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띠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프레임을 리프레임하라."

 

프레임이란 단어는 여러 심리학 서적에서 많이 보았지만 개념이 명확히 잡혀 있지는 않았다. 도대체 프레임이 무엇이길래 그것 하나만 바꾸어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까. 저자는 심지어 책 제목도 '프레임'이란 단어로 지정했고 부제는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라고 적어놓았다.

『프레임』은 내가 지금껏 무심코 지나가며 스스로 만들어놓고 만들어진 수많은 프레임에 갇혀 있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최인철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프레임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첫번째 챕터 <프레임에 관한 프레임>에서 프레임을 맥락, 정의, 단어, 질문, 은유, 순수, 욕망, 고정관념, 기회 등으로 정의내리고 예시를 보여준다. 쉽게 말해서 어떤 사건에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그 사건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어떤 일이나 사건, 또는 물건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고 여기지만 실상 그 판단에는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만들어주고 우리가 습득해온 프레임 즉 기준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것들을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완벽하게 개념이 잡혀 있지 않고 그것을 깨우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프레임을 느끼고 그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프레임이 주는 일부 문제에 대해 쉽게 문제제기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타인이 아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레임의 경우 문제가 있더라도 누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물론 나의 프레임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경우도 결과적으로 남을 너무 의식하고 있는 개인의 잘못된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인간의 삶을 자칫 잘못된 프레임으로 조종당하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혹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레임』에서는 일반 사람들도 쉽게 프레임의 정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이런 문제를 좀 더 객관적이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새로운 프레임이 생기고 그 프레임 때문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프레임이란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일단 이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프레임의 정의를 좀 더 명확히 인지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조금은 이론적인 설명이 다분하지만 나름대로 예시를 들어 독자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최인철 교수의 책 『프레임』은 그 역할에 상당히 부합한다.

총 10가지의 챕터를 통해 프레임의 정의와 <이름 프레임> <변화 프레임> <현재 프레임> 등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다양한 프레임과 문제점을 분석해준다. 그러는 한편,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심적인 프레임 11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 의미 중심의 프레임을 가져라
2. 접근 프레임을 견지하라
3. '지금 여기' 프레임을 가져라
4.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5.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6.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7. 주변의 물건들을 바꿔라
8. 소유보다는 경험의 프레임을 가져라
9. '누구와' 프레임을 가져라
10.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11. 인생의 부사를 최소화하라

 

우리가 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 개개인이 갖고 있던 프레임이 막혀버렸던, 그러나 연마하고 갖고 있어야할 프레임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예시를 통해 이해시켜준다. 그냥 봐서 참 어렵지만 의외로 가독성이 뛰어나고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 책을 읽을 때만이라도 새로운 프레임을 갖고 직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ossom 블로썸 - 날마다 다른 행복을 꿈꾸는 그녀들의 컬러링북
전지영 지음 / 예담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컬러링 북이 처음 나왔을 때는 도통 왜 어린 시절 하던 색칠 놀이를 컬러링이라는 번지르한 말로 바꿔서 힐링이다 뭐다라는 수식어를 붙였는 지 솔직히 의문이 들기는 했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 하던 색칠 놀이를 성인이 한다고 했을 때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좋은 표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죠.

여하간 저에게는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색칠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솜씨가 좋지 않아서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는 작품이 완성되기도 했거든요. 그러다가 처음 컬러링 북으로 색칠을 하기 시작했는 데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게 색칠하면서 컬리링북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색칠하게 된 컬러링북  『BLOSSOM(블로썸)』은 더욱 더 컬러링북에 대한 생각을 한층 바꾸게 했습니다. 아기자기한 모습도 많고 귀엽기도 한데 그런 걸 다 떠나서 색칠하면서 추운 겨울 봄을 만끽하는 재미도 쏠쏠하더군요. 더욱이 이번엔 색연필 48색을 구매해서 다양한 색상을 칠하는 재미도 있었고요.

 

 

제목에 걸맞게 상당히 여성스러우면서도 봄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디자인이 많습니다.

