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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ㅣ 이어령 대화록 1
이어령 지음, 김태완 엮음 / 열림원 / 2022년 1월
평점 :
석학 이어령은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 위원회 명예위원장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예술교육대회 조직 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중에게 그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한 것이다. 그때 굴렁쇠를 기획한 사람이 바로 이어령 선생이다.
책의 제목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라틴 말이다.
이 책은 이어령 선생이 암과 투병 중일 때 한 기자가 선생을 찾아가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에 대면했을 때 신부님들에게 종교와 신, 죽음에 대해 24가지 질문을 했었는데, 그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면서 이어령 선생은 신부님과 다른 입장에서, 똑같이 병마와 싸우고 계신 입장에서 답변을 해주실 수 있냐고 묻게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의 물음에 대해 작가는 이미 여섯 살 때 메멘토 모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 일이 있어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이 대선배라는 자부심이 들었고, 고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답변할 신부님들은 종교적인 프레임 속에서 일탈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당신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더 자유롭게 답변을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을 하면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앞으로 발간 예정인 총 20권 분량의 『이어령 대화록』의 첫 번째 책이다.
질문 13.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이미 찻잔 하나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찻잔을 만드는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해당해요. 그런데 컵과 그릇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들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컵의 본질은 무언가 담는 것이고, 무언가 담으려면 비어 있어야 합니다. 빈 컵에 커피를 따르면 커피잔, 물을 따르면 물 잔이 되어 빈 공간이 없어져요. 그러면 이 컵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지요. 이미 무언가 담겨 있으니 더 담을 수 없어요. 그게 '마인드;예요. 컵과 그릇 물질 자체는 '보디'입니다. 그릇을 채우는 욕망이 마인드,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집니다.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 보이드, 그게 스피릿이에요.(p.40,41)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도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게 가장 와닿는 부분은 위의 영혼이란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이었다. 종교의 종류와 특징을 묻는 질문에는 지하철 입구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종교도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며, 어느 구멍이든 일단 들어가면 지하철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열차 두 대가 있고, 우린 그 서로 다른 노선을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듯한 모호한 설명이 아닌 이해가 쉽도록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 서술한 부분을 읽으며 왜 그를 '시대의 지성인', '창조자'라 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쓸 때만큼은 그도 종교인 입장이 아닌 글쟁이의 입장에서 쓰겠다고 전문에 나와있는 만큼 색안경을 끼지 말고, 프레임에서 벗어나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좀 더 쉬울 듯하다.
읽기 전엔 고 이병철 회장이 죽기 전 무엇이 제일 궁금했을까?에 대한 부분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면, 읽고 난 후엔 왜 기자가 이 질문을 들고 이어령 선생을 찾아가 답을 구했는지? 석학 이어령의 다른 생각들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