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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세 개 - 십대에게 보내는 9인 9색 멘토링 에세이
강수돌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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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세 개

-나의 허물을 얼마나 벗은 걸까.

 

멘토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의 멘토는 누구인가. 사실 책이든 신문이든 멘토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말한다. 당연히 누구라도 근사한 멘토가 있어야 한다는 말투다. 하지만 무작정 멘토를 찾기에는 그 이유나 좋은점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다. 이 책은 십 대에게 보내는 9인9색의 멘토링 에세이다. 그들의 멘토를 언급하며 9인의 멘토가 누구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멘토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그저 훌륭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대상은 ‘그림의 떡’이지 멘토가 아니다. 멘토는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한다. 또 나의 가능성을 알아줄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저 외형이 멋지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무나(아무것이나) 멘토로 삼는다면 그건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내가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게도 참 다양한 멘토들이 있었다. 중학교 때 좋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중3때 담임선생님이었는데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며 ‘나를 이기는 것’이 ‘남을 이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물론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셨던 선생님이다. 한 눈 팔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높이 사주신 분이다. 책에도 나온 말처럼 “좋은 선생님은 잘 가르치고 훌륭한 선생님은 스스로 해 보인다. 위대한 선생님은 가슴에 불을 지른다”. 그 이후 내 가능성을 봐주신 선생님 덕분에 어떤 환경에서도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살 수 있었다. 김명곤 씨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술회했다. 입시 공부에 숨막히고 힘들었던 시절 해박한 한문학 지식과 역사 지식을 섞어 말씀해주신 귀한 선생님이 있었다고. 그 선생님과 편지도 주고받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이다. 때론 많은 말을 해주지 않아도 멘토로서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책이 멘토가 되기도 한다. 강수돌 씨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좋은 멘토가 돼줬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표 앞에서 책이 좋은 답을 내려준 것이다. 더 많은 소유를 통해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많이 삶을 음미하고 나누는 것이 존재 양식의 삶이라고 했다. 이 고백 속에서 나의 삶을 반추해봤다. 나는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 중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채워도 끝이 없는 소유의 욕망 속에서 지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내가 가진 것들에 ‘충분한 정도’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차고 넘친다면 나눌 줄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소중한 메시지를 얻었다.

 

홍세화 씨는 외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적었다. “보잘것없는 미물도 허물을 벗어야 성장하거늘, 사람은 허물도 벗지 않고 나이만 먹으면 성장했다고 한다”는 내용이 가슴을 울렸다. 나이는 계속 먹고 있는데 나는 나의 허물을 얼마나 벗은걸까.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는 것인데 나는 나의 허물을 벗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다보니 <개똥 세 개>라는 책이 나에게 좋은 멘토가 돼주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주변 사람, 나의 삶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것, 그 어떤 것이라도 멘토가 될 수 있다. 수동적으로 멘토를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찾아보자. 그럼 더 많은 울림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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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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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사는 법

 

좋은 음악을 들을 때는 귀가 즐겁다. 핵심 포인트가 되는 멜로디가 있고 그 멜로디를 받쳐주는 세부 멜로디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고 책도 그렇다. 강약이 살아있는 콘텐츠는 향유하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지루하지 않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며 고수들의 삶이 바로 잘 만들어진 콘텐츠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수들은 뭔가를 할 때 미리미리하지만 심플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이 더 어려운데 그들의 삶은 단순하다.

 

<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라는 책은 저자의 내공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저자도 글쓰기의 고수였다. 막힘없이 줄줄 읽을 수 있는 문체와 글의 길이. 적절한 예시와 허를 찌르는 시각들은 책의 강약이 잘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가 글쓰기로 몸소 보여준 것처럼 고수의 사는 방식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심플함, 간결함이었다.

