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탈무드 장자
장자 지음, 이성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동양의 탈무드 장자

-발상의 전환이 낳은 결과

 

요즘은 뻔한 게 통하지 않는 시대. 인풋과 아웃풋이 넘치는 시대에 잡스러운 이야기를 생산해봤자 그저 그런 결과물만 첨가하는 것 뿐이다. 이럴 때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뻔하지 않은 얘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의 도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동양의 탈무드 장자>란 책을 읽으며 주목했던 점은 내 상식을 깨는 문구들이었다. 먼저 지혜는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것. 스펙이 중요한 시대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에 뭔가를 주입한다. 나만해도 수많은 책을 읽으며 노력하면서도 고민한다. 과식하는 사람이 그것을 소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음식을 탐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내가 읽은 것들을 소화하기도 전에 잘 전시된 다른 책들에 눈이 간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하고 지식은 무한하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서 무수한 지식들을 머릿속에 넣는다고 해도 그 지식들을 다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지식이 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한한 지식보다는 지혜에 초점을 맞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장자의 말처럼 지혜는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아는 것이라도 잘 관찰하고 되씹어 지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시시콜콜 따지지 말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나는 매사에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질문이 많아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 지나치게 이성적이기에 감성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좋다. 물고기가 떠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한 장자. 그에게 물고기가 기쁜지 너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는 혜시. 이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원래 사물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장자의 기쁨이 물고기의 기쁨으로 표현된 것을 혜시는 너무 이성적으로 따지고 든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꽉차서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감정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여유와 유머는 바로 이런 비어있는 여백을 잘 활용할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거목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무 생각도 안 나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도 접했지만 위대한 발견은 모두 자연을 관찰하고 그 이치를 보다가 이룬 것이라고 한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 자연을 관찰하며 이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거목을 보며 또 한번 머리를 쾅 치는 이야기를 한다. “이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기에 결국 천년을 살 수 있었다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쓸모있는 나무와 아닌 나무를 귀신같이 구별한다.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면 베어 사용했을 것이다. 쓸모있음이 수명을 단축한 것이다. 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거목이 될 시간을 벌게 된다. 때로는 지나치게 튀는 인생, 잘 나가는 인생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만물은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다. 성공이 클수록 그만큼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현상을 봐도 발상을 전환하면 의미있는 지혜가 된다. 지금이라도 자연을 거닐며 뭔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기쁨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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