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깊어 시와서 산문선
나쓰메 소세키.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 봄은 깊어 (다자이 오사무 외, 1900~1950년대; 한국어 번역본 2021)

하루에 조금씩, 한밤중에 느릿느릿 한 단어씩 음미하며 읽은 일본 수필집. 특히 거의 20명 정도 되는 작가의 각기 다른 문체와 고유 정서를 섞이지 않게 읽고 싶어서 되려 무리해서 속도내지 않았다.

번역가님의 말을 보니 일본 산문 고유의 정서인 쓸쓸함이 잘 살아난 글을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처음엔 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옛날 수필이라기에 의레 교과서에서 봐온 옛 수필들의 자연찬미나 긍정적, 교훈적 정서에 내가 많이 익숙했구나 싶었다. 그 선입견을 벗고 아주 천천히, 색안경 대신 돋보기를 들이대고, 필사하며 약 3주쯤 읽었다.

색안경이 아닌 돋보기는 내게 옛 일본 시대를 살아가던 작가들의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 그리고 그 시선으로 본 집 안팎의 풍경, 계절과 절기를 오감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작가들의 뜻밖의 인간적 면모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감히 유명작가에 대해 한마디 붙일 위치인가 싶지만 본인은 잘 안돌보고 츤데레처럼 좋아하던 문조가 죽자 애꿎은 가사 도우미를 혼내는 좀스러운 (?) 면모도 지닌 나쓰메 소세키 작가를 보는 것도,
제목은 분명 ˝봄은 깊어˝ 인데 책읽고 삘받아 간 휴양지에서 실망한 수기를 마치 ‘에어 비앤비 분노후기‘ 감성으로 써낸 구보타 만타로의 솔직함을 보는것도 즐거웠다.

그래 맞아. 인생엔 희노애락이 있고, 불만도 있고, 지질함(?) 도 있는데 옛날 문인의 글이 그걸 소재로 못쓸 건 뭐람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도드라진 감성은 쓸쓸함. 때로는 자발적 고독같고 때로는 외롭거나 헛헛한 감정같은 그 정서가 지인의 소식을 들으며, 풍경을 보며, 어떤 일을 겪으며 작가들의 삶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글을 통해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한가지 번외 활동으로, <봄은 깊어> 라는 제목이 너무 인상깊어서, 시를 모은 워드에 동일 제목의 시를 써두었다.

봄이 오고있지만 아직 밤바람은 쌀쌀한 요즘같은 때, 밤감수성 풍부하게 만들어줄 책

ps: 시와서 에서 보내주신 나쓰메 소세키 원고지에 필사하며 읽으니 더욱 감성살던 독서시간이었다. 아껴쓰고있다. 팔면 사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 이랑 x 이가라시 미키오 콜라보 에세이
이랑.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황국영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6.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랑, 이가라시 미키오; 2021)

<보노보노> 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 님과 페미니스트 인디뮤지션이자 독립출판 작가로 알려진 이랑 님이 1년동안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문 (편지 에세이).

서간문은 작년에 처음 접했는데 그 고유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일단 편지는 1:1 소통을 위해 써진 글이라 일반 책보다 더 일상적이고 내밀한 내용들이 친근한 언어로 써져있다. 또 저자에게 정확한 타겟 독자 (편지받는 사람) 가 있기에 겉도는 얘기, 가식따윈 들어설 자리가 없다. 출판을 염두에 둔 두 예술가의 콜라보 프로젝트기에 개인적 얘기말고도 다양한 정치, 사회적 담론이 가득하다. 하지만 편지의 기본 목적인,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 가정의 평안을 기도해주는 그 따스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비교대조하게 된 책은 작년에 읽은 라종일, 김현진 님의 서간문 <가장 사소한 구원> 인데 (트위터 페책대 모멘트 중 ˝생기부를 부탁해˝ 에 건단리뷰를 올려두었다), 일단 30대에 결혼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여성과 60~70대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기성세대 남성과의 편지라는 점에서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가장 사소한 구원> 을 읽으며 조금 껄끄러울 수 있는 어른의 쓴말이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에는 없다는게 이 책 고유의 장점 같다. (물론 난 <가장 사소한 구원> 을 항상 베스트 서간문 탑 3에 올린다)

