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여자들은 잘 안 웃는다. 실제 부부를 그린 <온실에서>(In the Conservatory, 1879)에서는 기유메 부인이 싸늘한 표정을짓고 있어서 논란이 됐고 1863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저 유명한 <올랭피아>(Olympia)도 웃지 않았다. 한때 웃음이 혁명이었다면, 웃지 않음이 문제가 되는 시절이 온 것이다. 웃건 웃지않건 중요한 것은 ‘관행을 깼다‘는 점이다. - P75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것, 남과 다르다는 것, 개성이강하다는 것은 이제 예술가들에게 최고의 칭찬이 됐다. 이전 시대에 개성이 강하다는 말은 회화의 보편적인 법칙에 어긋났다는 부정적인 의미였다. 개성이 강하다는 말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위대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개인이 예술작품의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이 주인공이 되어 평이한스토리를 이어갈 때 예술작품의 중요한 특성으로 부각되는 것 - P81

이 바로 작가의 스타일(style)이었다. 역사학자 피터 게이(PeterGay, 1923~2015)는 이러한 ‘스타일에 대한 의식‘을 모더니즘의본질이라고 말한다. - P82

"아아, 따분해, 따분해?"
사실 이 말은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남자 주인공 레옹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관청의 말단 서기였던 레옹의 삶은 지루하고 권태로웠다. 그의 불륜 파트너였던 엠마 보바리는 그보다 한 수 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만성적 권태의 대가"였다. 권태라는 책에서 피터 투이(Peter Toohey, 1954~ )는권태라는 감정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진부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파리코뮌이 종결되면서 프랑스는 더 이상 정치적인 격동 없이 경제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라파엘전파가 통렬하게 비판했던 황금만능주의와 편협한 속물주의가 삶 전반을 지배했다. 모든 것이 그럭저럭 굴러갔다. 아무도 대단한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이 시대에는 어떤 새로운 모험도, 진지한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권태라는감정을 불러일으켰다. - P90

세상에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며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발군은 르누아르의 작품일 것이다. 르누아르 자신이 유쾌하고 쾌락적인 사람이었고, 당시 파리는 풍경과 시민의 일상 등 어떤 것이든 그리기만 하면 그림이 되는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중이었다. 인상주의 화가가 그린 그림의 주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소풍을 가고,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하는 장면이었고, 그배경은 상상 속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공원, 강변, 기차역, 실내등 일상의 공간이었다. 보들레르가 이야기한 ‘현대 생활의 영웅주의‘가 르누아르 그림에서는 매우 달달한 어조로 표현되고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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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 그림에서 장례식을 진행하는 사제의 태도는 권태롭고냉정하다. 어린 복사 소년도 장례식 절차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산만하다. 감정을 억제하는 듯 얼굴을 가린 사람들 중 몇몇에게는 이해관계 득실을 따지는 듯한 계산적인 표정이 엿보인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상실감과 슬픔 같은 것이 아니라 유산상속혹은 예상치 못했던 친자확인소송 같은 지긋지긋한 삶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지경이다. 애도가 없는 곳에는 죽은이의 이후 삶에 대한 궁금증도 없다. 쿠르베의 그림은 종교가 현세의 삶을 규율하는 것을 거부하듯, 하늘을 잘라낸 듯한 긴 가로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곳에는 지상의 문제만 남아 있다. - P64

플라톤의 세계에는 이데아와 현상이 있었고, 기독교의 하느님도 세상을 만들 때 세상을 하늘과 땅, 땅과 물 그리고 마침내 남자와 여자 등 둘로 나누어서 만들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사고는 암묵적으로 양자 사이의 위계관계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네가 그린 세상은 더 이상 물과 하늘로, 하늘과 대지로, 색채와 형태로 나누어지지 않았다. 색채는 형태를 구성하는요소가 됐고, 형태는 색채 속에 녹아 들어갔다. 모네가 그린 물위로는 하늘이 내려앉았고, 그 위로 구름이 떠가고 꽃이 피었다. 흐르는 물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을 품고 하나가 됐다. - P107

이로써 관람객과 그림이 관찰자와 관찰 대상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은 관람객을 둘러싼 환경이 되고 관람객은 모네의 그림 안에 머무른다. 모든 대립은 이곳에서소멸되고, 자연 속에 몸을 맡긴 채 함께 호흡하는 기적을 경험한다. 여기에는 하늘도, 물도, 수련도 모두 하나가 되어 모네 특유의 시(詩)로 완성된다. ‘수련‘ 연작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대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랑이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선 시정(詩情), 좋은 예술작품에서는 기어코느끼게 되는 정신성(spirituality)이다. - P108

섬세한 색의 배치로 백작은 음악처럼 "영원한 존재"가 됐다. 지금까지 예술은 자연과 인생을 모방했다. 그러나 탐미주의 시대로 오면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철저히 자연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을추구하는 아르누보의 취향이 주류가 되고 있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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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노동이 아닌 자기가 일구고 자기가 그 성과를 거두는 자기완결적인 정직한 노동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다. 겉보기에는 남루하고 힘든 노동 속에 있는 삶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진실을 밀레는 찾아낸 것이다.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 담겨 있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정조를 말년에 이르러서야 이해했던 것 같다. 반 고흐가 유화로 이 그림을 옮겼을 때 그림 속에는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함께 깔깔거리고 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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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저절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개인들, 가령, 영향력 있는 후원자들, 비평가들, 딜러들, 컬렉터들 등에 의해 형성된다. 그들은 기성세대나 일반 관중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롭고까다로운 작품들을 사라고 권유하고 또 홍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개인들이 결국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첫 번째 징조는 1877년의 제3차 전시회를 대하는 비평가들의 반응에서 보이기 시작했는데, 실제적인 변화는 1880년대 들어와서 일어났다. 이 무렵 뒤랑뤼엘이 미국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 P664

번역서 출간이 이처럼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민족 문화가 좀 더 다양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모든 유럽인이 같은 책을 읽음으로써 문학적 형식이 점점균일화 혹은 표준화되었다. - P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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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광업 비판의 근거에는 여행이란 더 높은 수준의 해외문물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상이 깃들어 있다. ‘여행자들‘은그들이 방문하는 외국 도시들의 생활과 문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한다고 주장하면서, 천박한 ‘관광객들과 자기들을 구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들‘은 단체로 움직이면서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고 또 어느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이에 비해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해외 도시의 ‘발견되지 않은‘ 부분을 탐구하며, 정신을 풍부하게 함양하는 방식으로 현지의 ‘실제적인‘ ‘진정한‘ 문화를 체험한다고 주장한다." - P410

‘유럽인‘의 존재감은 해외여행에서 얻는 외향성(性)과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철도 덕분에 유럽 전역의 사람들은 전과는 다르게 자신들을 ‘유럽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당 국가의 역사와 지리에따라서 어떤 나라는 그런 존재감이 강하게 나타났고, 또 어떤 나라는 약하게 나타났다. 이처럼 ‘유럽‘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은 유럽의어느 지역이든 기차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단단히 연결되었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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