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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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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은 좀, 그래요.“
”좀 그렇다니, 뭐가요?“
”그게,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아요. 그래서요.“
(...)
”그러니까 팬클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제목을 접하고 당연하게도 복미영을 연예인으로, 유명인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게 팬클럽이라는 건 대개 ‘대단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니까 일반적으로라면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자신의 위대하지 않음을 수긍하고 그렇기에 팬클럽을 창단한다니?

복미영은 ’그래도 되는 사람‘이다. 보상 없는 헛짓거리를 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쏟아야 하고, 우습기도 경솔하기도 한 사람. 그러나 조금 달리 말하면 그럴 수 있는 사람,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자 용맹한 사람이다.

단지 약간만 방향을 바꾸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나 같은 거‘라는 자조적이던 표현이 낙관적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돌봄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주먹구구식으로. 잠깐만, 잠깐이면 돼, 잠깐만 맡아주면 돼, 너 아니면 누가 해주겠니, 역시 너밖에 없다, 라는 식으로. (157)

사실 나는 미영의 이야기보다도 이야기를 둘러싼 돌봄 노동에 대한 대목들이 좋았는데, 이 소설은 돌봄 노동의 가치가 명백하게 저평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세습되는 돌봄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지은이라는 인물에게 마음이 쓰였다. 지은은 가차 없다. 도구가 쓸모없으면 교체하듯 노동력이 없는 이모를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고 엄마를 보살피는 일을 혈육의 정이 아닌 세뇌된 결과(143)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은을 질타하기 전 우리는 먼저 세대든 시대든 여성에게(만) 대물림 되는 돌봄 노동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저평가의 굴레는 한 명이 아닌 사회가 쌓아 올린 역사인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 속의 이모가 은수 한 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명사 자체로 다가오는 것이 인상 깊다. 그러니 지은이 정말로 버리고자 하는 것은 은수가 아니라 더욱 거창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차피 세상은 계속 나빠질 테니 적어도 자신이 악습은 악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일은 그 악습과 역사에 균열을 내고자 함이 아닐까.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를 읽으면 그 광경을 언젠가는 목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은의 말처럼 절망의 속도보다 아직은 낙관의 속도가 조금 빠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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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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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대로 옮겨져 있구나. 이런 세상이라면 당장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잘한다 싶은 사람은 알아서 앞줄로 나오고, 못한다 싶은 사람은 뒤쪽으로 서세요.“ (37)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서는 수영 강습 중,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은 뒤로 가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것이 응당 효율 높은 방법일 테고 강사의 말처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한낱 운동에서조차 앞에 위치하려면 ’자격‘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45)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수영장 밖의 주호와 희주를 알게 된다. 동료의 산재 사망을 겪은 후 이건 아니라고 반발하는 주호.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많고 공장은 벌금을 내면 그만이니까. 같이 분노하던 이들도 주호의 행동이 지속되자 역으로 그를 향해 이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호와 희주는 괜한 짓을 하는 걸까?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고 꿀벌은 실종될 테고 공장은 멈추지 않을 텐데.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에서 진아가 되묻고 <이름을 짓기 직전>의 석주가 호소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서 자격을 필요로 하면서도, 정작 어떤 문제에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이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131)으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산재 사고/기후 변화 같은 사회 문제와 환경 문제에서 책임지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아직은 망하지 않았다. 이야기 곳곳에도 사소한 기쁨들이 있다. 그 무게가 느껴지는 ’멸망‘이라는 단어와 상반되게 책은 냉소적인 태도를 버려 보지 않겠냐고 말하는 듯하다. 한번 더 생각해 보지 않겠냐고, 직전까지 해보지 않겠냐고. 모든 생명체가 체인처럼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45)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뒤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고 싶다. 멸망할 텐데, 그래도, 그렇지만......


과거에 수상작품집에서 읽었을 때에는 작가의 글이 따뜻하게만 읽혔는데 소설집에 있는 다른 수록작들과 함께 읽으니 그때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한 작가의 소설집이 나올 때는 이런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 유독 기억에 남는 단편은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과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ㅡ3인칭의 세계> 악착같이 공부하는 선자 씨,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선자 씨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다 헤아릴 수가 있을까. 씁쓸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자 씨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서글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3인칭의 세계에서는 굴절되고 마는 인간의 이기심을 느꼈다. 이렇듯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류가 과연 스스로 지구상의 악임을 수긍하고 역사에서 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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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아시스
김채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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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는 삶을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순서나 차례'(43)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중 인물들은 모종의 상실로 인해 이 질서를 잃어버린 듯하다.

환상과 현실이, 독백과 말풍선의 구분이 모호하다. 갑작스럽게 만나고, 헤어지고, 인사하고, 대화하고, 이윽고 사라지기도 하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실재하는 일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오직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만이 선명하다. 신기루 같은 이 소설집은 무엇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생각하다가 모든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꿈, 햇빛, 걷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서 재독했다. 그러자 애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꿈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고 살 수도 있었다. (94) 그러나 현실에서는 죽은 자가 있는가 하면 산 자, 살아가야 하는 자 또한 있는 법이다. 석용은 유림의 꿈을 꾸며 말을 걸고 싶어 한다. 노인은 딸에게 늦게나마 되묻는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상대를 떠올리고 또 다른 가능성을 상정하는 마음이란 그리움이 아닐까. 그들의 파편을 따라 걷는 일이 애도가 아닐 수 있을까?

