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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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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향하는 아홉 편의 이야기. 내게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감상은 안락함과 편안함인데 그래서일까, 집은 간다기보다는 ‘돌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또는 돌아가는 여정을 떠올리며 고잉 홈을 펼쳤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발이 묶여 있다. 그것은 코로나 시국이나 가난한 유학생 신분처럼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고 꿈 또는 쉬이 잊을 수 없는 과거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은 그들이 머물러 있는 순간을 멀리서 관망하고 있는 듯하다. 읽으면서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어딘가에 묶여 있는 막막함을 자주 느꼈다.

바라보는 모든 곳이 방향인데도 나아가는 일은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우리는 가로세로 반듯한 길에서조차 길을 잃어버리는(141) 걸까. 부푼 기대를 안고 유학의 길에 올랐을, 그러나 그만큼의 좌절을 겪었을 이들을 보며 잊고 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향해 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나도 그들처럼 자주 방황하고 때때로 방랑자가 된다. 내 삶인데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낭패감을 느꼈던 기억이,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책에는 유학생 신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집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무조건적으로 기쁜 일만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나는 모두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도달할 수 있기를, 종착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책에서 의미하는 ’홈‘이 꼭 물리적 공간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 삶, 내 자아,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어떤 미래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응원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데 무척 매력적이다! 관망한다고 느꼈던 작가의 시선이 왠지 위안으로 다가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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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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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찾아 읽던 심너울 작가의 신간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읽어 봤다.

마법이 통용된 세상, 인간은 저마다의 마력 등급을 지니고 있다. 소설을 여는 주인공 허무한은 마력이 없는 부모 사이에서 특출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일명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

이야기는 마력의 근원인 역장 추출과 역장 이식이라는 사건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내내 씁쓸함을 느꼈고 사회의 불균형에 대해 생각했다. 대물림되는 마력, 간혹 유전학을 벗어난 확률로 마력이 생기더라도 그 힘을 펼치는 데 필요한 조건과 배경 같은 것들, 역장을 사고 파는 시스템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 종국에는 강탈하는 세력과 범죄들까지. 이 세상 속에서도 기득권과 사각지대는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는데, 특히 S대 응용마법학과라든가 마법의학 전공의 같은 설정은 굉장히 참신했다. 보통 마법과 관련된 이야기의 경우 판타지스러운 배경이 강조되고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나 영웅이라는 메시지를 향해 전개되고는 하는데 갈아 만든 천국은 판타지와 현실성을 너무나도 잘 결합했다. 그러니까 단지 마법이 존재하고 마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 이들 모두 내가 아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보다는 살아 숨쉬는 인물 같은 입체감을 느꼈다. 명문대에 합격 후 축하 플래카드를 건다든지 주거 문제로 부모님과 다툰다든지 낙성대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든지와 같은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해 웃음이 터졌고.

사회로 첫 발돋움을 한 대학생이자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올라온 청년이 겪을 법한 갈등과 위기가 어떤 것일지 모르지 않는다. 때문에 어쩌면 예측할 수 있는 전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 건, 아마 연작 소설로 진행되는 특징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 사랑•결핍•부모의 압박 등이 개입된다는 점도 좋았다. 삶을 좌우하는 선택들은 아주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비롯되지 않나. 그래서 더더욱 등장인물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으레 천국은 이상적인 장소이다. 그런 천국 앞에 갈아 만들었다는 수식이 붙는다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 또한 누군가의 인격과 권리를 약탈하고 갈아 넣어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적인 판타지 소설. 이 아이러니한 장르가 심너울 작가한테는 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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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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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은 괴생명체의 습격으로 터널에 모여 살던 이들이, 식수 문제로 난관에 봉착하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화로웠던 검은과부거미섬은 어느 날 무피귀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일상이 뒤바뀌고 만다. 이후 주인공인 다형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 몇몇은 마지막 피난처였던 터널로 향하게 되고 이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식수에 바닷물이 유입되는 일로 인해 비교적 안전한 내부에서 다른 수를 강구할지, 환기팬을 뜯고 나가 새로운 수를 찾아야 할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갈등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조금의 바닷물이 유입되었을 뿐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종말을 늦추는 것밖에 되지 않는 상황. 이런 갈등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마치 당신이라면 이 문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묻는 것만 같았다. 이후 다형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러 터널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터널 103은 터널 밖 다형의 여정과도 같은 셈이다.

