할 말이 많았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고생 많으셨다는 말, 그땐 왜 그러셨는지... 궁금한 것도 많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야 하고... 어머님과 있을 때 행복했다는 말도 해야 하고...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p. 9)'


열차에 승차에 사람들은 니시유이가하마역을 통과하기 전에 내리지 않으면 죽는다. 기관사의 아내 미사코는 남편을 홀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니시유이가하마역에서 내리지 않고 열차에 가만히 서 있자... 남편은 기관실 문을 열고 나와 아내에게 내리라고 부탁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살아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유령이 대답했다.“나는 분명히 피해자에게 죽음이 임박했다는 걸 알리면 안 된다고 말했어. 그렇지만, 상대방이 자기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말한 적은 없거든. 다들 알고 있어. 머지않아 자신들이 사고로 죽는다는걸." (p. 317,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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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섬 아저씨 - 아제세이 ajaes-say
정윤섭 지음 / 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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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PD를 시작으로 지금은 시나리오 작가인 정윤섭의 아재 에세이, 그림 에세이다. 유쾌한 유머에 킬킬거리며 웃지만 페이소스가 있어 주춤하게 된다. 무척이나 감정이입되는 상황들이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 산다. 각자 이유가 있어 거짓말을 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을 보호하려 일하느라 바쁘다고 거짓말을 한다며 아제세이를 시작한다.


우리 모두의 삶은 치열하다. 여자로서의 삶도 치열하지만, 중년의 남자로서의 삶도 그렇다. 인간관계에 지친 남자로서의 삶, 아빠로서, 시나리오 작가로서... 남자가 짊어질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삶이 그렇단 말이다. 아재 개그 충만한 작가 특유의 입담이 솔직하고 대담하기에 책을 한 장 넘기 전에 웃으며 잠시 멈추게 한다.


'서로 다른 것보다 사람은 비슷한 걸 더 못 견디는 것 같다. (p. 19, 작은 차이)'
큰 차이는 견뎌내면서 비슷비슷한 이웃의 삶은 참지 못하고 시기하며 곁눈질한다.

'그가 어떤 일로 화를 내느냐가 그를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p. 30, Anger)'
화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뭘 그리 화내냐며 수준을 평가절하한다.


딸을 가진 아빠는 다 똑같다. 나를 닮은 딸이어서 지금의 딸, 미래의 딸 모두 사랑스럽고 더 애틋하다. 아빠는 딸을 위해서라면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놓고 딸이 들어올 때까지 안 먹고 기다림이 가능하다. 소중한 딸이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그들 앞에 놓아두고 싶다.

'손가락 발가락 모두 쪽쪽 빨던 땐 똥도 오줌도 귀여웠던 딸. 그걸 하나씩 못 만지게 될 때마다 한 뼘씩 자라있는 딸. 이제 다 커서 만지면 혼난다. (p. 137, 만지면 혼난다)'
딸한테만큼은 혼나도 참을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도 만만치 않다.

'경험상 제작되는 시나리오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아니야.
그럼?
그냥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야. (p. 158, 완벽한 시나리오)'


<천공의 섬 아저씨>. 중년의 남자도, 아빠도, 시나리오 작가도 아닌 홀로 공중에 떠있는 '천공의 섬'의 아저씨가 아닌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처럼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모험을 하는 '천공의 성'의 아재로 봐주길... '아재'라 칭하는 중년의 남자들은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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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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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의 역사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다. (p.32)'

주기율표에 원소들 중 널리 알려진 원소가 있듯, 주기율표에 포함될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고 배열을 완성하는데 참여한 과학자 중에 명성을 떨친 사람도 그렇지 못한 과학자들도 있다. 이 책은 그들과 주기율표에 제자리를 차지한 원소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다.


'기둥처럼 죽 늘어선 18줄의 세로줄이 있고, 가로로는 7층이 있으며, 거기다가 아래쪽에 가로 방향으로 늘어선 2층의 줄이 있다. 이 성은 '벽돌'로 만들어졌지만, 벽돌들의 위치는 서로 바꿀 수가 없다. 각각의 벽돌은 하나의 원소(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원소의 수는 118개인데, 앞으로 더 발견될 수도 있다), 즉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를 나타낸다. (p. 18, 19)'

인류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꼽는 주기율표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원소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또 원소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원소들이 어떻게 섞이고 쪼개져 반응하는지, 그 반응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기율표의 원소들 속에 세상의 모든 비밀이 있다.

휴대전화에 중요한 부품으로 쓰이는 탄탈럼(73번), 나이오븀(41번) 생산량 중 60%가 콩고에서 생산된다. 이들은 휴대 전화 제조회사에 비싼 값으로 이 원소를 팔아 가난한 주민들에게 큰돈을 주고 전쟁에 필요한 용병으로 끌어들인다. 원소가 전쟁에 관여한다..

주기율표의 독성 원소들 중 가장 가벼운 원소 카드뮴(48번)은 미네랄인 것처럼 행동한다. 쌀이 주식이었던 가미오카 광산 현지 주민들은 미네랄이 결핍된 상태였다. 미네랄이 절실한 세포들은 그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카드뮴을 빨아들여 몸속에 축적했고, 카드뮴은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주민들은 병들게 했다. 원소가 독살자가 된다.

유로퓸(63번)은 빛을 잘 방출하지 않다가 형광이라는 방식으로 빛을 방출한다. 이를 이용해 잉크를 만들 때 형광염료에 유로퓸을 섞어 유로화 지폐의 위조를 막는데 사용한다. 돈에도 원소가 사용된다.