 

 

 

 

 

 

 

 

 

특히 전체적으로 유독 꽃무늬가 많아 즐겁습니다. 어려운 것 처럼 그림이 많기는 하지만 잘 보면 꽃 그림이 주를 이루는 탓에 의외로 색칠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습니다. 문제라고 한다면 다 너무 이뻐서 어떤 것부터 색칠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점 하나일까요.

 

 

며칠 동안 찬찬히 살펴보면서 제가 고른 디자인은 바로 이 부츠. 어떻게 칠해줄까 매우 고민하며 색연필을 꺼내 들었습니다만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게 함정. 현재 저것보다는 좀 더 진척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이틀 전에 찍은 사진을 올려봅니다.

제가 투자하는 것에 비해서 색칠 속도가 매우 느려서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직 제대로 완성을 못했습니다. 저는 의외로 색 고르는 데 엄청 오래 걸려서 남들 하나 칠할 때 쯤 색 골라서 느릿느릿 색칠하고 있더라고요, 저... T^T

아직 완성하려면 좀 멀었지만 다 완성되면 완성된 컷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5년 전에 끝난 사랑의 상처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가호.

연상의 남자와 불륜 관계에 있는 시즈에.

 

이 둘은 오랜 친구로 언제든 아무 이유없이 연락해 안부를 묻고 만나기도 하는, 제3자의 눈에 비친 그 둘은 매우 사이 좋은 친구입니다. 그러나 오래 만나고 친한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의 생활에 부닥치고 변해가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한발자국 정도 서로를 멀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요. 친하기 때문에 건드렸던 상대방의 상처와 반응 때문에 분명 친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뜨끈 미지근한 관계가 되어버린 가호와 시즈에. 그러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는 그런 친구 관계입니다.

『홀리가든』은 이 두 명의 에피소드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특별할 것도 없고 그 사람 개인의 인생에선 큰 일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에피소드가, 혹은 스토리와 관계없어 보이는 에피소드가 등장해 대충 훑을 때는 큰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캐릭터.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체로 남들이 보기에 조금 껄끄러운 사람들이 나옵니다. 불륜, 게이 등 소위 말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그러나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의 책에 등장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매우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소소하게 그려냅니다. 그들도 우리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저는 가호와 시즈에 두 명에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가호를 흠모하며 다른 남자와 자고 다니는 그녀를 알면서도 말리지 않고 묵묵히 바라만 보는 나카노, 시즈에의 연인 세리자와, 가호가 일하는 안경점의 점장 코끼리 다리까지. 여기에 나오는 등장 인물 중 제 마음을 확 사로잡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솔직히 아무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한 건 어딘가 모르게 저와 닮아 있구나 싶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보상 받지 못할 사랑을 끝내지 못하고 이도저도 못하는 사람, 불륜인 걸 알지만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 잊어야 하는 과거임을 알면서도 현재까지 부여잡을 수 밖에 없는 사람. 친하다고 생각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마는 사람.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

 

『홀리가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상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와 일상성 때문에 나의 이야기같고 친구의 이야기같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경향이 있습니다. 그탓인지 책을 놓을 수 없겠더군요. 이상한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흠뻑,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장 한장 책을 넘겼습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역시 가호와 시즈에. 이 둘의 이상한 관계에 나도 저런 친구가 있는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이 둘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을런지, 이야기는 많은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습니다. 친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이해하지 못해 멀어지고 그러면서도 떨어지기 힘들어 다시 만나는 우리의 이야기. 과연 시즈에와 가호는 다시 마주보고 환하게 웃을 수 있을런지, 있을 거라고 상상해보며 책을 덮었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보기 좋은 책입니다.