고유의 장점에 대해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이가라시 님은 이랑 님이 던지는 다양한 화두 (종교, 삶의 의미, 고양이의 건강, 외국인 파트너의 비자문제) 를 잘 기억하고 근황을 물어봐준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랑 님이 던진 화두의 공을 뒷받쳐줄 수 있는 다양한 책, 영화, 만화, 일본에서 일어난 유사 사회사건 등을 알려준다. 그렇게 그들은 번역의 힘을 빌어 소통을 해야하지만, 생각을 함께하며 소통하는데는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

하나 특별히 놀란점은 이가라시 님이 엄청난 다독가 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로 언급되는 책 작가 중에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 있는데 (최근에 불쉿 잡 이라는 그의 유작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었다), 꽤 묵직한 사회경제 이슈를 말하는 작가였다. 그의 책을 다 사서 본 이가라시 상이나, 그를 따라 그레이버의 책을 사서 대화를 몇달동안 이어간 이랑 님이나 둘다 독서와 담화의 공력이 대단하다. 영화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특히 이창동 감독님 영화들, <벌새>, <노매드랜드> 이야기가 심도깊게 펼쳐진다.

괜히 보노보노가 그렇게 철학적이고 컬트적인 만화가 아니었다는걸 편지를 보며 알았다. (보노보노를 요즘분들은 그 피피티 그림이나 보노보노 에세이로 많이 알겠으나, 보노보노 만화책을 보면 생각보다 매우 매니아적인 만화라는걸 알수있다. 이상 원조 보노보노 만화 컬렉터 ㅋㅋ)

이가라시 님에 대한 호감 만큼이나 이랑님에 대한 호감도 이 챡을 통해 커졌다. 이랑 님은 어떤 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놀이> 가 상을 받았을때, 이 상 으로 내 집세를 벌어야겠다며 상패를 즉석경매에 내놓은 풍자 퍼포먼스를 하셨을때부터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 상패는 소속사 대표님이 50만원에 낙찰받아 가셨다). 상의 권위를 우롱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럴때만 반짝관심을 주고 실제 인디뮤지션들이 지속적으로 예술활동을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메세지로서 효과적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그때부터 이랑님의 노래와 뮤직비디오, 책을 따라다녔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도 이야기 나오는 노래 <가족을 찾아서> 는 한창 가족이 나의 마음을 짓누를때 들으며 홀린듯이 반복하고, 들을때마다 새롭게 또르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이 노래를 들어도 눈시울만 붉어져서 다행이다)

일본과 한국 외교관들이 이 둘같은 마인드와 대화태도만 갖춰도 (아니 세계 지도자들 누구든) 전쟁은 안 일어날것 같다. 생뚱맞지만 전쟁 반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강혜빈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강혜빈 외; 2022)

시집도 꾸준히 읽다보니 마치 노래를 듣거나 예능을 보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새로운 시를 읽고싶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는 어렵다. 이전 완독일기에서 말했듯이, 시는 시인의 가장 내면 (정리되지 않거나 말로 가지런히 설명불가한 영역까지) 을 보여주는 장르인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마음에 다가 오는 시와 시인을 만나는건 어떤 장르보다 더 많은 탐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시 탐험과 탐색이 필요할 땐 앤솔로지 만한게 없다. 올해는 마침 한 주제에 관해 다양한 작가가 작품을 쓴걸 묶은 기발한 기획의 앤솔로지가 많이 눈에 띈다. 최근에 발간된 이 시집은 산문 버전도 있다.

많은 시들이 점심시간, 혹은 오후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오후에 관해 그 속성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다채로운 각도로 각자 적은 시들을 읽다보니 참 한 가지를 보며 다른이들이 하는 생각은 전형적이고 획일하지 않다는 내 심증이 굳어진다.

마음에 특히 남은 시들은 김승일, 안미옥, 백은선 시인님들이 같은 제목으로 각각 쓴 <만나서 시 쓰기>. 추정이지만 세분은 간간히 오후에 만나서 시쓰기 모임을 가지신 모양이다. 하지만 그 모임을 기억하고 글로 그 모임에 대해 풀어낸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한 경험이 셋의 머리속에서 다르게 풀려 가장 자유로운 언어로 나열된 것을 읽는건 꽤나 재미졌다.

그리고 난 강혜빈, 주민현, 황인찬님의 시가 현재 직관적으로 잘 와닿는다고 생각했다.

