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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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대로 옮겨져 있구나. 이런 세상이라면 당장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잘한다 싶은 사람은 알아서 앞줄로 나오고, 못한다 싶은 사람은 뒤쪽으로 서세요.“ (37)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서는 수영 강습 중,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은 뒤로 가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것이 응당 효율 높은 방법일 테고 강사의 말처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한낱 운동에서조차 앞에 위치하려면 ’자격‘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45)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수영장 밖의 주호와 희주를 알게 된다. 동료의 산재 사망을 겪은 후 이건 아니라고 반발하는 주호.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많고 공장은 벌금을 내면 그만이니까. 같이 분노하던 이들도 주호의 행동이 지속되자 역으로 그를 향해 이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호와 희주는 괜한 짓을 하는 걸까?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고 꿀벌은 실종될 테고 공장은 멈추지 않을 텐데.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에서 진아가 되묻고 <이름을 짓기 직전>의 석주가 호소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서 자격을 필요로 하면서도, 정작 어떤 문제에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이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131)으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산재 사고/기후 변화 같은 사회 문제와 환경 문제에서 책임지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아직은 망하지 않았다. 이야기 곳곳에도 사소한 기쁨들이 있다. 그 무게가 느껴지는 ’멸망‘이라는 단어와 상반되게 책은 냉소적인 태도를 버려 보지 않겠냐고 말하는 듯하다. 한번 더 생각해 보지 않겠냐고, 직전까지 해보지 않겠냐고. 모든 생명체가 체인처럼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45)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뒤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고 싶다. 멸망할 텐데, 그래도, 그렇지만......


과거에 수상작품집에서 읽었을 때에는 작가의 글이 따뜻하게만 읽혔는데 소설집에 있는 다른 수록작들과 함께 읽으니 그때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한 작가의 소설집이 나올 때는 이런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 유독 기억에 남는 단편은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과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ㅡ3인칭의 세계> 악착같이 공부하는 선자 씨,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선자 씨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다 헤아릴 수가 있을까. 씁쓸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자 씨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서글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3인칭의 세계에서는 굴절되고 마는 인간의 이기심을 느꼈다. 이렇듯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류가 과연 스스로 지구상의 악임을 수긍하고 역사에서 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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