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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리커버) ㅣ 소설Q
박서련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 창비에서 제공받은 도서
'나'는 죽고자 한다. '나'는 삼백만 원의 신용카드 빚을 가지고 있다. 지금 갚을 수 있을 만큼 돈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은 이자와 함께 다음 달로 넘긴다. 리볼빙을 쓰고 있는 '나'의 빚은 이자와 함께 불어난다. 고작 삼백만 원이 없어 죽고자 하는 것. 그러면서도, 가능한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는 방법에 대한 궁리를 하는 '나'라는 인물에 공감하고 말았다. 꼭 죽을 결심을 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보다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혹은 세상에 끼칠 피해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나의 죽음, 나의 존재, 나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을 결심한 '나'의 앞에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가 나타나 당신은 시간의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건 구원의 한 장면이었다. 나의 쓸모와 가치를 모두 잃고 삶의 의지가 꺾여버린 이에게 당신은 사상 최강의 마법 소녀가 될 것이다, 당신의 힘으로 세상을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며 가치를 일깨우고,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아직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해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나를 믿고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구원의 서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의 마법 소녀로 각성하는 것은, '나'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예언을 틀려본 적 없는 아로아가 '나'의 앞에 나타난 까닭은 정말로, 구원이었던 것이다. 아로아는 히드로공항에서 '나'를 향해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지키는 것, 당신을 지킬 운명. "당신이 나의…… 운명인 거예요!" (110쪽) 고백의 순간이 참 찬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한다.
시간의 마법소녀는 어떻게 각성했을까. 마법소녀의 각성 계기는 트리거였다. 그것은 시간의 마법소녀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의 마법소녀는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에 시간이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했고"(116쪽) 각성이 일어났다. 마법소녀로서의 각성은 그 순간 가장 취약한 존재에게 자신을 지키는 힘을 부여받는 순간이었다. '마법소녀로서의 최초의 싸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투'(119쪽)였다.
'나'의 사례는 어떨까. 시간의 마법소녀는 아로아가 속한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이하 전마협)과 뜻을 같이 하지 않았고, 인류의 멸망을 도모한다. 전마협은 패배할 것 같고, 시간의 마법소녀에 의해 인류는 멸망할 것 같다. '나'는 소망한다. 시간의 마법소녀를 이기고 싶다. 그 마음은 그저 승패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대상이 있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소녀의 각성은 그렇게 나,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를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글을 끝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