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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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는 평범한 남자아이들과 달랐다. 운동은 나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운동 경기에서 이겨야 하는 부담감과 땀을 흘리며 힘들게 몸을 쓰는 것이 싫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즐겨 하는 총 쏘는 게임, 전략 게임, 격투 게임, 축구 게임 등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 가만히 앉아서 친구들과 한번 수다를 떨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냥 그땐 그런 것이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특이점들은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놀림거리로 작동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나이대의 남자들은 무리에서 의리를 중시해서 차이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로부터 여자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이 말이 정말 싫었고 고통스러웠다. 왜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부르는지 아니깐. 그리고 남중에 진학하면서, 친구들과의 차이는 점점 크게 다가왔다. 게임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운동도 못했기 때문에 점점 소외됐던 것 같다. 친구들과 겉으론 웃으면서 잘 지냈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다른 아이들이 즐기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게임과 운동에 흥미가 없지?”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이러한 비정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자신을 정말 많이 탓했다. 평범한 아이들이 즐기는 것을 똑같이 즐기고 그들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을 항상 바랬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매 학기 방학 목표는 이것들에 대한 취미 붙이기였다. 결과적으로 성공은 못 했지만, 친구들과의 접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마음속에 응어리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대화 소재로 나오거나 하게 될 일이 있을 때 나 스스로 웅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비정상이 아니란 걸 알며 나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애초에 인간은 다른데 이를 의리라는 이름에 한 무리에 집어넣으려는 행위가 비정상 아닌가?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차이를 매개로 배제하고 소외하려는 사람들이 문제 그 자체다.

다행히 고등학교때부터 이러한 소외감을 덜 느낄 수 있었다. 남자들로만 가득했던 중학교에서 벗어나 여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들이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과 나의 관심사가 같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체육을 못하고 게임을 하지 않아도 친구를 사귀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내가 비정상이라고 여겼던 나의 특징과 관심사는 이 집단에선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 3년을 남자 중학교에서 보낸 나와 여학생들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갈등이 엄청 심했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다.

고등학교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여초 집단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룬 환경은 중학교와 군대 훈련소가 전부다. 나는 여초 집단에서 있으면서 자연스레 여성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 및 불평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해질 수 있었다. 내 주변엔 정말 능력이 좋은 여성들이 많이 있다. 능력과 더불어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수 많은 여성들이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위직 및 존경받는 자리는 남성들의 몫이다. 아이러니이다. 내 나이대에만 잘난 여성들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들을 ‘성’을 매개로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일상생활을 경험을 통해 성차별이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나 역시도 일상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표현을 무시했던 적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을 혐오하며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자가 조신해야지. 현모양처가 좋은 거 아니야? 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가 다르죠?’ 등 무지에서 나온 발언도 했다. 또 서슴없이 ‘입에 걸레 물었냐.’ 등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욕도 서슴없이 사용했다. 지금은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엔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일상에서 혐오가 만연한 생각, 행동, 말 등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작가의 불편한 경험과 생각에 대한 수필집이다. 같은 세상에 살지만, 남성과 여성이 겪는 세상의 모습은 정말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을 넘어 질적으로 차이 난다. 남성이라면 겪지 않을 것들은 여성들은 일상에서 흔히 겪는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까지 이러한 차이는 만연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차별과 배제를 내포한다. 누가 인간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 하는가? 학교에서 우린 이를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 배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비정상성에 대해 익숙해 있어, 이것이 지닌 문제를 쉽게 지나친다.

불편함은 문제를 알아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문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거나 문제에 식민화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불편함’도 혐오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이는 오래전부터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어렸을 때부터 불편함을 토로할 때면 ‘저런 거에도 불편을 느끼나? 괜히 트집이야.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등의 반응을 했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러한 반응은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남성인 나도 이러한 폭력적인 반응에 무기력해지는데, 배제와 차별이 일상화된 여성의 삶은 얼마나 더 무기력할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에서 말하는 ‘당신’은 여성과 남성 모두라고 생각한다. 불편을 느끼는 것에 결코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데 누가 이 감정을 억제하려는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통제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실상은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억제하려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언어와 생각을 빼앗는 행위라고도 생각한다. 불편함은 변화를 부른다. 이는 불편함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문제점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것에 대해 세상에 외칠 때 이러한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을까. 또한 남성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주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남성들에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의도적으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할 땐,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 불편함을 느기 위해선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제목은 불편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인식하라는 말을 전하고 있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면 내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것이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이유겠지. 공부하지 않으면 문제를 방치하고 더 심화할 테니까. 이런 걸 보면 공부의 목적은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함인 것 같다. 공부하자!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자.

질문이 부족한 사회는 아니지만 질문하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가난한 남성이 가난한 여성을 폭행하거나 성을 구매하는 시인 김수영 식의 서사처럼, 남성과 여성 •성소수자가 겪는 빈곤의 경험은 각각 다르다. 다 른 사회적 차별과 폭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남성이 아 닌그외 존재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다른' 질문을 던지는 책은 찾기 어렵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불편할 수 있는 건, 어떤 존재가 눈에 걸리적거릴 때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몸에서 일어 나는 일은 침묵됨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국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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