 

늘 그렇다. 한번 깡통을 열고 나면 끝내는 쓰쿠이의 망령이 온 사방에 들러붙는다. 망령은 기억이 되어 가호의 일상을 파먹고, 한시도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호는 마치 쓰쿠이가 뒤에서 꼭 껴안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곁에 있어주었으면 싶을 때는 있어주지 않았으면서, 하고 생각하며 가호는 원망스러운 듯이 장롱 위에 있는 깡통을 올려다보았다. 참 내, 뭐가 슬프다고 쉬는 날까지 나카노를 만나야 한담. 더구나 내가 선택한 일이다. 평소처럼 얼마든지 거절할 수도 있었다. 이 방에서 혼자, 아니 쓰쿠이와 둘이 있기가 두려웠다. 두려워서, 누구든 데리고 나가주었으면 했다. 그런 심약한 자신에게 가호는 실망하고 만다. 우울에서 도망칠 방법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다면 난 바보, 라고 생각한다.

쓰쿠이도 툭하면 그런 말을 했다. 가호는 정말 바보로군. 정말 바보다. 쓰쿠이의 목소리, 쓰쿠이의 눈. 벨리 울려 가호는 해방된 기분으로 일어선다. -P.96~97

나카노는 로비의 소파에 걸터앉아 자칫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용기를 내야지, 하고 생각한다. 도중에 도망치면 사태는 점점 악화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도망치는 것은 가장 비열한 행동이라고 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린다.

간단하다. 늘 하던 대로 경쾌하게 웃으면서, `왔어, 나`하고 말하면 끝이다. 가호의 친구가 내리면,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그만이다.

결단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차분해져, 대체 뭣 하러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하고 자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자답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그럴수도 없어 생각만 머릿속에 맴돈다. 결국 나카노는 한번 시작한 일은 도중에 그만둘 수 없다는, 거의 억지에 가까운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 가호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중요한 가설을, 하루가 다르게 근거가 없어지는 그 믿음을, 그래도 나카노는 믿고 싶었다. 이쪽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쪽이 분명한 현재라고. -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만난 건 이웃 리니님 덕분이었다. 아마 그 때 그 리뷰를 보지 못했더라면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눈에 강렬히 내려꽂히는 제목과 흑백 표지는 분명 인상 깊었지만 몇장 들추었을 때 느낀 것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였다. 그리곤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리니님의 블로그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고 나서야 기억해냈다. 읽어야겠다, 마음 먹은 것도 그 때. 리니님이 걱정하셨을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라 조금은 고심했지만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글쎄, 읽기는 잘했다. 남은 것도 있다. 다만 글로 표현하기가 참 힘든 책이다 싶었다. 

 

 

『육체 탐구 생활』는 칼럼니스트 김현진이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에세이다. 자신의 몸에 하나, 둘,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경험을 담았기에 제목에 강렬히 육체, 탐구, 생활이란 단어가 조화를 이루어 제목을 만들어냈다. 후반부에 들어가면 내가 정치 이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김현진의 정치색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주제로 엮인 거야? 싶은 글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맨 첫 표지로 돌아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아, 이 모든 게 저자의 몸에 새겨진 잊혀지지 않는 기억, 추억, 상처를 모아 만든 책이었지 싶은, 웃음이 나왔다가 묘하게 숙연해지기도 하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영혼의 성숙, 성장을 바란다. 육체는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법이라고, 육체를 사랑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지만 실상 우리의 영혼을 담아내는 그릇은 몸이고, 결국 우리의 손에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 또한 몸이라는 것을 종종 잊고 산다. 만져지지 않는 것을 좇으려고 하나 결국 우리는 만져지는 것만을 믿고 사는데도 육체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지금껏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육체 탐구 생활』은 조금 껄끄럽다.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육신에 대한 이야기, 기륭전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의 상처, 금식 등 자신의 몸이나 타인의 몸에 난 상처와 흔적으로 기억되는 추억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간다.

 

 

내가 껄끄러워했던 수많은 문장들이 거기서 비롯되었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노골적이고 담담하게 묘사를 한다. 아니 그게 묘사일까. 그저 적는다. 자신의 가슴 께에 갑작스럽게 생긴 멍을 보며 오래 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라며 울부짖으며 자신을 걷어찼던 이를 생각해내고, 고독과 외로움에 사무친 모습 그대로 손톱 끝으로 살짝 자신의 손목을 건드리고 놀라버린 장기 복역 출소자의 모습에 이기적인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내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가슴 아프면서 절절하고, 불쾌하며 괴롭고, 외로운 기억이 육체에 새겨진 채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어째서 잊고 살았던지.

