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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복직합니다 소설Q
박서련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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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 창비에서 제공받은 도서

지난 마법소녀 시리즈,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에서 '나'는 은퇴를 선언했다. '나'의 능력은 대가를 요구했다.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지불했다. 그 대가는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마법소녀가 치를 수도 있다. 다른 마법소녀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며, 소원의 대가로 무엇을 지불할지 알 수 없다는 불안 때문에 '나'는 마법소녀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번복된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마법소녀로 복직한 '나'는 여전히 반지하에 산다. '나'가 거주하는 반지하에 에어컨은 없다. 그렇게 '나'는 생존을 위해 도서관에 간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제공받지 못해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어떤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향하는 문화 공간의 예산 삭감에 대한 문제 또는 폐쇄와 같은 일들. 점점 있을 곳을 잃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된다. 설상가상 '나'의 집주인은 보증금을 천만 원으로 올려 받겠다고 말한다!(양심 있는지?) 리볼빙 빚을 아직 다 갚지 못했는데, 천만 원의 보증금이라니.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그 막막한 빚의 더미에 숨이 턱 막힐 것만 같다.

최악의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나'의 칭호에 대하여 희생의 마법소녀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는다. 마법소녀로 복직 후 처음 맡은 임무에서 '나'의 능력에 대한 대가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마협과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됐고, '나'의 집주인은 '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한다. '나'는 거주 공간에서 쫓겨나는 일에 대해 자신을 잘못을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마법소녀로서 사람들을 구해주었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 실수가 이 집에서 쫓겨나야 할 만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113쪽) 부당하고 억울한 현실에 저항할 수 없고, 그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곱씹는 '나'의 마음에 공감하며 나는 또 마음이 아팠다.

쫓겨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극동마법소녀전진본부(이하 극동본부)라는 종교단체가 있다. 가정에서 학대 당하던 두 소녀가 있었고, 소녀들은 도망쳤다. 극동본부는 갈 곳 없는 두 소녀들을 끌어들였다. 두 소녀는 학대의 공간에서 스스로 도망친 것이었지만, 쫓겨난 것과 진배없었다.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소녀들은 끝내 사이비 종교 단체로 밀려났던 것이다. 어쩐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 떠오르는데, 좀 낙원이 있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 그토록 끔찍했기 때문에 달아났던 것인데, 끔찍한 생을 겪은 이들에게 삶은 끝도 모르고 가혹해지는 것 같아서.

급하게 마무리짓는 것 같지만, 끝을 내자면

그래, 삶의 해피엔딩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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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리커버) 소설Q
박서련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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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 창비에서 제공받은 도서

'나'는 죽고자 한다. '나'는 삼백만 원의 신용카드 빚을 가지고 있다. 지금 갚을 수 있을 만큼 돈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은 이자와 함께 다음 달로 넘긴다. 리볼빙을 쓰고 있는 '나'의 빚은 이자와 함께 불어난다. 고작 삼백만 원이 없어 죽고자 하는 것. 그러면서도, 가능한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는 방법에 대한 궁리를 하는 '나'라는 인물에 공감하고 말았다. 꼭 죽을 결심을 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보다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혹은 세상에 끼칠 피해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나의 죽음, 나의 존재, 나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을 결심한 '나'의 앞에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가 나타나 당신은 시간의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건 구원의 한 장면이었다. 나의 쓸모와 가치를 모두 잃고 삶의 의지가 꺾여버린 이에게 당신은 사상 최강의 마법 소녀가 될 것이다, 당신의 힘으로 세상을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며 가치를 일깨우고,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아직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해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나를 믿고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구원의 서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의 마법 소녀로 각성하는 것은, '나'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예언을 틀려본 적 없는 아로아가 '나'의 앞에 나타난 까닭은 정말로, 구원이었던 것이다. 아로아는 히드로공항에서 '나'를 향해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지키는 것, 당신을 지킬 운명. "당신이 나의…… 운명인 거예요!" (110쪽) 고백의 순간이 참 찬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한다.

시간의 마법소녀는 어떻게 각성했을까. 마법소녀의 각성 계기는 트리거였다. 그것은 시간의 마법소녀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의 마법소녀는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에 시간이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했고"(116쪽) 각성이 일어났다. 마법소녀로서의 각성은 그 순간 가장 취약한 존재에게 자신을 지키는 힘을 부여받는 순간이었다. '마법소녀로서의 최초의 싸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투'(119쪽)였다.

'나'의 사례는 어떨까. 시간의 마법소녀는 아로아가 속한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이하 전마협)과 뜻을 같이 하지 않았고, 인류의 멸망을 도모한다. 전마협은 패배할 것 같고, 시간의 마법소녀에 의해 인류는 멸망할 것 같다. '나'는 소망한다. 시간의 마법소녀를 이기고 싶다. 그 마음은 그저 승패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대상이 있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소녀의 각성은 그렇게 나,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를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글을 끝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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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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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작가가 이 문장을 처음 썼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더구나 한글 파일의 새하얀 화면이 아닌 노트에 손끝으로 써내려갔을 이 문장에, 어떤 의미를 담았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호정에게 호정의 마음에 있는 그 호수는 얼마나 단단하게 얼었을까. 어떻게 자신이 몹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꽁꽁 얼었다 한들 작은 틈을 건드리는 순간 깊고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 안전하다는 단어가 호수와 어울리는 단어일까. 호수는 사실 안전하다기보다 위험하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과연 호정의 호수는 호수의 바깥일까, 호수의 안일까를 생각했다. 당연하게 호수의 바깥을 생각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가 제 숨을 틀어막는 깊은 호수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지켜준다. 겨울의 얼어붙은 호수는 몹시 차갑고, 호수의 밑바닥은 아주 캄캄할 것이다. 그런 곳에 혼자 남겨지는 것은 꽤 쓸쓸할 것이다.

