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마크 A. 호킨스 지음, 서지민 옮김, 박찬국 해제 / 틈새책방 / 2018년 1월
빨래 돌리면서 세탁기 옆에서 읽었다. 정신이 산만해질 때마다, 특히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붙들고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책이다. 철학 개념을 많이 쓰고있기는 한데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내용이 그다지 깊은 논리도 아니라는 말.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 보고 있다거나 가만히 쉬는 동안에도 자꾸만 뭔가를 보고, 읽고, 계획하고, 쓰고, 생각하고 있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학교 과제 중에 '20대 청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고르라는 게 있었는데, 장정일 선생이 오늘날의 우파청년을 구상하며 썼다고 해서 읽었다. 하지만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책이었고 결국 다른 도서를 추천하고 말았다. 작중 거북선생이 자신의 그것을 은에게 삽입하며 '지혜를 전승하는 가장 오랜 방법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가히 압권. 우파청년을 사유하긴 개뿔, 이런 기가 막히는 돌려까기식 호모포빅 레토릭을 동원하고 있는 데서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4월>
희랍 철학 입문
W.K.C.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0년 4월
박종현 선생의 번역으로, 이것저것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꼼꼼한스피드웨건스러운 주석들이 특징이다. 얼마 전부터 플라톤 스터디를 하게 돼서 읽게 됐다. 초반부에서 희랍적 사고 전반을 개괄하며 철학은 사실 언어의 문제라고 역설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령 종과 유의 관계를 보면, 당대 희랍인들은 사물의 이름은 그 사물에 '자연적'으로 속하는 것인가 아니면 '약정에 의하여 속하는 것인가'를 물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크라틸로스> 편 참고) 이에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물을 발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 무척 놀라운 면이 있다. 사족으로 박종현 선생이 ergon을 역할로 번역하는 바람에 내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적잖이 오해하게 된 바 있다. (...)
<5월>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는데, 이 책이 인용되길래 읽게 됐다. 친구랑 같이 봤는데, 사강 소설답게 한때의 사랑을 소재로 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어딘가 세상을 내리까는 듯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친구한테 나도 옛날에 베르나르였고 조제 같은 연인이 있었다고 얘기했더니, 그때부터 걔는 나를 보면 자꾸 베르나르가 생각난다고 그러더라. 역시 연애소설은 한때의 장르다.
변희재의 청춘투쟁
변희재 지음 / 도전과미래 / 2014년 7월
그냥 어느날 변희재에 꽂혔다. 아마 우파인사에 대한 컬트적 로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강의석 감독의 괴작 '애국청년 변희재'도 감상했고 이 책도 읽었다. 초반부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파트가 나름 흐뭇하다. 변희재 본인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뭐 꼭 학문적 궤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ㅎㅎ). 며칠 전에 변희재씨 법정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웠다. 사석에서 같이 소주 한 잔 하면 참 유쾌한 삼촌형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ㅜㅜ) 언젠가 사석에서 뵐 날을 고대한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진중권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8월
사실 대중 일반에 보여지는 진교수는 지극히 컨셉충의 면모가 다분하다고 보지만(이 책도 그중 하나다), 그의 모두까기비판적인 스탠스 자체는 존경할만 하다. 꼭 변희재씨 저작을 읽고 생각난 건 아니고 얼마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기대보다는 덜 재밌었고 덜 유익했지만 앞으로 우익 파시스트 까는 데 이 책을 본보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12월
역시 플라톤 스터디 때문에 읽게 됐다. 말이 필요 없다. 소크라테스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 대중적 연설.
선을 넘어 생각한다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얼마 전부터 남북한 평화무드가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읽었다. 1학년 때 북한 관련 교양을 들었었는데 지극히 편향적이고 피상적인 이해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게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때문에 이제야 이런 값진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박한상 교수는 만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굴지의 학자인데, 국내에서는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자신이 해외에서 활동한 것도 국내의 그런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 이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북한에 대한 편향적이고 도식적인 이해를 깨부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상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레드 컴플렉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사회에서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태도다. 그동안 체제유지의 명목으로 북한은 우리에게 무척 비합리적으로 이해되어 왔고, 이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폐해가 야기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정말 선을 넘어 생각해야 할 때다.
<6월>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
이태수 외 지음 / 길 / 2015년 3월
지금 읽고 있다. 형이상학은 어렵고 복잡하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는 걸 깨우치고 간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시험공부 같은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박홍규의 텍스트를 한 자라도 더 이해하는 것이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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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독서에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야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예년보다는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아무튼 학교는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끔찍한 사람들 뿐이고, 독서는 재밌다. 재밌을 줄 몰랐는데 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