이미지와 이미지가 이야기와 이야기가 중첩되는 느낌을 받았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의 친구 유림과 쓸 수 있는 대답의 유림이, 빛 가운데 걷기의 아이와 외출의 화자가 동일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 자살을 그만두기로 했던 유림이 어떤 이유로 견디는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인지, 할아버지의 시선을 통해서만 비춰지던 아이가 발화자가 되기까지의 시간이 궁금해졌다.

서울과 오아시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결합이 잘 어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으로써 삶을 조명한다. 작가는 햇빛 아래에서도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공포스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언제까지고 햇빛을 맞고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단어를 열거하는 방식이 자주 사용되는데 소설에서 운율이 느껴진다는 점과 문장의 시각화가 뛰어나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나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은 자주 접했던 소설의 형식을 탈피한 단편으로 독특했고. 신선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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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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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세일>


장례식장에 근무하는 화자는 투병 생활 중인 아버지의 죽음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계약직 근로자인 그가 직계가족 할인이라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 가족의 죽음을 바란다거나 그 죽음이 특정한 시기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속내가 자칫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았는데, 빈틈이 없는 이야기란 이런 작용을 하는구나 느꼈다. 장례 세일이라는 명료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죽음에도 돈이 요구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오늘날, 그리고 그것이 장사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고 장례 시스템이 거기에서부터 운용되고 있음을 관철할 수 있었다. ’죽음 비용‘과 ’사람답게‘ 죽는 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비용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만 단순히 돈에 의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과 장례식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배경으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 아버지의 죽음을 세일즈하며 죽음의 가치 비용을 고민하는 화자를 좇다, 말미에 가서는 이런 소설과 이런 고찰을 설계한 작가야말로 진정한 세일즈맨이 아닌가 싶었다. 박지영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른 작고 얇은 이야기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성공적이라는 것은 아주 공들여 적었거나 작가가 정말이지 유능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오늘날 장례 의식의 허를 찌르는 글 같다.


<허리케인 나이트>


나는 허리케인을 맞닥뜨리며 오래된 동창 피터의 도움을 받는다. 피터, 다른 이름으로 용준의 아무 때나 연락하라는 말로부터 시작되는 이 조우는 그는 아무 때나 연락해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 반면 나는 아무 때나 연락조차 편히 할 수 없는 사람인 듯한 대비감을 시사하는 듯해 시작부터 재미있었다.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일은 때로 당혹스럽고 불편스럽다. 금호동에 거주하던 내가 외고에 진학하면서, 피터와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생활권에 잠시간 머무르며 느꼈던 것처럼. 작가는 허리케인을 마주하는 현재와 학창 시절을 교차해 보여 주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러나 말하지 못하는 불편함에 대해 성공적으로 이야기한다. 허리케인과 밤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느낌을 연상케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소 상투적이고 진부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나의 생각이기도 했는데 이 우려를 딛고 재미있게 읽은 소설. 어떤 생각은 상흔을 남긴다. 자리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이 흔적을 남기듯이.


때때로 어떤 이야기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되는데, 수상작인 바우키스의 말이 그랬다. 이 소설은 감각하면서 읽었기에 덧붙일 코멘트가 많지 않지만...... 모든 어휘가, 문장이 유려했다. 자주 등장하는 ’어휘‘라는 단어가 소설의 정체성과도 같다고 생각할 만큼.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다채로운 글이 실려 있어서 좋았고, 전반적으로 생각할 지점들이 많은 소설집이라 언젠가는 파고들며 사유하고 싶다. 최근 읽은 수상작품집 중 가장 다채롭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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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하는 사랑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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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 노라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해 대립한다. 그들에게는 불투명한 계약 여부와 커리어 단절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뿐만 아니라 연애 시절부터 서로간 느꼈던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소설은 점진적으로 보여 준다. 이때 가사도우미 A 부인이 등장하며 평화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녀가 병마가 싸우게 되며 한시적 평화에 그친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내밀한 속사정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나 A 부인은 결코 가정의 구성원은 될 수 없다. A 부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당시 내가 묘한 계층 차이를 떠올리고 그녀가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했을 때 노라가 성가심을 느꼈다는 대목이 그 사실을 알린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듯 외부인에 불과한 A 부인의 부재가 이들 가정이라는 내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A 부인이 없는 그들은 일촉즉발의 상태 같다. 그 변화와 미세한 균열을 좇으며 읽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A 부인은 우리를 하나로 잇는 유대감의 유일한 증인이었다. (중략) 그녀의 시선 없이는, 우리는 위험에 빠진 기분이었다. (36)


증명하는 사랑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예상을 빗나가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사랑에 대해 기술하는 내용일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아니었다. 공식 하나 없지만 마치 풀이 과정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에 대해 증명하고 만다.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고도, 사랑으로 사랑에 도달한다.


보기 드문 강렬함이 존재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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