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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평점 :

어차피, 처음부터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어.
오늘날의 시대는 특별함을 추구하는 시대다. 남들보다 튀어야 하고 달라야 한다. 톡톡 튀거나 자신만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 반면 평범함은 따분함을 불러 일으킨다. 남과 다르고 싶어 안달인 이 세상, 하지만 자신의 초능력이 오히려 덫이 된다면? 축복이 아니고 저주가 된다면?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는 초능력이 저주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 진은 강원도 정선의 '캐딜락 전당사'에서 일하는 20대 청년이다.
아버지와 어릴 적 집을 나간 어머니, 그 빈 자리를 대신해 8년 전 아버지와 함께 사는 정희 아줌마와 함께 산다.
진에게는 질병이 있다. '기면증' 학창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수면상태로 쓰러지는 기면증으로 그는 학업도 중단하고 군대까지 면제받았다. 쓰러진 진이 항상 깨어나는 곳은 그가 일하는 전당사의 주인 성사장의 캐딜락 뒷좌석이다.
소설은 곧 진이 가지고 있는 '기면증'의 정체를 오래 숨기지 않는다. 손이 뜨거워지며 포트를 만들어 공간을 이동하는 소수의 초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들. 특히 진은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이동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자의 소유자였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부모는 진의 능력을 숨겨왔지만 그의 능력은 갈수록 커져간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노리며 진의 뒤를 쫓는 이들이 있다. 초능력자의 심장을 이식하여 자신이 초능력자가 되려고 하는 욕망의 화신들이 진을 위협한다.
자신의 능력이 축복이 아닌 범죄의 도구가 된다. 누군가는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으로 카지노의 칩을 훔치고 소매치기를 하고 사람을 죽인다.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불행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인생, 사람들의 타겟이 되어야 하는 인생. 그들의 재능은 타인의 욕망의 도구가 되어 서로를 공격한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초능력을 발휘할 때가 가장 불행했을 때임을 주목한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망에 빠졌을 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려울 때 그들의 능력이 발휘된다. 불행할 때 발휘되는 능력이라는 정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능력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됨을 암시해준다.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는 이 욕망 속에 이용되어지는 저주받을 초능력에 대해 속도감있게 밀어붙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반전이 아닌 엄청난 감동을 선사해준다. 소설 초반 의심쩍게 묘사된 성사장의 정체와 초능력 후에 진이 꺠어나는 장소였던 캐딜락이 어떤 의미인지 막판에 가서야 밝혀진다. 이 글에서 스포이기에 쓸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자리가 이토록 클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코끝 찡한 결말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모처럼 한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만났다.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는 강원도 카지노라는 배경과 욕망의 도구가 되는 초능력이 만나 더욱 맛깔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찾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