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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넘어 너에게 갈게 -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최우수상작 ㅣ 토마토 청소년문학
양은애 지음 / 토마토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양은애는 영화를 전공하고 시나리오를 써 온 작가다.
지금은 아이와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평범한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는 "나중에 우리 아이가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그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스토리 부분 최우수상을 받았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질문이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엄마는 맨날 자기 맘대로야. 그치? 네가 만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면서 무조건 못 보게 하고 틈만 나면 뺏으려고 하고……."
준서는 멍하니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엄마는 맨날 공부만 하라고 해. 지금 집에 가면… 분명히 혼날 거야." p.11
준서는 늦게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 속에서 그림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림자는 준서에게 지금 들어가면 혼날 거라고, 네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엄마가 다 버렸을 거라며 집에 가지 말라고 속삭인다. 준서는 엄마한테 혼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자를 따라가긴 무서워한다.
그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준서에게 말을 걸고 준서는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을 흘린다. 노인은 준서에게 늦게 돌아다니면 어둑서니(어두울 때 나타나서 사람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못된 귀신)를 만난다고 이야기하며 허허 웃었다.
준서가 사라진 그림자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준서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가 보이기 시작한다.
프롤로그에 이 이야기를 읽는데 많은 공감이 갔다.
어렸을 때 깜깜해지기 전에는 집에 들어온다고 하고선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깜깜해져 있는 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놀 때는 그렇게 가볍던 몸과 마음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는지….
엄마한테 혼날 각오를 하고 들어갔을 때 아무 말도 없는 엄마를 보고 왜 자꾸 눈치를 보게 됐는지….
엄마가 된 지금 아이가 놀다 늦게 들어올 때 그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어렸을 때 나와 같을까?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의 내 추억과 지금 아이의 모습이 겹쳐 생각됐다.
이 책의 주인공 삼십 대 중반의 주영은 직장에서는 완벽주의자이고, 빈틈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삼십 대 중반이면서 일곱 살의 딸 수인을 키우고 있는 주영은 남편과 이혼을 준비 중이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더 이상 사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주영은 이혼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아이는 자기가 키우겠다고 하자 주영은 그렇게 할 수 없어 딸 수인을 시골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간다.
몇 년 만에 찾은 시골집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주영은 마음껏 쉬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딸 수인은 즐겁게 잘 지내고 있었다. 수인은 가끔 '벼리'라는 친구와 놀고 왔다는 이상한 말을 하긴 했지만, 시골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조금씩 놓였다.
일주일의 휴가가 끝나갈 무렵 주영은 수인에게 여기서 할아버지와 지내고 있으면 엄마가 주말마다 내려오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수인은 싫다고 한다. 주영과 수인의 사이가 벌어졌을 때 어둑서니는 수인을 찾아와 "엄마가 널 버린다고 하지?"라며 속삭인다.
수인의 어두운 마음을 비집고 들어간 어둑서니는 수인을 데리고 가고, 도깨비 벼리는 그런 수인을 구하기 위해 주영을 돕는다.
주영은 벼리와 수인을 찾으러 헤매는 동안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고,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는 현재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수인을 찾기 위해 과거로 과거로 여행을 계속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내 뜻대로 되는 아이들이라면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결국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거 아니겠어?"
"그렇죠. 하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부모로서도, 어른으로서도."
"그 고통도 너의 몫이니 나는 내 삶을 살겠다, 하는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하나 진짜 부모란, 그걸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아픈 내 아이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든든한 뿌리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p.153
수인을 찾아 과거의 기억을 헤매던 중 주영은 삼신할머니를 만나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눈다.
이 문장이 작가가 자신의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나는 과연 든든한 뿌리 같은 사람일까?
양은애는 시나리오를 써오던 작가여서 그랬는지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를 보듯 영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이나 도깨비와 어둑서니와의 결투 장면들도 생생하게 그려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