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베 그림에서 장례식을 진행하는 사제의 태도는 권태롭고냉정하다. 어린 복사 소년도 장례식 절차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산만하다. 감정을 억제하는 듯 얼굴을 가린 사람들 중 몇몇에게는 이해관계 득실을 따지는 듯한 계산적인 표정이 엿보인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상실감과 슬픔 같은 것이 아니라 유산상속혹은 예상치 못했던 친자확인소송 같은 지긋지긋한 삶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지경이다. 애도가 없는 곳에는 죽은이의 이후 삶에 대한 궁금증도 없다. 쿠르베의 그림은 종교가 현세의 삶을 규율하는 것을 거부하듯, 하늘을 잘라낸 듯한 긴 가로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곳에는 지상의 문제만 남아 있다. - P64

플라톤의 세계에는 이데아와 현상이 있었고, 기독교의 하느님도 세상을 만들 때 세상을 하늘과 땅, 땅과 물 그리고 마침내 남자와 여자 등 둘로 나누어서 만들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사고는 암묵적으로 양자 사이의 위계관계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네가 그린 세상은 더 이상 물과 하늘로, 하늘과 대지로, 색채와 형태로 나누어지지 않았다. 색채는 형태를 구성하는요소가 됐고, 형태는 색채 속에 녹아 들어갔다. 모네가 그린 물위로는 하늘이 내려앉았고, 그 위로 구름이 떠가고 꽃이 피었다. 흐르는 물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을 품고 하나가 됐다. - P107

이로써 관람객과 그림이 관찰자와 관찰 대상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은 관람객을 둘러싼 환경이 되고 관람객은 모네의 그림 안에 머무른다. 모든 대립은 이곳에서소멸되고, 자연 속에 몸을 맡긴 채 함께 호흡하는 기적을 경험한다. 여기에는 하늘도, 물도, 수련도 모두 하나가 되어 모네 특유의 시(詩)로 완성된다. ‘수련‘ 연작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대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랑이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선 시정(詩情), 좋은 예술작품에서는 기어코느끼게 되는 정신성(spirituality)이다. - P108

섬세한 색의 배치로 백작은 음악처럼 "영원한 존재"가 됐다. 지금까지 예술은 자연과 인생을 모방했다. 그러나 탐미주의 시대로 오면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철저히 자연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을추구하는 아르누보의 취향이 주류가 되고 있었다. - P1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