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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 - 정치꾼 총리와 바보 아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작가 이케이도 준의 주 무대는 직장이다.
<한자와 나오키>에서는 은행, <변두리 로켓>에서는 쓰쿠다 제작소, <일곱 개의 회의>에서는 도쿄겐덴 등 조직을 둘러싼 내부 고발과 음모 그 안에서 정의를 추진하는 오피스활극이 주특기이다.
그런 이케이도 준이 무대를 바꿨다. 이번에는 회사가 아닌 정치다. 어느 곳보다도 이기적이면서 속물 인간들이 많은 정치라는 무대에서 일본 총리대신과 아들의 뇌파 이탈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민왕』은 기존의 이케이도 준의 소설과 다르게 작가의 유머와 풍자가 가득한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 여당인 민정당에서 두 총리가 연달아 사임을 한다. 더 이상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울면서 사임하고 싶다며 하소연을 한다. 현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작가는 유머러스하게 시작한다.
이케이도 준이 보여주는 일본 정치판의 세계는 다르지 않다. 허영덩어리,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며 잘난 맛에 사는 속물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프로 정치가 인 무토 다이잔 총리와 관방 장관인 가리야 장관의 스캔들, 서로 트집 잡기에 바쁜 여당과 야당간의 알맹이 없는 싸움. 스캔들에만 목을 매는 기러기 언론들의 행태는 한국 정치판과 언론계의 축소판이다. 아마 이 모습들을 이케이도 준이 직장인 소설을 쓰듯 써내려갔다면 흔한 이야기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케이도 준은 총리와 아들의 뇌가 바뀐다는 점을 이용하여 20대 젊은이들에게 정치인들의 속물 근성을 폭로시켜 그들을 더욱 부끄럽게 한다.
보여주기 정치이며 중의원 해산을 위한 선거 내각으로 허수아비 내각 총리였던 다이잔. 잘 놀고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던 철 없는 아들 쇼. 이 둘은 서로의 바뀐 몸으로 즐기기도 하며 서로를 이해해나간다. 아들의 몸으로 면접을 보면서 정치계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현실이 보이고 속물 아버지로만 보였지만 실상은 끝없는 전투로 지친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 된다. 아들의 모습을 했기에 더 현실을 잘 볼 수 있었고 정치의 무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알 수 있었다. 누가 이 부자의 모습을 바뀌게 했는지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부모들은 다른 누구보다 자녀들에게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원한다. 자녀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서 작가는 정치가들의 세계를 작가 특유의 필력으로 보여주기보다 자녀들의 모습을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나개 해 주었다. 자녀들에게 치부를 들킴으로 그들 스스로가 창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창피함마저 유머로 승화시킨다는 점이 저자의 또 하나의 장기이다. 이전 작품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작가의 유머가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한국의 정치판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와 다이잔 총리가 아들 쇼 대신 면접을 보며 깨달아가는 장면이 나에게는 오히려 인상깊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바뀌게 된 원인이 좀 더 촘촘하게 설명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이케이도 준은 역시 이케이도 준이다. 직장 드라마도 정치 드라마도 그는 무난하게 소화해낸다.
이케이도 준. 과연 그의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