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뇌 - 뉴런부터 국가까지, 대화는 어떻게 인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가
셰인 오마라 지음,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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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셰인 오마라는 우리를 '대화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인간을 왜 그렇게 정의해야 하는지 대화하는 행동과 관련해 인간의 연결과 소통에 관한 질문을 담았다.

인간은 왜 대화할까. 대화를 나눌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잡담은 어떤 힘을 발휘할까.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대화는 각자의 기억과 공통의 기억에 어떻게 작용할까. 마지막으로 국가의 형성에 우리의 기억과 대화는 어떤 관여를 했을까...


기억 장애를 겪게 된 몰레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떤 기쁨을 느꼈든, 어떤 슬픔을 겪었든 간에 그날 하루면 끝입니다. 지금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뭘 잘못 말했나? 보시다시피 지금 이 순간 나는 모든 걸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방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그게 내 걱정입니다. 매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이 기억 안 나는 거죠" (p. 13)'

우선 몰레이슨은 타인의 보살핌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일상생활 즉,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기억을 발판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우리가 익힌 기호와 상징, 규범, 규칙, 절차 등 공통의 이해와 경험과 같은 기억 체계에 의존해야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 가며 복잡한 사회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대화는 우리 자신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과 상대방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 (p. 24)'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 배우기도 한다. 사회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고,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인간의 두 가지 중요한 기본 동기, 즉 다른 사람과 연결되려는 욕구와 세상을 알려는 욕구가 여기서 교차한다. 우리는 '현실'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즉 상대방의 욕구와 태도와 믿음을 읽어내고 우리가 하려는 말을 거기에 맞춘다. (p. 271)'

더 나아가 기억과 대화로 세상에 대한 감정, 신념, 생각을 공유하며 공통의 현실을 창조한다.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나라를 세웁시다"라는 대화를 나누면서 공통의 제도와 기구를 만들어 국가라는 개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미래를 상상하는 개인은 집단속 대화를 통해 더 많을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국가의 미래도 상상한다.


공통으로 기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통 현실이 내가 속한 국가의 정체성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요즘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동안 대화에 끼지도 못하던 이슈들이 정권이 허용하는 틈을 타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몇 해 전만 해도 광복절에 일장기를 내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강제노동,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국적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린다.

이런 공통 현실이 계속되면 우리 집단의 기억마저 왜곡될까 걱정스럽다. 우리 기억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받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작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희망적인 것은 대화를 통해서 공통 현실, 공기를 되돌려놓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공기가 탁해서 답답하다고 입을 다물면 안 된다. 입을 열어 떠들어대며 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우리 인류만이 '대화하는 종'이고, 대화를 통해서만 나를 타인과 연결하고 우리 사회의 공통 현실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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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함께 걷는 청와대, 서촌, 북촌 산책 - 도시 산책자를 위한 역사 인문 공간 이야기
김영욱 지음 / 포르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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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살 때였다. 아이들 외가 근처에 멋진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이 있었다. 뛰어놀기도 좋고 해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자주 가곤 했다. 정말 멋진 곳이다. 학생들이 이젤을 펴놓고 그림 그리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어느 날 화보집을 보는데 익숙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방화수류정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기에 자주 가던 그곳.

북문(장안문)과 동문(창룡문) 사이에 있어 '동북각루東北角樓'로도 불린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멋들어진 뜻을 담고 있다.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아 보물로도 지정되었다.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역사적 공간, 어쩌면 조선의 선비들이 놀던(遊) 그곳에서 그런 의미를 모른 채 우리 아이들도 놀았(遊)던 셈이다.


