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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25년 6월
평점 :
'또한 나는 시, 소설, 그림, 조각, 음악, 그 무엇이건 간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이 고안해낸 그 어떤 장벽도 초월한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썼다. (p. 6, 지은이의 말)'
퇴직 무렵, 그동안 읽지 못한채 책꽂이에 꽂아놓은 책이나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블로그 대문에도 써놓았듯이 내게 앞으로 남은 생을 책으로 채워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책을 읽는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 친구가 되주었다. 두려움이라는 장벽이 퇴직 후 내 삶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들이 있어 그 장벽을 넘어 살아가는 중이다. 책이 맺어준 인연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해협 채널제도 건지섬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작가 줄리엣 에슈턴 앞으로 배달된다. 그 편지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멤버 도시 애덤스가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 앞표지 안쪽에 적힌 줄리엣의 주소를 보고 보낸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하려 합니다. (...) 그의 유쾌하고 기지 넘치는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이 인생에서 엄청난 슬픔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p. 18, 19)'
이를 계기로 줄리엣은 건지섬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호기심을 갖게된다. 북클럽 회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 그들이 어떻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견뎌냈는지 알게되고 그 이야기를 <타임스> 컬럼에 소개하기로 결심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모저리 부인의 초대로 돼지고기 파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다 통행금지에 걸려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엘리자베스 메케너의 임기응변으로 탄생한 북클럽이다. 두 명의 회원들 제외하고 책을 가까이 했던 사람은 북클럽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통행금지령을 어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건지섬 문학회 모임이 있었어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독일식 정원>에 대해 토론했는데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죠, 혹시 읽어보셨나요? (p. 51)'
서간문 형식의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편지에는 건지섬 사람들이 독일군 점령하에 받은 상처가 담겨있다. 불안, 갈등, 질투, 굶주림 등 참혹한 현실, 그 가운데 사랑이 꽃피기도 하지만 이별의 아픔도 있다.
엘리자베스로부터 시작된 북클럽은 고아가 된 그녀의 아이 킷을 돌봐주는 등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보살핌과 우정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유머와 따뜻함이 있어 더한 감동을 준다.
책이 맺어준 인연들과 다양한 채널로 책모임을 갖고 있다. 우선 그들과 평어를 사용하면서 나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차려입고 외출도 한다 (가끔 아내와 함께). 그들 덕분에 웃기도 한다. 나이든 사람과 말상대를 해주니 수다도 떤다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잘 안된다).
이 책이 탄생한 배경에도 '문학회'가 있다. 메리 앤이 1980년 건지섬을 다녀온 다음 20년이 지난 후 글쓰기 모임 회원들의 글을 쓰라는 재촉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씨앗이 됐다. 책과 책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이 절망적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진정한 유대의 힘을 보여줬듯이.
'건지섬 주민들이 독서를 은신처 삼아 독일군 점령기를 견뎌냈듯이 (p. 433, 애니 배로스가 메리 앤 섀퍼를 기억하며)' 나도 책을 사랑하는 책 친구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친구들, 책을 같이 읽는 책 친구들의 유대의 힘에 기대어 '60 이후의 공간을' 책읽는 기쁨으로 견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