 

 

물론 여전히 불편한 문장들 또한 숨쉬고 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읽어보면 좋을 텐데 싶은 사람들이 몇몇 떠오르기는 하는데 딱 그 정도다. 물어보면 스치듯 책 제목을 추천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꼭 읽어봐, 라고 말하기엔 쉽지가 않다. 술술 읽히는 글에 담긴 메세지가, 무겁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또는 나와 맞지 않아 오랜 고민을 하게 되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떤 점이 좋았는데? 라고 묻는 다면 글쎄,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글을 남기기 위해 글을 적어내려가면서도 제목 옆에 쓸 내가 느낀 주제 또는 가장 중요한 문장 등을 표현해줄 문구가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생각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듯 싶다. 책 문장에서 하나를 뺏겨볼까. 앞뒤가 잘려나간 문장은 내가 느낀 바를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가짜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적었다. 너무 멀리 나갔나, 이게 뭐지, 싶긴 한데 수정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저걸 떠올렸나. 책을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진 않겠다. 그냥 끌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혹시 끌려 서점 같은 곳에서 좀 보고 사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치듯 보면 선뜻 다시 책을 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서점 등에서 서서 또는 앉아서 읽기에도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라, 끌린다면 차라리 도서관 등에서 빌려다가 시간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어느 샌가 손톱을 까득 물어대며 몰입할 지도 모른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랄 지도. 이 책은 나의 육신에 상처를 남겼다. 종이를 무심코 넘기다가 베이고, 손톱을 깨물어대다 살점을 짓이겼다. 아프단 생각이 들었다가 이게 이 책이 나의 육시에 남긴 기억인가보다 싶어 그냥 두었다. 그런 책이었다.



나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에 더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고통을 자꾸 삼키면 꿀꺽 넘어가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알 만한 나이가 됐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친숙한 어둠을 떠나 보내기 싫어서. 아프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며 마음의 상처를 모른 척하니 대신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줬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어느새 멍이 사라졌다. 한 움큼 집어먹은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자 훨씬 편해졌다. 몸은 어리석은 나에게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해줄까. 나는 그걸 지금 정도만큼이나 제때 알아듣기나 할까. -p.104

왜 남의 손을 만지고 그러세요! 하기엔 마음이 뭔가 찡하고 울렸어요. 사실 만졌다고 하기에도 뭐한 찰나의 순간이었어요. 그냥 내가 대신 마구 억울했어요. 그 좁은 방에서의,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긴 고득이. 한번 달라고 치근대기는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을 시간들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가락도 아닌 손톱 끝으로 여자애 손목을 살짝 건드려만 보는, 죽어도 내가 알 수 없을 그 고독의 무게가. 아마도 그 고독 때문이겠죠.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키스를 할 줄 알던 남자보다도, 능란하게 여자를 안을 줄 알던 남자보다도, 몸과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남자의 감촉을 골라보라면 아무래도 그때 그 짧은 순간, 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은. -p.151

한국에서, 싸우는 여성은 모두 안티고네다. 연약한 단독자, 슬픈 단독자, 어둡고 캄캄한 굴 속의 그 안티고네의 일당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앉아서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당신이 준 그 얼마 안 되는 음식물로 버틸 수 있을 때가지 버티다가 목숨을 끊기느니 모질게 매듭을 지은 끈으로 스스로 끊고야 말겠다고. 당신이 강퍅해질수록 국가와 우리의 끈은 희박해질 뿐이라고, 기어코 굶겨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느냐고. 정녕 목을 매서 죽어야 속이 후련하겠느냐고. 더 이상 안티고네의, 하이몬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굴 속에 넣어준 고작 그 만큼의 음식물로는 안티고네를 살릴 수 없다. 이제는 길 위의 피를, 멈춰야 한다. 그 피가 시작된 바로 이 길 위에서. -p.2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까칠한 오베가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