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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법안
김이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2월
평점 :
해외 시찰을 갔던 심경모 의원이 터키 앙카라에서 부르카를 쓴 여인에게 피습을 당하고, 함께 해외 시찰을 갔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정민식 의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해외 시찰 수행원이었던 국제협력관 류호민은 이에 의구심을 갖고 추적하던 중에 "유령법안"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국회의원의 추악한 음모가 서서히 밝혀진다. 그리고 류호민은 그 중 선택의 기로에 서는 데…….
곧 대선이다.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요즘 대선 후보들의 발언 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서 혐오감이 들 지경이다. 최선을 뽑아야 하지만 최악이 안 되기 위해 차악을 뽑는 선거를 여러번 겪었는데 이번엔 도통 그 차악마저 선택이 힘드니 곤란할 지경이다. 이미 여러번 겪었지만 정치인들의 추악한 뒷 이야기는 매번 선거가 시작되고 나서 끝날 때까지 연신 기사화되고 반복된다. 그마저도 어느 정도 돈과 권력으로 가로막힌 것일 텐데, 과연 우리가 아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을까?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이기도 한 <유령 법안>은 2013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김이수 작가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행정실장 경력을 포함한 27년간 국회에 근무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한국 정치 스릴러 소설이다.
<유령 법안>에서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건 실제 2011년에 한창 이슈가 되었던 "수쿠크법"이 등장한다. 이슬람 금융을 도입하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 과세특례 조항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언뜻 보면 이슬람 금융에게 특혜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 동안 받고 있던 상대적 불이익을 없애자는 것인데 당시 기독교계에서 이를 맹렬하게 비난했고, 결국 통과되지 않았다. 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므로 이에 대해 뭐라 왈가불가할 것은 아니지만 그 때도 이권 싸움이군, 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소설에서는 이 수쿠크 법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갈등은 물론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지리멸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자의 이권을 위해서 수쿠크 법을 두고 여러 방법은 물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는 류호민 국제협력관에 의해 하나둘씩 밝혀지는데 그 과정 속에서 경악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인간의 욕망이란 이토록 지저분한가? 싶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2011년에 수쿠크 법을 두고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유령 법안>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정말 픽션이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어느 누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들었다. 하나의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 얼마나 오래 걸리는 지,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모든지 북한과 엮어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국정원이나 한숨과 함께 결국 그들에 의해 굴복한 이의 이야기에 이게 바로 현실이구나 싶었다. 씁쓸하기 그지 없는 책의 결말, 그러나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소설은 사건을 소개하는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도대체 언제 이 사건의 비밀을 추리하는 과정이 나오는 걸까? 갑자기 마무리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매우 긴박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없이 진실을 토해나다 어느 순간 비틀어 버리기도 한다. 마지막 순간, 류호민의 선택은 모든 과정을 뒤엎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솔직히 스릴러는 좋아하지만 정치 스릴러, 그것도 한국의 정치를 가지고 만든 스릴러는 딱히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아주 만족스럽다. 찜찜하기 그지 없지만 그것이 현실이기에, 스릴러만이 주는 끈적거리는 이물감이 남는 마무리도 좋았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