'이 책은 청와대와 그 주변 동네를 산책할 때 훨씬 더 즐겁고 유의미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지금이라도 찾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역사와 공간에 스민 건축적 의미를 느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떠한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면 좋을지 깊이 사유해 보면 좋겠다. (p. 7)'

한 달 전 볼 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앞을 지나 서촌, 통인시장 쪽으로 지나간 적이 있다. 3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출근하던 곳이 강남이어서 좀처럼 강북에 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익히 들어 알고는 있는 곳이지만 청와대 주변의 서촌과 북촌은 나에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이 놀던 방화수류정만큼이나 그곳이 갖고 있는 이야기는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 동네가 간직한 사연을 모르다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북악산의 정남향에 자리한 청와대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이다. 1991년 신축 당시 전통 목조 구조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궁궐 양식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팔작지붕 위에는 일반 도자기 한 장씩 유약을 발라 구워 낸 청기와가 있다. 이는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으며 햇빛을 받으면 옥색을 띠기도 한다. (p. 41)'

청와대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신축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청와대 건물 공간 구조다. 대통령과 참모진들과 소통이 어려운 배치다. 또한 관저와 집무실이 하나의 건물에 있는 미국의 백악관이나 영국 다우닝가 10번지와 다르게 청와대는 이 두 곳이 멀다. 24시간 업무를 해야 할 한 나라 정상의 국가적인 사명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북악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와대와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이 북촌, 오른쪽이 서촌이다. 당시 북촌과 서촌은 궁궐에 인접한 주거지였다. 북촌은 경복궁에 출입하기 편한 곳에 위치했으며 조선 시대에 관직을 하는 양반들이 모여 살던 고급 주택가였다. 그에 비해 서촌은 문인, 화가, 천문학자 등 전문직 일을 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살았다. ( p. 65)'

북촌이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마을이라면 서촌은 좁은 골목에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몰려있다. 그래서 서촌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욱 건축학과 교수는 서촌과 북촌을 거닐며 들릴만한 건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서촌의 상촌재, 오래된 전통 골목형 재래시장인 통인시장,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었던 대오서점(지금은 북 카페로 운영 중), 지금은 '보안1942'라는 문화공간이지만 보안여관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이 잉태된 공간이다. 그 밖에도 갤러리 서촌재, 윤동주 하숙집 터,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박노수 가옥, 이상의 집, 필운대, 윤동주 문학관 등을 소개한다.

북촌을 걷다보면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 숲을 바라보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한옥의 정취와 서울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북촌로 11가길, 정독도서관, 한옥을 리모델링한 오설록 티하우스, 여덟 명의 판서가 살았다던 팔판동 골목, 가회동 성당 등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오르는 다양한 코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방화수류정을 알고 다시 그곳에 가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이 쌓아놓은 흔적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서촌, 북촌은 왕과 대통령이 있던 동네로 600여 년의 시간이 깃든,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숱하디숱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이 책을 옆에 끼고 그곳을 걷는다면 곳곳에서 건물이 간직한 사연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건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 깊은 사연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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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진 Conceptzine 2024.11 - Vol.117
미션캠프(월간지) 편집부 지음 / 미션캠프(잡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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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정리하고 싶은가. 책장 정리를 제일 먼저 하고 싶다. 책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심란하다. 마음먹고 책을 끄집어내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퍼질러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서둘러 책장에 책을 다시 꽂아놓고 마무리하곤 한다. 책장을 노려보며 또 결심한다. 카테고리 별로 분류한 다음 작가별로 책 키 맞춰서 정리하기로...

'1. 책을 꽂을 때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를 두어 빽빽하지 않게 한다.
2. 책장에 공간이 남으면, 작은 소품을 놓거나 감각적인 표지의 책을 정면으로 세워놓는다.
3. 자주 읽는 책은 손쉽게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둔다. (p. 255, 책 정리 정돈 활용 Tip)'


'우리는 매달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컨셉진 CONCEPTZINE>은 매달 새로운 주제로 함께 읽고 쓰고 행동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도록 가이드 하는 자기발견 매거진이다. 117호 11월의 주제는 '정리'이다.
'당신은 정리를 잘하고 있나요?'


