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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
로버트 휴 벤슨 지음, 유혜인 옮김 / 메이븐 / 2020년 4월
평점 :

보통 디스토피아 소설은 현실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된 세상을 말한다. <멋진 신세계>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을 조종하는지를 보여주었고 조지 오웰의 <1984>는 인간의 감정과 의지가 완전히 말살된 전체주의 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준다. 그렇다면 《세상의 주인》은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리는가?
그건 바로 세계화이다. 우습지 않은가? '세계화'가 좋은 게 아니였나? 독자는 이 의아함을 가지고 책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줄곧 묻고 있는 질문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계속 따라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세상의 주인》은 개인주의가 말살되고 인본주의가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회를 그린다. 모든 개인주의가 배척되고 인간의 의지만으로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이 영국 및 온 유럽에 퍼지고 이 사상에 의해 모든 종교에 배교자가 늘어난다. 《세상의 주인》의 저자 로버트 휴 벤슨은 펠센버그가 이끄는 인본주의 지도자에 대적하는 신부 퍼시 프랭클린과의 대결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에서 그리는 세상에서 신은 더 이상 무의미한 존재이다. 이미 인간이 신이고 인간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로 전쟁과 평화를 없앨 수 있다고 믿기에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인간의 의지로 고통을 끌어안는 가톨릭은 무용하며 사람들은 죽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가 합법화된다. 인간만으로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이 사상은 많은 이들을 잠식한다. 영국 의원 올리버와 아내 메이블 부인 또한 이 인본주의 사상의 철저한 신봉자들이다.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펠센버그의 정체가 드러나고 온 유럽의 대통령으로 취임되며 상황은 급반전한다. 인간이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하는 인본주의 사상은 그들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가톨릭 및 유신론자들을 말살하기 위한 법안을 강행하며 그들의 신념을 지키고자 한다. 평화를 이뤄내기 위해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핍박하는 이 행태를 보며 올리버의 아니 메이블의 고뇌가 그려진다. 인간이 신이라면서 왜 또 다른 전쟁을 자행하는가에 대한 그녀의 회의는 결국 그녀를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한다.
《세상의 주인》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이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현재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소수자의 의견이 묵살당하는 현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 절대 평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낙관과 오만이 인간을 어떻게 세뇌시키며 또 다른 악을 만들어내는지 소설은 보여준다.
과연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
그들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Yes라고 답하는 펠센버그를 추앙했다. 하지만 어떤 고통도 고뇌도 허용치 않는 이들의 무조건적인 믿음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가톨릭 신부인 저자의 영향으로 이 책에서는 인본주의 사상과 싸우는 세력은 퍼시 프랭클린 신부이다. 이 소설을 현대로 도입해보면 어떻게 될까? 인간을 위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 인간의 편의인 휴대폰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한 고릴라 , 무조건적인 생명 연장보다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죽음을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적게 검소하게 살아가는 삶을 주창하는 생태주의자들, 소수자들의 목소리로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묘사부분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글의 흐름에 약간 끊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흠이지만 이 소설은 다른 어떤 디스토피아 소설보다 현재와 닮은 꼴의 모습을 한 소설임을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한 번 읽는 것보다 재독할 때 이 책을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