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 - 위기의 시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향한 새로운 시선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남효창 감수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어린 시절, 나는 외갓집 뒤에 있는 뒷동산을 좋아했다. 둥근 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뒷동산은 한 쪽은 나무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고 다른 맞은 편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무덤들이 있곤 했다. 장난감도 없던 시절, 우리들은 틈만 나면 뒷동산에 가서 놀았고 어른들은 우리가 없으면 으레 뒷동산에 있겠거니 생각하셨다. 나무와 풀 밖에 없는 그 뒷동산은 우리에게 놀이터였고 또 하나의 소중한 장소였다.
나의 어린 시절이 나무와 풀밭에서 뛰놀던 추억이 지금은 아이들에게 키즈카페와 수영장 같은 문화시설로 대체되곤 한다. 우리의 일상이였던 자연이 소모성 문화생활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태계는 파괴되었고 인간들은 뒤늦게나마 환경 보호 슬로건을 내세운다. 아마존이 파괴되고 숲이 파괴되며 급속한 사막화가 이루어진다. 인간은 이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생태 작가이자 산림감독관인 페터 볼레벤은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에서 이 문제에 관해 의논해간다.
페터 볼레벤은 2019년 바이에른 자연보호상을 수상한 작가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숲 해걸가이자 나무 통역사이다. 그의 전작으로는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가 있으며 신작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는 출간 즉시 슈피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책이다.
저자는 먼저 우리의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인간과 동물의 오감에 대해 설명해준다. 가령 예전 인간은 자연의 소음에 예민한 청력을 가지고 있었고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또한 나의 어린 시절 뒷동산처럼 나무를 만지고 놀던 촉감들이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으로 촉각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향수와 같은 진한 향기에 자연의 은은한 체취는 잘 맡지 못하게 되었고 맛은 조미료가 첨가된 인공 맛으로 자연의 쓴 맛은 거부하게 되었다. 함께 어울리며 살았던 자연과 숲이 인간의 문명생활이 개입하며 자연과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으로부터 오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왔다. 저자는 이 감각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고 느끼고 듣고 만지는 이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것으로부터의 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다른 생물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야
서로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다.
우리와 자연을 이어주는 띠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다.
우리가 잠시 이것을 무시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환경보호 조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 64p
자유로운 해외여행과 무역등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해왔다. 생태 저자인 페터 볼레벤은 이 현상이 나무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여행이 어떻게 나무의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있을까? 바로 여행자들이 출발지에서 신발이든 어떤 물질을 통해서 유입된 균류의 포자를 통해서이다. 그 중 한 사례로 한국을 예로 든다. 한국인 균류가 뉴질랜드의 남섬과 북섬의 와이푸아 숲의카우리 나무에 들어와 나무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였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이용객을 제한하고 카우리나무 숲을 폐쇄하여야 하나 관광 수입 감소 우려로 오클랜드주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산림감독관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어떻게 야생동물들을 처리해 왔는지 그리고 도시에서는 어떻게 자연을 관리하는지 지켜보았다. 가령 산림감독관의 경우 저자는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야생동물은 많이 사살해야 숲이 보호되었다고 믿었다. 야생동물들이 어린 나무의 잎을 뜯어먹고 나무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이 나무와 숲을 살리기 위해 야생동물의 수렵이 많이 이루어졌다.
야생동물을 쉽게 사살하기 위해 '미끼'를 주어 꾀어내고 인위적인 행동으로 야생동물 개체수를 조정했던 당시의 정책 속에 저자는 숲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후 블랙베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인위적인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닌 자연 그 자체에서 해결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야생동물 개체를 조절하기 위한 인간의 개입이 늘어날수록 위협을 느낀 야생동물들은 더 많이 태어났고 번식률이 더 많아지는 현상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개입이 역효과를 불러 옴을 알게 된다. 자연을 통제해야 한다고 하는 전문가들의 생각이 이런 현상을 초래하게 한다.
이제 나는 숲을 원시 상태에 가깝게 되돌려놓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사냥꾼과 산림감독관을 통한 야생동물과 숲 관리는 또 다른 성격의 문제다.
이 경우에는 국내 생태계를 잘 아는 두 종류의 사용자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연보다 자신들이 자연을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도시의 나무 관리는 자본주의로 인해 병들고 있다. 병든 나무가 있으면 나무의 특성을 살려 치료하는 대신 시멘트를 바르거나 사지 절단해 버리는 임시방편으로 나무의 성장을 멈춰버린다. 임금이 싸다는 이유로 나뭇 가지를 자르는 일을 나무 관리사가 아닌 건축 업자들에게 일임해 버린다. 저자는 이를 사전에 꼼꼼한 나무 검사를 통해 이를 막을 수 있음을 호소한다. 감정가 집단을 통해 나무를 감정하고 살려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이 모든 행위들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고 드는 행위가 많아질수록 자연에 악영향을 주는 사실들에 주목한다. 나무에 인위적으로 비료를 주는 행위 또한 느리게 성장하는 나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행위이다. 저자는 개입이 아닌 연대를 말한다. 각자의 특징에 맞추어 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연대를 말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는데 인간이 통제하려고 하는 마음에 개입하여 자연의 자생능력을 축소해간다. 인간 또한 상대와 연대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이다. 나무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무와 자연에 공감하는 마음이 먼저이다.
나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커다란 존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이다.
자연보호를 원한다면
자연에 공감하는 마음을 먼저 키우자.
내 어린시절은 나무와 함께 어울려 뛰노는 시절이었다. 나무를 만지며 느끼면서 놀았다. 그 때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마음은 아직도 내게 행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온갖 인공 건축물에 둘러 쌓인 아이들은 나무를 사진과 그림으로만 또는 도로의 가로수로만 알아왔다. 이런 아이들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키우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자주 숲을 접하고 함께 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만 한다. 말로만 자연보호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닌 자연을 느끼고 함께 하는 동작 속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숲 프로그램등이 단지 일회성이 아닌 우리의 생활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