언뜻 비슷해 보이는 정리와 청소는 무엇이 다를까?
'정리는 물건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배치하는 일이고 청소는 더러운 것을 없애 깨끗하게 만드는 일인 셈. (p. 219)'
차이가 있지만 일단 마무리하고 나면 뿌듯하고 몸과 마음이 안정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정리 정돈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사람은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다. 미국에서 '곤도 Kondo'라는 말이 '정리한다'라는 뜻으로 쓰일 만큼 전 세계에 곤도 마리에 열풍이 불었다. 최근 정리의 여왕 곤도가 정리 정돈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 육아가 포기의 원인이다. 첫째, 둘째, 셋째를 낳으면서 매일 정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곤도도 포기했는데 내가 정리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아니? 곤도 마리에가 포기한 건 '완벽한'정리이지 정리를 포기한 건 아니다.

완벽한 정리를 목표로 일을 벌이니 정리에 실패하는 법이다. 조금씩 꾸준히 정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용품 브랜드 <스피드랙>의 민효기 대표는 타이머를 맞춰놓고 하루에 10분씩만 정리해 보라고 조언한다. 하루 날 잡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물건 기준으로 정리하라는 꿀팁도 건네준다.

'많은 분들이 정리할 때, 거실, 주방, 화장실, 서재처럼 공간을 기준으로 삼아요 하지만 공간이 아닌 물건을 기준으로 정리하는 게 오히려 더 수월해요 컵 정리가 목표라면 집에 있는 컵을 다 한곳으로 모으는 것부터가 정리의 시작이에요. 해당 물건을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하게 되면, 그때부터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거든요. (p. 96)'


명화까지 정리한 화가가 있다. 스위스 예술가이자 코미디언 우르주스 베얼리가 그 주인공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고흐의 방>에 흐트러진 의자, 테이블, 액자, 옷가지 등을 말끔히 쓸어 침대가 있는 곳으로 모아놓았다.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트(겨울비)> 속 인물들을 키 크기별로 오와 열을 맞춰 정리해 놓았는가 하면,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색색의 점으로 분리해 봉지 하나에 담았다. 그림을 보면, 이렇게까지 정리할 일인가 싶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민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통스러워만 하는 것, 생각은 해결법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생각정리스킬이 이런 고민을 생각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거고요. (p. 113, <생각정리클래스> 복주환 대표)'

머리가 아픈 것은 복잡한 생각에 막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등 정리해야 할 생각이 길을 막고 있다. 생각 정리는 내 삶의 방향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또 정리할 것은 관계다. 퇴직 후 많은 관계들이 정리됐고 새로운 관계들이 그 자리를 메꿨다. 내 삶이 좀 더 명확해졌다 할까? 관계가 바뀐 후 내가 걸어갈 길의 색깔도 천천히 달라지는 중이다. 그렇게 <컨셉진 CONCEPTZINE>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나는 매달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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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5 - 2025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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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뱀의 해' 을사乙巳년의 키워드를 <트렌드 코리아 2025>는 'SNAKE SENSE'로 정했다.
'뱀처럼 날카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아채자. (p. 14)'


'DRAGON EYES' 2024년 첫 키워드는 '분초사회'였다. 시간의 가성비, 즉 '시성비'를 추구하는 초효율주의가 트렌드로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었다. 실제로 요약 콘텐츠의 증가 등 일상의 효율화가 이루어졌으며,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기업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서 AI를 자유자재로 상용할 수 있는 '호모 프롬프트'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불황형 소비가 두드러진 가운데, 기업은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상품이나 브랜드를 유연하게 확장하는 '스핀오프 프로젝트' 그리고 서비스의 가격을 조건, 시간, 대상에 따라 바꾸는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불황기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크게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사라진 지루한 시간을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다양한 활동에서 도파민을 그러모으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도파밍' 추구했으며,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육각형인간'을 욕망하며 이를 실현하는 데 시간을 쓰기도 했다.

고금리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얼어붙다 보니 실패를 피하고 확실한 선택을 위해 시그니처가 힘을 발휘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제안을 따르는 '디토소비'를 했고, 각 지역은 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만이 가진 문화 시그니처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리쿼드폴리탄'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했다.

