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가 아직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아니야.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야." 윌리엄이 말했다. "약속할게."
켄트가 눈을 내리뜬 채 그를 찬찬히 살폈다. "알겠지만 내가 원하는건 그 이상이야. 네가 나았으면 좋겠어. 네 삶을 사랑하면 좋겠어." - P236

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거의 말을 걸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말을입 밖으로 소리 내서 들으니 조금 더 충격적이었다. 로즈와 찰리는 자매들이 어렸을 때 쉴새없이 말을 걸었다. 실비는 애정도 웃음도 없는 집에서 자라면 어떨지 상상해보려 애썼다. 차갑고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떠올랐다. 그녀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반복적인 소리를 내려고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작은 남자아이를 보았다. 그러자 좋은 소설을 읽었을 때 이야기가 갑자기 마음속으로 들어와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과 똑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 P281

윌리엄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알 때는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입원하기 전에는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고,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너무나 능숙하게틀어막았기 때문에 스스로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호숫가를 따라 달리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 발전처럼느껴졌다. - P300

걸어가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도시의 어둑한 불빛이 내리비추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눈을 맞으며 크나큰 안도감을 느꼈다. 여기가 윌리엄이속한 곳이었다. 어둑한 곳에서 혼자여야 했다. - P309

윌리엄은 평생 자신을 다잡으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벽장에 들어가 기침을 하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항상 약간 늦게 미소를 짓거나 하이파이브를 받아주던 불안한 대학생. 손에 공이 들려 있어야만 편안했던 농구선수. 계획과 일정, 심지어 생각까지 건네주는에너지 넘치는 여자에게 선택받아 마음이 놓였던 청년. 그는 전부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 말을 따르다가 결국 더이상 한 명의 사람이라고할 수도 없을 만큼 자신과 너무 멀어져버렸다. - P311

윌리엄은 병원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았고, 약 덕분에 이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떻게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윌리엄이 추구하는 목표-그리고 아마주치의의 목표도는 충분히 건강하고, 충분히 잘 지내고,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비가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을윌리엄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감각을 느꼈다.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온전함을 느꼈다. 그 충격과 기쁨이 그의 안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 윌리엄은 이런 대화를 하게 만드는 실비가 여기 없기를 바랐지만동시에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실비와 닿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원했다. 간절히 바랐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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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추도객이 이따금 울음을 터뜨렸는데, 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자신의 아픔 때문인 듯도 했다. 너무 빨리 잃은 사랑, 유산, 돈이 늘부족하다는 머리 아픈 걱정. 울어도 되는 곳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이기회를 이용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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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진정한 마법에 가장 가깝다. 글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며,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을 여는 것이다. 현실 세계가 너무 고통스러울 때 글을 쓰면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만들 힘이 생긴다. 글쓰기를 그만두는 건 내게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훑으며 서점을 헤집고 다니는 일도, 서가에 그 책들을 올리기까지의 긴 편집과정에 경탄하며 내 책을 추억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에미 조 같은 아이가 출간 계약을 맺을 때마다, 어떤 젊은 신인 작가가 마땅히 내 것이어야 할 인생을 살고 있음을 깨달을때마다, 질투에 시달리며 남은 생을 보낼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는 내 정체성의 중심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 시작한 후, 그리고 로리 언니가 나 없는 인생을 살기로 한 후, 글쓰기는 내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줬다. 행여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나는 이 마법에 매달릴 생각이었다. - P310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나아가게 해줄 거대한 프로젝트도, 전망도 없이 하루하루 하찮고 자족적인 삶을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세상이 숨죽이고 기다리기를 원했다. 내 말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했다. 영구적으로 존재하기를 원했다. 죽은 후에도 산더미 같은 페이지를 남기고 싶었다. 여기 주니퍼 송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을 우리에게 들려줬다,라고 소리치는 페이지를.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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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지금도 조금씩 부풀어 올라, 그것이 내 속에 남아 있는 알맹이를 자꾸만 먹어 치운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라는 존재를 점점 알 수 없어진다. 나는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거기에는 방향도 없고 하늘도 땅도 없다. - P329

나는 숲의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는다. 나는 속이 텅 빈인간이다. 나는 실체를 잡아먹는 공백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나는 숲의 중심에 발을 들여놓는다. - P331

가는 것을 깨닫는다. 주위의 현실의 소리가 차츰 현실성을 잃어간다. 의미 있는 소리는 침묵뿐이다. 그 침묵이 바다 밑에 쌓이는 진흙처럼 점점 더 깊어져 간다. 발밑에 쌓이고, 허리까지 쌓이고, 가슴까지 쌓인다. 그래도 청년은 오랜 시간 나카타 씨와둘이 그 방에 머물면서 거기에 쌓여 가는 침묵의 깊이를 눈으로재고 있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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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 서가에는 일반적인 인문 관계 서적이 진열돼 있다. 일본문학 전집, 세계문학 전집, 개인 전집, 고전, 철학, 희곡, 예술일반, 사회학, 역사, 전기, 지리..... 그 많은 책들은 손에 들고펼치면 페이지 사이에서 옛 시대의 향기가 난다. 표지와 표지사이에서 조용히 오랫동안 잠들어 온 깊은 지식과 예리한 정감이발산하는 독특한 향기다. 나는 그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몇 페이지 읽어 보고 서가에 돌려놓는다. - P80

나는 자유다.라고 생각한다. 눈을 감고, 나는 자유다.라는것에 대해 한동안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내가외톨이라는 사실뿐이다. 혼자 낯선 고장에 와 있다. 나침반도지도도 잃어버린 고독한 탐험가처럼. 자유란 이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조차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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