소설이 내게 깊은 감상을 남긴 이유는 이 여정 속에서 다형과 승하,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안전한 터전에 남을지, 어쩌면 가망 없을 여정을 지속할지. 나 하나만을 구할 수 있는 선택을 할지, 모두를 구하는 위험을 감수할지. 또한 전개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모두가 이타적인 선택을 하지만은 않는다는 잔인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타적인 선택이라는 표현을 인간적인 선택으로 적다가 고쳐 썼다. 사실 어느 선택도 인간적이지 않은 선택은 없었으므로......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했다.

디스토피아 배경과 크리처라는 재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담은 소설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생각할 지점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도 좋았을 텐데 반전을 위한 장치로만 사용된 것 같았고, 다양한 크리처들이 나오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스케일이 커지는 건 좋지만 과한 느낌.

인생은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리고 터널 103을 통해 타인의 삶을 통채로 들여다보면서, 그 선택의 갈림길을 같이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과 고민이 모여 보다 좋은 선택과 결정을 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단숨에 읽어내리기 좋은, 흡입력 좋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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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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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소설은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다. (290)

오늘날 주거 문제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숙제와 같다. 삶에 있어 불가결하고, 매일같이 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상적이지만 때로는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집을 주제로 한 단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늑함보다는 서늘함을 먼저 느꼈다.

책 속 인물들은 어떤 집단 또는 공간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임대 주택, 재개발 구역, 정규직과 계약직, 임대인과 임차인 등 어떤 잣대로든 분류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기거하는 집은 때에 따라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되기도,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227)이 되기도 한다.

집의 서늘한 이면을 느끼고 움츠러들 때쯤, 앞서 존재하는 단편들을 지나고 나면 후반부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된다. 좁은 집, 불분명한 내일, 염증을 느끼는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미래와 축복을 비는 마음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작가가 집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관철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순서를 따라 읽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 자체의 일대기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곪아가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작가. 나는 김혜진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각각의 집을 이루고 있는 배경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임대 주택, 재개발 구역, 임대임차의 사각지대, 부당한 노동환경 등 주인공들이 놓여진 상황을 접하면서 나 역시 다시 한번 사유하게 됐다. 어떻게 집이라는 공간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조명할 수 있는지, 생각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에 관한 이야기지만, 집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때가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고, 새삼 좋았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불행과 비극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던 그 시간들이야말로 정말 좋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102)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집이란 공간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우리가 진정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앨범에서는 트랙 순서를, 책에서는 배치 순서를 신경 쓰는 편인데 ‘축복을 비는 마음’의 흐름은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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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2 벽 SF 보다 2
듀나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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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점이 없어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SF라는 장르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상은 다소 제한적인데, 상충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지 기대감을 품고 읽었다.

벽은 나누고 막고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7)

그러나 그 벽을 넘을 수 있다면. 벽이 존재하기에 벽 너머를 상상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벽은 공간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구분 짓는 역할도 한다는 걸,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는 걸 SF보다 시리즈를 통해 느꼈다.

평소 보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와 독자 사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새로운 세계를 엿보기에 충분한 밀도의 단편들이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벽이라는 키워드가 방해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장르, 하나의 키워드 안에서도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렇게 획기적인 시도가 더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은 무르무란. 고전 설화 같은 이야기로 독특하고도 서늘했다. 존재했지만 지금은 잊힌 그 옛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흥미진진했다.

평소 SF라는 장르를 좋아한다면, 비슷비슷한 SF 소설이 지겨워질 참이라면 이 단행본을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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