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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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세일>


장례식장에 근무하는 화자는 투병 생활 중인 아버지의 죽음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계약직 근로자인 그가 직계가족 할인이라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 가족의 죽음을 바란다거나 그 죽음이 특정한 시기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속내가 자칫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았는데, 빈틈이 없는 이야기란 이런 작용을 하는구나 느꼈다. 장례 세일이라는 명료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죽음에도 돈이 요구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오늘날, 그리고 그것이 장사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고 장례 시스템이 거기에서부터 운용되고 있음을 관철할 수 있었다. ’죽음 비용‘과 ’사람답게‘ 죽는 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비용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만 단순히 돈에 의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과 장례식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배경으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 아버지의 죽음을 세일즈하며 죽음의 가치 비용을 고민하는 화자를 좇다, 말미에 가서는 이런 소설과 이런 고찰을 설계한 작가야말로 진정한 세일즈맨이 아닌가 싶었다. 박지영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른 작고 얇은 이야기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성공적이라는 것은 아주 공들여 적었거나 작가가 정말이지 유능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오늘날 장례 의식의 허를 찌르는 글 같다.


<허리케인 나이트>


나는 허리케인을 맞닥뜨리며 오래된 동창 피터의 도움을 받는다. 피터, 다른 이름으로 용준의 아무 때나 연락하라는 말로부터 시작되는 이 조우는 그는 아무 때나 연락해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 반면 나는 아무 때나 연락조차 편히 할 수 없는 사람인 듯한 대비감을 시사하는 듯해 시작부터 재미있었다.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일은 때로 당혹스럽고 불편스럽다. 금호동에 거주하던 내가 외고에 진학하면서, 피터와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생활권에 잠시간 머무르며 느꼈던 것처럼. 작가는 허리케인을 마주하는 현재와 학창 시절을 교차해 보여 주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러나 말하지 못하는 불편함에 대해 성공적으로 이야기한다. 허리케인과 밤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느낌을 연상케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소 상투적이고 진부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나의 생각이기도 했는데 이 우려를 딛고 재미있게 읽은 소설. 어떤 생각은 상흔을 남긴다. 자리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이 흔적을 남기듯이.


때때로 어떤 이야기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되는데, 수상작인 바우키스의 말이 그랬다. 이 소설은 감각하면서 읽었기에 덧붙일 코멘트가 많지 않지만...... 모든 어휘가, 문장이 유려했다. 자주 등장하는 ’어휘‘라는 단어가 소설의 정체성과도 같다고 생각할 만큼.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다채로운 글이 실려 있어서 좋았고, 전반적으로 생각할 지점들이 많은 소설집이라 언젠가는 파고들며 사유하고 싶다. 최근 읽은 수상작품집 중 가장 다채롭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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