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는 이 소설을 그다지 흥미롭게 읽지 않았다. 중반부 부터는 부디 내가 생각하는 결말이 아니길 바라다가, 결국 내가 생각했던 결말이 그려지는 책장을 넘기면서 끙 하는 소리를 냈었다.하지만, 다들 퇴근하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시간에 이곳으로 출근하려고 할때면 나는 파리 어딘가로 해질무렵 출근하던 남자가 나인것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해질무렵 출근하는 것도, 출근해서 밤새 하는 일이 모니터를 보는 일이란 것도, 벨소리가 들리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줘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것도 , 그리고 이렇게 늦은 밤 노트북을 딸깍거리며 타이핑 하는 것도 나는 파리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남자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다른점이 있다면 내가 봐야 할 모니터는 총 아홉개라는 것과, 나에겐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 정도.

 

2. 안개가 앞을 가린 어느 강가에 여러명의 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한 내가 함께 모여 살고 있는 꿈을 종종 꾸곤 한다. 그녀들은 그때 내가 불리던 별명을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그곳에 모여 있는 그녀들 속에는 지금의 나도 있다. 서른살쯔음의 나. 그리고 그 마을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온다. 그 남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모든 나와 사랑에 빠진다. 종종 서른쯔음의 나와 섹스를 하기도 하고, 다른 나이의 나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그곳의 모든 그녀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지금의 나와만 연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꿈을 나는 스물 일곱정도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꾸곤 했다. 그래서 마가렛 타운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꿈에서 책을 읽고 있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때론 소설속 상황이 말도 안되게 내가 어제 꾸었던 꿈의 일부거나, 아주 오랫동안 반복하고 있는 꿈의 일부와 같을때, 나는 내가 꿈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건지,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꿈을 꾸는 것인지, 이게 그러니까 현실의 내가 책을 보는 것인지, 뭐가 뭔지.....

 

3.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종종 문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이 간혹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만나지도 통화를 하지도 않는 이사람과 이메일 혹은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마치 내가 만들어낸 허구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혹은 어느 소설의 끝처럼 나는 사실 아무와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참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다가 마지막 시퀀스에서 사실은 그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처럼 말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 이유는 전화벨 소리 대신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이라고 시작되는 안내 멘트가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4. 귓가에서는 빗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듯 하다.

 

 

5. 망상, 환청, 환각, 인지능력의 불분명.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하기 좋은 모든 것들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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