그러나 호정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는 모두 지켜보았다. 모두, 라고 해봤자 소설 속 호정의 일일 뿐이지만. 호정과 내가 겪은 일들이 같지 않은데 나는 호정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어떤 외부의 일 때문에 곪아갈 때 나는 신경질을 부리고 비뚤어졌다. 그때는 호정처럼 내 곁에 다가와 주는 모든 존재에게 모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럴 때 아무리 춥고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혼자이고 싶었다.

호정도 나와 비슷했더라면 호정이 있는 곳은 호수의 바깥이 아닌 호수의 내부일 것이다. 그곳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은 없을 테니까. 숨이 조금씩 턱턱 막히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한들 그렇게 고요한 상태에 그 외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호수의 일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물의 속성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다. 나를 죽음에도 몰아넣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가, 나를 다른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

-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소설의 끝을 장식한 문장에도 호수가 있다. 그러나 봄이 온다. 얼어붙은 호수는 봄볕에 녹고, 그 안에 홀로 있을 호정은 호수의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 호수가 봄볕에, 여름의 열기에 메마를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도 호정은 그 얼어붙은 호수보다도 더 안전한 상태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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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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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투키를 ‘소유’하는 이와 켄투기가 ‘되기’를 선택하는 이. 켄투키가 ‘된’ 자들은 ‘소유’한 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보여주는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털을 날리지도 않고, 먹을 것을 챙겨줄 필요도 없는 데다 그럭저럭 귀여운 외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반려동물 대신에 켄투키를 선택한다. 혹은 내 아이를 돌볼 수 있고 또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존재로서.

그 정도의 이유로 켄투키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를 내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나. 게다가 켄투키를 ‘소유’한 이는 ‘조종’하는 이에 대한 정보 값이 전혀 없다. 켄투키와 단순히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애정과 유대감을 형성하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켄투키 너머의 존재는 어찌됐든 인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특정 대상에게 악의를 품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방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은 꼭 어떤 특정인에 대한 증오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호기심, 그저 흥미를 돋운다는 이유로 죄를 행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평소 드러내지 못했던 추악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지, 아니 고려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켄투키를 ‘소유’하고 만다.

켄투키가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켄투키의 자유를 갈망하는 ‘켄투키 해방 운동 단체’가 등장한다. 켄투키를 ‘조종’하는 이들은 켄투키가 아닌 그 외부에서 켄투키가 있는 상황을 그저 태블릿으로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자유를 원한다면 켄투키의 연결을 끊어버리면 그만이지 않나. 솜 덩어리를 입은 로봇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켄투키에게 사람들은 너무나도 과도하게 묶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켄투키를 ‘조종’하는 이는, 이제 ‘조종자’가 아닌 정말로 켄투키가 ‘된’다. 태블릿 너머에서 켄투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마르빈은 내가 굴러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과도하게 켄투키에게 이입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켄투키의 눈을 통해 본 또 다른 삶 때문인가. 나와 켄투키의 존재가 분리되지 않고 두 존재 모두 나로서 인식하기 때문에 연결을 끊어버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걸까.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책을 읽으며 켄투키의 존재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소유자’는 자신과 함께하는 켄투키를 향해 애정을 표현하고, ‘조종자’는 ‘소유자’의 삶을 지켜보며 애정을 느낀다. 에밀리아와 에바의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이 켄투키의 존재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세계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켄투키를 ‘소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 책을 공포로 분류하는 까닭을 여기에서 어렴풋이 느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존재를 나는 어느새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고, 어쩌면 사랑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는 내가 느꼈던 일말의 감정들이 모두 산산조각냈다. 이 섬뜩한 존재를 정말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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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아이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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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이는 아이의 따뜻한 입김에 따뜻하다며 울고,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작아지고 더러워진다. 계절은 봄을 향하고 있고 아마 눈아이는 이별을 직감하며 슬펐을 것이다. 내가 더이상 깨끗하고 포근한 눈아이가 아니게 되었을 때도 저 아이는 나를 사랑해줄까? 그런 마음이 들어 불안했을 것이다. 눈아이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져 읽는 동안 조금 슬펐다.
그러나 아이는, 계절을 돌아 다시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 날 눈 아이를 찾아낸다.


이별은 이별로 끝나지 않는다.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날 수 있다. 잠시 이별한 동안 우리는 조금 슬플 수도, 그리울 수도 있다. 영영 만나지 못할까 봐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란 건, 눈아이를 다시 찾아낸 아이처럼 서로가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희망이 밝아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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