사회적으로는 정상 가족이란 틀을 벗어나 육아와 가사에 적극 가담하며 자녀와 정서적 교감을 중요시하는 '요즘남편 없던아빠'가 등장했으며, 돌봄이 사회적 논의가 되면서 돌봄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적 효과를 불러오는 '돌봄경제'가 발달했다.


'SNAKE SENSE' 2025년 첫 키워드는 '옴니보어 Savoring a Bit of Everything: Omnivores'다. 옴니보어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소비 스타일을 가진 소비자를 뜻한다. 길어진 수명과 세대별 인구구조의 변화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정관념과 전형성이 희미해진 결과로 빚어진 현상이다.

힘든 사회, 살아낸 것만으로도 대견한다.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 '#아보하 Nothing Out of the Ordinary: Very Ordinary Da'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이주 보통의 하루'를 줄여 '#아보하'라고 이름 붙이고자 한다. (p. 161)'

남과 똑같은 것이 싫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소비의 한 방법으로 개성을 더하는 커스터마이징 시도가 심상치 않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추가적이거나 부수적 요소인 토핑이 더욱 주목받아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시장, '토핑경제 All About the Toppings'가 기업을 기다리고 있다.

두려움을 갖고 AI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기업과 상품이 선택받을 확률이 높다. 얼굴과 표정을 표현하고, 읽고, 만들어내는 '페이스테크 Keeping It Human: Face Tech'는 기술이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혁신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우리를 해치려는 것들이 많아진 세상에서, 작고 귀엽고 순수한 무해함을 특성으로 가진 사물의 힘, '무해력 Embracing Harmlessness'은 우리 상처를 감싸줄 수 있으므로 생존에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5퍼센트에 다다름에 따라 인구를 비롯해 문화, 시장 등 여러 영역에서 한국적인 것을 정확하게 분류하기 쉽지 않다. 이분법을 적용할 수 없는 한국적 정체성에 '그라데이션K Shifting Gradation of Korean Culture' 개념이 필요해졌다.

빠르게 디지털화되지만 만지고 느끼려는 우리의 아날로그 본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오히려 체험하려는 욕구가 커지기에 특성 대상에 경험 가능한 물성을 부여함으로써 매력을 높이는 '물성매력
Experienc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지구온난화 시대는 끝났고, 지구가 끓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기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후감수성 Need for Climate Sensitivity'은 기후 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소비자, 기업, 사회 모두가 갖춰야만 한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았듯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 전략 Strategy of Coevolution' 선택은 변화무쌍한 생태계에서 필연적이다.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면서, 실천 가능한 자신만의 밸류업을 시작하자. (p. 353)'
일반적인 성공 공식대로 획일적인 스펙을 쌓는 노력 대신, 나의 장점을 찾아 지금 도달 가능한 한 가지 목표를 세워서 실천함으로써 나다움을 잃지 않는 자기 계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원포인트업 Everyone Has Their Own Strengths: One-Point-Up'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각자 가장 나다운 성공을 찾는 것 말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아보하'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지쳐서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니. 그 행복만큼 불행해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일까?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별일 없이 산다>라는 장기하 노래의 노랫말이다. 장기하가 2009년에 발표한 노래이니 15년 전부터 별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이렇다 할 고민 없이 사는 게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나 보다. 그때부터 우리 사회의 행복 담론은 차츰 바뀌어 2025년 트렌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무색무취 일상을 감사하게 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으로 수상으로 한강 작품이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하기 전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등 필사하며 읽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었다. 혼자 방에서 묵묵히 하는 필사,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하루 세 줄 감사일기도 마찬가지다.

퇴직한 다음 나의 일상이 그렇다. 하루하루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며 하루를 별일 없이 지내고 잠자리에 들 때 오늘 내게 주어졌던 하루를 감사한다. 다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면 그래서 불행하지 않았다면 감사할만하지 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된 행복을 추구할 권리마저 소극적으로는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를 추가할 권리를 뜻한다. 물론 적극적으로야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추구할 권리이지만.

