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란 비와 같아서,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바르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때로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을형성하기도 했다. 우연이란 난데없이 등장했다. 예상치 못하게, 기이하게 설명할 수 없게.
에를렌뒤르는 우연의 일치를 다른 것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경험상 그는 우연의 일치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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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안절부절못하고 지리멸렬해한다는 것. 이 부엌에서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그러다가도 골목에서 벌어지는세상만사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명랑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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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는 그제야 자신이 처한 불행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그는 앞서 느낀 황홀경을 신을 향한 사랑을, 존재의 달콤함을 기억할 운명이었다. 그는, 비록 한순간뿐이었을지라도, 믿었던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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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유의 충고는 줄리엣도 익히 들어왔던 터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다만 정작 현실 세계에서 세파에 시달려본 적도 없을것 같은 사람들 입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되었다는 점이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줄리엣이 자란 마을에서 똑똑한 여자는 절름발이나 육손이와 동류로 분류되기 일쑤였고 그런 부류의 여자들에게으레 나타나곤 하는 단점, 이를테면 재봉틀을 못 다룬다거나 선물 포장을 깔끔하게 못한다거나 속옷이 밖으로 드러나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같은 단점을 보이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지적하고 나섰다. 쯧쯧, 커서 뭐가 되려고……. - P84

못생겼냐고? 물론 그랬다. 못생긴 건 맞지만 줄리엣이 생각하기에 그 나이 대 남자들 중에는 못생긴 사람이 수두룩했다. 나중이었더라면 줄리엣도 그가 유독 못생겼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P86

"왔군요."
에릭이 세상에서 가장 뻔뻔하고 대담한 구경거리라도 된다는듯 의기양양하게, 감탄해 마지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다. 그가 양팔을 벌리자 마치 바람이 들이쳐 그녀의 고개를 억지로 쳐들게 한 것만 같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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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자 아빠가 반찬을 꺼내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우리를 보고는 괜찮으냐고 묻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명희 아줌마의 말이 맞았다. 엄마는 분명 아줌마와 아빠 사이에서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침대에 눕힌 뒤, 밥을 먹고 가라는 아빠의 제안을거절하고 희령으로 내려갔다. 일요일 오후였고 내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 P89

- 아바이 죽어버려요. 우리 눈에 띄지 말고 죽어버리란 말입니다.
그 말에 증조부가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증조모도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봤다. 할머니는 물집이 잡힌 것처럼 부은 눈으로증조부를 쳐다봤다.
- 당신 돌아가셔도 내레흘릴 눈물은 없습니다. 아바이 산소에도걸음하지 않을 거고, 내는 아바이를 잊을 겁니다. 기러니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우리 없는 곳에서 죽으란 말입니다. - P250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못하고 드러내? 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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