예전에 1초의 정의는 지구가 자전하는 시간의 8만 6400분의 1 이었다. 하지만 바다의 조수가 지구의 자전 속도를 느리게 해 3년마다 보정하는 수고가 뒤따랐다. 이제는 보정할 필요가 없는 방법을 사용한다. 세슘(55번) 전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왕복하는 시간이 공식적인 1초의 정의다. 정밀한 도구로도 원소는 쓰인다.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고 이를 증명해 이름을 지어 넣을 때, 어떤 현상의 원인을 밝혀냈을 때의 희열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진 이들이 과학자들이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인류의 크나큰 발전에 기여했다. 병을 얻기도 했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과학자들의 집착과 값진 희생이 주기율표를 완성했고, 앞으로도 뛰어난 과학자들이 나타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할 것이고 주기율표는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범우주적으로 보편적인 것(즉, 외계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되는데, 주기율표도 그중 하나다. 우리의 모든 정열과 집착이 축적된 보물 창고라는 점에서, 주기율표는 매우 인간적인 것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은 것을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늘 경이로움을 느낀다. (p. 247)'

<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은 다음 세대를 위해 주기율표의 경이로움을 알리는 가치를 지닌 책이다.

* 사라진 스푼의 비밀
갈륨(31번)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섭씨 29.8도에서 녹아 액체로 변한다. 뜨거운 차와 함께 갈륨으로 만든 스푼을 손님 앞에 내놓으면 잠시 후 스푼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트릭도 과학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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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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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럽 여행은 패키지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게 패키지여행의 특징이다. 패키지여행에서 모이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 건 가장 큰 민폐다. 부지런함이 필수다. 패키지여행은 왜 여행하는 건지도 애매하게 만든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여행객이 렌트한 자동차의 이동거리가 으뜸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 박자 반 정도 느린 편이다, 나는 한 박자 서두른 게 분명했는데, 한 박자 반만큼 뒤처지니 다시 그만큼 뒤에 있다. (p. 4)'

권호영의 책 <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과 함께하는 여행은 느린 여행, 조금은 뒤처지는 여행이다.

아줄레주 타일 벽화가 말을 걸어온다. 활주로에서 선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하늘을 한참 본다. 천천히 걷다 보니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고, 카페의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들으며 타인의 삶도 잠시 엿본다. 돌바닥도 눈에 들어오고 커피향도 맡는다. 재래시장에서 그곳의 색깔을 지닌 과일도 산다. 마주하는 색깔도 여러 갈래로 눈에 들어온다.

'우아한 빈티지 색감을 자랑하는 히베이라의 집들은 마치 색연필 세트를 선물 받았을 때의 파스텔 톤 기쁨을 어렴풋이 느끼게도 하였다. (p. 62)'

완행열차에 몸을 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살피며 근사한 스토리를 꾸민다. 그 동네 책방도 들러 책을 고르는 틈도 가진다. 지나치다 어느 집 앞에 멈춰 담 너머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카페 앞 경사진 돌바닥에 의자를 기울인 채 불편하게 앉는다. 3초 동안 지나가는 푸니쿨라를 지켜보고, 맥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푸니쿨라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느려도 좋은 여행이기에...


바람에 바랜듯한 파스텔 톤 색상의 아줄레주 타일 벽화와 같은 상큼하고 톡톡 튀는 느낌의 글은 여행의 맛을 더한다. '요즘 나는 어휘력을 잃고 있다. (p. 104)'는 엄살을 떨긴 하지만...

'시간은 세상 모든 고양이의 발걸음에 비례하여 둥글게 둥글게 회전하고 있었다. (...) 눈썹처럼 짧은 시간이라도 가만가만한 내 심정이 불안에 데지 않도록. 물과 햇빛 같은. (p. 5)'

'오후가 되니 커피향이 돌바닥에 스며 들었다. 우산을 쓰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비가 묻었다. (p. 52)'

'창문으로 비가 그쳤음을 알려주는 빛이 들어왔다. 책 사이에서 출렁이는 빛의 추임새는 분명 아름다운 도서관 분위기를 더욱 살리고 있다. (p. 81)'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아침이었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이불에서 하얀 파도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p. 177)'


이금이의 <페르마타, 이탈리아>에서 만난 알록달록 색깔의 건물이 시선을 끌었던 부르노 섬. 같은 사연의 마을을 포르투갈에서 만났다. 아름다운 색깔의 줄무늬 집들이 촘촘한 코스타노바. 바다로 떠난 어부들이 집에 돌아올 때, 잘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같은 두 곳.


30분만 더 누워있다가 다시 짐 챙겨 떠나는 여행. 에그타르트, 커피, 와인 그리고 파두를 들을 수 있는 곳. 아직 트램이 다니고 곳곳에 아줄레주 벽화가 있는 두 발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에린과의 포르투갈 여행. 패키지여행과는 다른, 반 박자 느려도 좋은 여행이 주는 마음의 여유다.

'햇살은 커다란 창이 난 곳으로 하염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 커튼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기지개를 쭉 켜고 침대 옆에 놓인 디지털시계를 보니 오전 7시다. 블루투스 오디오를 켰다. 호텔 로비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방에서도 들을 수 있다. 포르투갈에서 만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잔잔하고도 리드미컬한 노래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30분을 더 가만히 누워있었다. (p.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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