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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생 - 새이야기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3년 5월
평점 :
작가 곽정식은 대학에서는 정치학과 경영학을 공부했고 기업에서 35년을 근무하면서 기업윤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해외 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던 그는 마흔이 되던 해 《 The Global Steel Scrap 》라는 책을 썼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13년에 《생존과 자존》이란 책을 냈다.
2021년 예순이 넘은 나이에 그는 그동안 살아온 삶을 토대로 《충선생》을 발간했고, 그 책을 읽은 지인이 곤충뿐만이 아닌 곤충에 얽힌 중국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또한 지인은 작가에게 충선생을 썼으니 '충'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새 이야기를 쓰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했다.
왜 벌레와 새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작가는 지인의 생각에 의문을 품은 채 틈틈이 새들을 조사하고 새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자신이 어린 시절 텃새처럼 둥지를 짓고 살았던 금만평야에서 작가는 그 답을 찾았다.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제각각 존재하던 벌레와 새 그리고 인간은 우주 안에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새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충선생'에서 다하지 못했던 삶의 곡진한 이야기들을 새를 통해 풀어내 보고 싶었다. p.5 머리말
책에는 우리와 함께 사는 새, 아낌없이 주는 새, 산과 물에 사는 새, 세계를 여행하는 새, 머나먼 곳이 고향인 새 이렇게 5가지 파트로 나뉘어 21종 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 Part4. 세계를 여행하는 새의 첫 번째로 뻐꾸기가 나온다.
탁란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나쁜 새로 낙인찍혀버린 뻐꾸기,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뻐꾸기를 잘 아는 새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뻐꾸기시계', '뻐꾸기 밥솥', '뻐꾸기를 날린다' 등…. 뻐꾸기란 새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잘 아는 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프리카에서 인도 미얀마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날아오는 여름 철새인 뻐꾸기는 일본, 중국, 한국에 다른 느낌을 주는 새이다. 일본인들이 쓰는 '뻐꾸기가 운다'라는 표현은 한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쓰는 '파리 날린다'에 비견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뻐꾸기 대신 까마귀와 참새로 '아작무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그 의미는 까마귀나 참새도 없이 조용하다는 쓸쓸하고 적적하다는 표현 대신 쓰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같은 뻐꾸기지만 나라마다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못했다.
작가는 이렇게 다방면으로 새에 대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뻐꾸기의 얌체 같은 탁란 방식을 영어로는 기생한다는 의미로 '브루드 패러시티즘'이라고 한다. 사실 뻐꾸기만 탁란하는 것이 아니라 100여 종의 새가 탁란한다. 더구나 뻐꾸기 종류가 다 탁란하는 것도 아니다. 뻐꾸기 120종 중 30종 정도가 탁란할 뿐이지만 어찌 된 셈인지 뻐꾸기가 탁란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간통하여 낳은 아이를 '뻐꾸기 새끼'라고도 한다. p.179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뻐꾸기의 탁란을 다룬 적이 있다.
뻐꾸기는 자신의 둥지를 짓지 않고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딱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고 주변에서 계속 지켜봤다. 뻐꾸기 알이 부화를 하면 뻐꾸기 새끼는 같은 둥지에 있던 다른 알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는 격이다.
그 영상을 함께 본 나와 아이는 뻐꾸기는 나쁜 새라고 생각했다.
사실만 두고 이야기한다면 뻐꾸기는 나쁜 새다. 하지만,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에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세상을 살아보니 이유 없는 악행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뻐꾸기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아봤다. 그때는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시민강좌에서 조류 수업을 듣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이유.
1. 아프리카에서 10,000km를 날아와 5월에서 8월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마치고, 다시 뻐꾸기는 아프리카로 날아가야 한다. 3~4개월 동안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2. 뻐꾸기는 두견이과 새로 체온 유지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알을 품는다고 해도 부화할 확률이 낮다.
3. 뻐꾸기는 신체구조상 다리가 짧아 알을 품기 어려운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정도가 학계에서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이유로 알려져 있다는 걸 알았다.
뻐꾸기가 나쁜 새가 아닌 불쌍한 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 때문이었을까?
무슨 일을 해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중 나도 포함된다.
남에게 맡기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신경 쓰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 내가 내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주변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쉬울까?
분명 뻐꾸기에게도 속 사정이 있을 테고, 사실만을 영상에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다뤄줬으면 뻐꾸기가 이렇게까지 욕을 먹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동정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뻐꾸기가 탁란을 하고도 그 주변을 떠나지 않고 우는 것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뻐꾸기는 8월에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하기에 남의 집에 맡겨놓은 자신의 새끼에게 언어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탁란을 한 둥지 주변에서 새끼에게 계속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뻐꾸기를 보기는 쉽지 않지만, 뻐꾸기 소리는 여름에 도심공원이나 우리 집 주변에서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뻐꾸기 울음소리가 더 구슬프게 들린다.
조류학자가 아닌 작가 곽정식이 쓴 『조선생』은 생태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