 

고수들이 가진 능력 중 직관과 직감에 대한 분석부분은 날카로웠다. 대부분의 고수들은 직관력이 발달해 있다. 하나를 보고 열을 바로 캐치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활의 김태원은 오디션에서 걸어들어오는 지원자의 걸음걸이만 봐도 그가 노래를 잘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노래에 자신있는 지원자는 걸음걸이도 당당하고 특히 왼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면 더 정확하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왼손도 흔들림이 없다. 그러한 판단은 그가 수없이 겪은 경험들과 관찰의 결과물이다. 특히 고수들에게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는 것. 사람을 판단하고 어떤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지도 직관적으로 안다. 이것은 직감과는 다르다. 직감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감에 의존하는 것이다. 마치 경마장에 가서 왠지 1번마가 1등을 할 것 같아라며 1번에 거액을 거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직관은 수많은 데이터, 경험이 축적돼 이룬 결과물이다. 수없이 실험해보며 얻은 결과라는 것이다.

 

고수들은 주제파악도 잘 한다. 사람은 다 제각각 그릇이 다르다. 큰 그릇의 사람은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고 작은 그릇의 사람도 자기에게 맞는 일이 있다. 여기서 고수들의 말. 큰 그릇의 사람이라도 자신의 그릇보다 다소 작은 그릇의 일을 잘 해나가는 것이 더 이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큰 그릇의 사람이 큰 일을 하면 좋지만 설사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작은 일을 잘 해내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차근차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반면 작은 일을 불평하며 하다가는 큰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또 자신의 주제파악을 잘 해서 이 조직에 있기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야 한다. 반면 아무리 큰 그릇의 사람도 자만하면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으로 평가될 것이다. 당신은 큰 그릇의 사람인가? 아니면 작은 그릇의 사람인가? 큰 그릇의 사람이라면 큰 그릇에 맞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작은 그릇의 사람이라면 겸손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심플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도전과 경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실패를 많이 해보자. 실패적인 성공 하나를 하는 것보다는 성공적인 실패를 많이 해서 고수의 직관력을 가져보자. 참 탐나는 능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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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탈무드 장자
장자 지음, 이성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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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탈무드 장자

-발상의 전환이 낳은 결과

 

요즘은 뻔한 게 통하지 않는 시대. 인풋과 아웃풋이 넘치는 시대에 잡스러운 이야기를 생산해봤자 그저 그런 결과물만 첨가하는 것 뿐이다. 이럴 때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뻔하지 않은 얘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의 도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동양의 탈무드 장자>란 책을 읽으며 주목했던 점은 내 상식을 깨는 문구들이었다. 먼저 지혜는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것. 스펙이 중요한 시대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에 뭔가를 주입한다. 나만해도 수많은 책을 읽으며 노력하면서도 고민한다. 과식하는 사람이 그것을 소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음식을 탐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내가 읽은 것들을 소화하기도 전에 잘 전시된 다른 책들에 눈이 간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하고 지식은 무한하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서 무수한 지식들을 머릿속에 넣는다고 해도 그 지식들을 다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지식이 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한한 지식보다는 지혜에 초점을 맞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장자의 말처럼 지혜는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아는 것이라도 잘 관찰하고 되씹어 지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시시콜콜 따지지 말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나는 매사에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질문이 많아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 지나치게 이성적이기에 감성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좋다. 물고기가 떠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한 장자. 그에게 물고기가 기쁜지 너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는 혜시. 이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원래 사물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장자의 기쁨이 물고기의 기쁨으로 표현된 것을 혜시는 너무 이성적으로 따지고 든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꽉차서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감정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여유와 유머는 바로 이런 비어있는 여백을 잘 활용할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거목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무 생각도 안 나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도 접했지만 위대한 발견은 모두 자연을 관찰하고 그 이치를 보다가 이룬 것이라고 한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 자연을 관찰하며 이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거목을 보며 또 한번 머리를 쾅 치는 이야기를 한다. “이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기에 결국 천년을 살 수 있었다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쓸모있는 나무와 아닌 나무를 귀신같이 구별한다.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면 베어 사용했을 것이다. 쓸모있음이 수명을 단축한 것이다. 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거목이 될 시간을 벌게 된다. 때로는 지나치게 튀는 인생, 잘 나가는 인생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만물은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다. 성공이 클수록 그만큼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현상을 봐도 발상을 전환하면 의미있는 지혜가 된다. 지금이라도 자연을 거닐며 뭔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기쁨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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