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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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작가가 이 문장을 처음 썼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더구나 한글 파일의 새하얀 화면이 아닌 노트에 손끝으로 써내려갔을 이 문장에, 어떤 의미를 담았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호정에게 호정의 마음에 있는 그 호수는 얼마나 단단하게 얼었을까. 어떻게 자신이 몹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꽁꽁 얼었다 한들 작은 틈을 건드리는 순간 깊고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 안전하다는 단어가 호수와 어울리는 단어일까. 호수는 사실 안전하다기보다 위험하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과연 호정의 호수는 호수의 바깥일까, 호수의 안일까를 생각했다. 당연하게 호수의 바깥을 생각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가 제 숨을 틀어막는 깊은 호수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지켜준다. 겨울의 얼어붙은 호수는 몹시 차갑고, 호수의 밑바닥은 아주 캄캄할 것이다. 그런 곳에 혼자 남겨지는 것은 꽤 쓸쓸할 것이다.

그러나 호정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는 모두 지켜보았다. 모두, 라고 해봤자 소설 속 호정의 일일 뿐이지만. 호정과 내가 겪은 일들이 같지 않은데 나는 호정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어떤 외부의 일 때문에 곪아갈 때 나는 신경질을 부리고 비뚤어졌다. 그때는 호정처럼 내 곁에 다가와 주는 모든 존재에게 모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럴 때 아무리 춥고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혼자이고 싶었다.

호정도 나와 비슷했더라면 호정이 있는 곳은 호수의 바깥이 아닌 호수의 내부일 것이다. 그곳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은 없을 테니까. 숨이 조금씩 턱턱 막히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한들 그렇게 고요한 상태에 그 외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호수의 일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물의 속성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다. 나를 죽음에도 몰아넣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가, 나를 다른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

-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소설의 끝을 장식한 문장에도 호수가 있다. 그러나 봄이 온다. 얼어붙은 호수는 봄볕에 녹고, 그 안에 홀로 있을 호정은 호수의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 호수가 봄볕에, 여름의 열기에 메마를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도 호정은 그 얼어붙은 호수보다도 더 안전한 상태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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