책의 시작과 끝에 각 시인들이 먹은 점심메뉴와 세상이 끝나는 날 오후에 읽고싶은 시집 인터뷰 답이 실린 것도 흥미로웠다. 더 재밌는 건, 한두사람을 제외하곤 세상이 끝나는 날 자신의 시집을 읽거나, 시집 안 읽을 것 같다고 대답한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아침드라마 - 우리는 마치 예방주사를 맞듯 매일 아침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튼 시리즈 47
남선우 지음 / 위고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 아무튼 아침드라마 (남선우, 2022)

첫인상이 너무 강력했다. 한동안 아무튼 시리즈에 시들해져 있었는데, 아침드라마로 나올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했지만, 그냥 저 표지가 너무 강렬했다. 🤣🤣 표지가 이젠 거의 전국민이 다 아는 대사인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라고 음성지원 해주는 2022년 올해의 책 표지 후보작. 그렇게 홀린듯이 주문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표지가 날아갈듯 빨리 넘겨졌다. 저자는 미술, 공연쪽 기획을 하고 많은 작품설명을 쓰는분이라 그런지 아침드라마에 대한 설명과 해석도 읽기쉽고 명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드라마 와 일일드라마를 약간 얕보았던 (?) 내 마음을 반성하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침드라마라는 하나의 장르, 하나의 유니버스가 그려진다. 전형적인 캐릭터들과 전형적 배경, 개연성없는 마구잡이 전개, 단골 협찬사 피피엘 난입까지. 마치 마블, 홍콩액션, 멜로처럼 K 아침드라마 라는 하나의 고유장르화가 저자의 일목요연하고 애정넘치는 글로 되버렸다. 그리고 그 장르가 의외로 급진적이며 (하도 계보가 꼬여서 그런것도 있지만) 퀴어형태의 가정을 꽤 PC하게 보여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세상에 ‘어머님은 내 며느리‘ 와 ‘아모르파티‘ 가 나의 2021년 인생드라마 인 ‘마인‘ 뺨치게 퀴어를 잘 그렸을줄이야!

그리고 단순 오래 본 장르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저자와 저자의 가족에게 아침드라마는 단순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넘어서 가족과 대화할 거리를 제공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너무 공감되는게, 성인이 되고는 가족과 대화할 스몰토크 거리가 하나 있는거랑 없는게 다르다. 각자의 인생고민은 털어놓을수 있는데 한도가 있으니까. 이정도 되니 ‘아모르파티‘ 를 마지막으로 폐지된 아침드라마를 나조차 (한번도 아침드라마를 제대로 안본) 부활시켰으면 소망하게 되었다.

시선강탈 표지가 전부가 아닌, 펼쳐서 읽으면 더 유쾌하고 찡하기까지 한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호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윤가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4. 호호호 (윤가은, 2022)

<호호호> 의 저자 윤가은 감독님은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의 시선에서 관계, 가족, 세상을 그리는 영화를 주로 만드시는 ˝어린이가 등장하는 여름영화˝ 전문 감독님이다. 여성감독으로서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강압적이지 않은 영화촬영 환경을 조성하시는 분으로 알려져있어 인터뷰는 책 몇권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분의 산문집은 처음이었다. 마침 올해 가입한 마음산책 북클럽에서 첫 선물책으로 보내주셔서 즐겁게 첫독자가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영화를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 저자에게 극호감이 생길것이다. 주변 지인으로부터 당신은 <호불호> 가 있지않고 <호호호> 가 있다는 말을 들은, 좋아하는게 많고, 사랑에 빠지고 열렬히 빠지고 탈덕이란 출구가 봉쇄된 저자의 유니버스는 너무 사랑스럽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보다 나와 많이 겹쳐서 반가웠던 것도 있다. <브링잇온> 이나 <시스터액트 2> (1 도 좋지만 역시 시스터액트는 2지!) 부터 시작된 취향리스트에서 어라? 했고 지방 문방구를 발견하면 있는돈 없는돈모아 문구완구를 털어온다는데선 얼굴도 못뵌 작가님께 하이파이브 할뻔했다.

그렇게 리스트가 이어지는데, 무엇을 좋아해도 온몸을 던져 격정적으로 흥을 발산하고 신나하고 기뻐하는 저자가 제일 호호호 한 분이라 생각했다.

이 책을 쓰기로 한 이유가 영화에 너무 몰두하다가 영화를 향한 좋아하는 마음이 메말라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걸 기억하고 되살려보려고 였단다. 그리고 그 결과로 좋아하는 마음이 심폐소생 된것이 내일처럼 기뻤다.

예쁜 신평화님의 표지 일러스트만큼 글도 시종일관 유쾌하다. 특히 내 진로를 찾아가는게 요새 최대고민인 청소년, 혹은 전과나 복전 등을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 추천!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선물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