행복 회로를 돌려보자. 내가 별일 없이 지낸 하루에 감사하는 건, 그래서 행복했는지를 따지지 않는 건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은 '병'이나 '건강'을 이야기하지 않고, 부자는 '돈'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듯이, 불만이 없는 사람들은 굳이 '행복'을 묻지 않는다. 간절하게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p.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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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 세상은 이들을 따른다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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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잠시 돌아보면, 내가 맡은 일에 열심이었다. 보통 출근시간 1시간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결근? 언감생심이다. 열이 펄펄 끓는 경우가 아니라면 출근했다. 쉬는 날도 출근했고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상사에게 대든 기억? 거의 없다. 튀어나온 못이 정 맞는 법이다. 항상 고개를 수그렸다. 온갖 모욕적인 언사에도 반응하지 않고 참았다. 그냥 회사의 일부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 대한 대가로 보상을 받으며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뼈를 묻은 결과 첫 직장이 마지막 직장이 돼버렸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의 건물을 보면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린치핀>을 읽고 '내가 톱니바퀴였구나'라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회사라는 시스템의 일부가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말이다.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순응하는 톱니바퀴가 된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선택.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을 고정하는 작은 핀을 '린치핀'이라고 한다. 세스 고딘은 <린치핀>에서 관리자와 노동자라는 집단 이외에 새로운 집단, '린치핀'이 더 생각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곧 들이닥칠 AI 시대에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즉 린치핀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또 하나, 산업혁명과 함께 도입된 공공교육과 무상교육 시스템에서 우리는 순응하는 공장 노동자로 훈련받았다. 세스 고딘은 그런 시스템에 항복하지 말고 '세상에 소란을 피우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제 새로운 거래를 해야 한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때 보다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거래 말이다. 바로 재능과 창의성과 예술을 자신의 지렛대로 삼는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p. 20)'

물론 우리는 톱니바퀴가 되도록 훈련받았다. 세스 고딘은 린치핀이라는 톱니바퀴로 살지 않아도 되는 길을 제시한다. 다행인 건 린치핀은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가 마음만 먹으면 그 길을 선택해 갈 수 있다. 나의 선택만이 남아있다.

'계속 평범한 부품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비범함 인재, 린치핀으로 살 것인가.'

린치핀은 다른 사람의 지지나 허락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종류의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훈련한다. 게임의 틀, 상호작용 방식 그리고 질문까지도 바꾼다.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린치핀은 선물을 자발적으로 주고 싶어 하는 열정과 새로운 방식을 활용하는 예술을 결합해 자신을 차별화한다. 지침을 기다리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정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진공상태에서 일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일한다. 그리고 린치핀은 겸손하다.

그 결과 '이제 사회는 우뚝 선 사람, 선물을 주는 사람, 관계를 맺는 사람, 두드러진 사람 (p. 449)', 대체불가 존재인 린치핀을 찾고 보상한다.


세계적 마케팅 전략가 세스 고딘의 대표작인 <린치핀>은 15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세월이 흘러 챗 GPT의 등장으로 AI와 공존해야만 하는 시대가 눈앞에 있다. 산업혁명으로 노동 기반의 일자리가 없어진데 이어 정신노동 기반의 일자리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일자리를 놓고 AI와 경쟁하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 세스 고딘이 15년 전에 마련한 '린치핀'이 되는 길은 지금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

익명이 되라는, 비인간화되라는 강요에 의해 이제까지 우리는 본성을 거스르며 살아왔다. 자~ 계속 순응하면서 평균 이상이 될 수 없는 값싼 인생, 톱니바퀴로 살 것인가. 내 앞을 가로막는 저항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로 살 것인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AI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린치핀의 길을 걷는 것만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화롭게 먹고살 수 있으며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는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p.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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