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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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 창비교육에서 제공받은 가제본 도서

내면의 불안을 깨고 나오는 것은 결국 자신이어야 한다.




꼭 어떤 세계, 틀을 깨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그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알은 세계이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그렇다면 연우에게 큐브는 어떤 세계인가를 생각해본다. 느닷없이 자신과 세상을 완전히 단절시키고 분리하여 그를 고립시켜버린 고독의 공간인가. 어떠한 위험도 덮쳐오지 않는 완전하게 그를 지켜줄 안락의 공간인가. 안락과 고독. 완전히 별개의 독립된 감정은 아니라고 불현듯 깨닫는다.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발생하는 마음의 피로도 같은 게 있다. 상대의 마음을 신경쓰는 것, 상대와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 등등.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통제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피로하고, 때때로 스스로 큐브 안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어느 외계 생명체에게 붙잡힌 적도 없으면서 나는 스스로 큐브를 만들어낸다. 나의 큐브와 연우의 큐브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큐브를 빠져나올 수 있지만, 연우는 그럴 수 없다. 영문도 모른 채 큐브 안에 갇혀 있다. 큐브는 안락의 공간이 아니다.



곁에 딱 붙어 있을 거다. 여기는 거기가 아니라고, 밖이라고, 네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왔노라고, 끊임없이 말해 줄 거다. 그래서 장치 같은 것 없이도 불안하지 않게,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또 언제 채집당할까 무서워하지 않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외로운 줄 모르고 외로워하지 않게 끝없이 말해 줄 거다.

보린 《큐브》 185쪽



이 부분을 읽을 때 확신했다. 큐브 속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연우를 큐브 속에 가둔 존재가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연우가 믿었던 대로 어떤 괴상한 외계 생명체의 실험이었든, 무의식의 세계였든, 언젠가 일어났을 지도 모를 미래의 어느 순간이었든. 예측 불가하여 불안한 세계일지라도 바깥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세상 모든 곳에서 불어오는 불행의 바람에 맞서야 한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소설에서 우주로 간 최초의 개,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지어서 무언가 글을 남기고는 싶다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만 쓴다. 극 F의 감정형 인간으로서 괜히 찾아봤다가 울면서 글 마저 읽었다는 것만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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