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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이름은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가끔씩 아이들에게 장난삼아 말을 건넨다. 이제 다른 이름을 쓰자고. "누리야, 너 그냥 누리라고 하지 말고 엄마 이름 하면 어때?" 그 때마다 아이들은 기겁을 한다. 자기 이름이 좋다고. 절대 안 바꿀거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이름을 바꾸면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며 이름이 가진 무게를 생각하곤 한다. 조진주 작가의 의 소설집 《다시 나의 이름은》은 살아가면서 이름의 무게와 이름대로 살기 어려운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표제작 <나의 이름은>을 포함해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은 평탄치 않다. <우리 모두를 위한 일>에서의 '나'는 기간제 교사이고 <란딩구바안>에서 나오는 나는 노년의 나이에 지하철택배를 하는 할머니다. 특히 <나의 이름은>은 각 역할에 맞춰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주화영이다가 레사였다가 '연주황'이 되는 인물이다.
9편의 수록작 중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건 <란딩구바안>이었다. 번역이라는 꿈을 꾸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가장 큰 경제적인 벽을 넘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급하게 살아가다 시간이 흘러 지하철택배를 하는 주인공 정옥이 있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온 것은 침침한 눈과 지하철택배로 살아가는 현실, 그 속에서 생기는 삶의 허무함과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젊은 시절 내려놓아야 했던 일본어 번역..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 무슨 소용이냐 하겠지만 일본어 번역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정옥의 절박함이었다.

나 역시 육아와 직장만을 오가면서 내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한없이 두려워진다. 그럴 때마다 뭔가를 하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잠시 나를 가만두지 못한다. 그 두려움에 매몰될까봐 주변을 헤맨다. 그 모습이 이 <란딩구바안>의 정옥이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일본어 번역을 놓지 못하는 모습과 겹쳐져 더욱 안타까웠다.
<꾸미로부터>는 키우던 고슴도치 꾸미가 죽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취방에 함께 살고 있는 해주와 선화. 이들에게는 상처가 있다. 스토킹,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서 상처가 있고 극복하지 못했다. 이 고슴도치의 죽음도 해주는 자신을 괴롭힌 그림자의 소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는 해주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해주의 상태를 가지고 농담을 하며 떄로는 질책도 한다.
소리를 질렀어야지,
왜 그렇게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었어.
주변에서 해주를 향한 질타를 보며 동생과 함께 자취했던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대학교 닭장촌이라고 불리우던 자취방에서 공동 샤워실에서 씻고 온 후 방문을 열었을 때 쳐들어오려고 신발을 벗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나의 등장에 놀란 그 도둑은 놀라 도망갔고 나는 그를 쫓아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두려워 벌벌 떠는 나와 동생을 보며 주인 아저씨는 말했다. "두 명이서 한 명을 무찔렀어야지 그걸 가만히 있었어!"
그 때 주인 아저씨에게는 중학생 두 딸이 있었지만 그 아저씨는 딸 가진 부모의 입장이 아닌 소문이 퍼져 자취방에 사람이 안 들어올까봐 걱정하는 치졸한 모습이었다. 내가 들었던 그 아저씨의 말과 소설 속 해주를 향한 동료들의 말이 오버랩되어 더욱 긴 한숨을 자아낸다.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해주의 말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수에 그친 일들이 얼마나 긴 그림자를 남겨지는지 보여준다.

그 외에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수없이 바꾸고 살아가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나의 이름은>과 오랜 연인과 헤어진 나와 죽은 언니로 인한 상처, 그리고 이모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모래의 빛>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 일도 없는 척 살아가지만 그 상처는 결국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을 드러내며 힘들게 한다. 그리고 떄로는 그 상처에 굴복하기도 하며 극복하기도 한다.
《다시 나의 이름은》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했다. 왜 표제작인 <나의 이름은>이라 하지 않고 《다시 나의 이름은》이라고 했을까. 나는 아마 이 소설집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진짜 자신으로 살기 원하는 작가의 응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란딩구바안>에서의 정옥이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에서 현지가 결코 압력에 포기하지 않기를 바래는 작가의 바램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들이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잘 이겨내고 우리 답게 살자는 그런 작가의 바램을 들은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