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김용택 지음 / 예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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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심심해 본 적이 있는가. 심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면 그나마 여유있는 삶을 즐기는 부류에 속한다. 저자는 농촌에 살며 심심할 때가 많다고 한다. 푸르른 자연과 논을 일구는 농부들을 보다보면 시를 쓰게 된다고도 했다. 너무 바빠서 여유라는 것이 없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며 사는 도시 사람들에게 ‘심심’이란 단어는 어쩌면 동경해야 할 ‘여유’가 아닐까 싶다.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는 저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낀 것들 중 가치있는 것들에 대해 담담히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와이프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 때 따라가서 싱싱한 식사재료들을 사는 것을 구경하고 마침내 밥상 위에 올라온 밥과 반찬들을 보는 것은 한 편의 예술을 보는 것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흰쌀이 밥으로 변하고 푸른 배추는 국으로 바뀐다. 쌀이든 배추든 자연의 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게 마련이다. 시들기 전에 물에 씻고 불에 올려 요리를 하면 밥과 국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이 예술이라고 치면 밥짓기는 훌륭한 예술행위다. 저자의 이런 시선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하루 중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찰할 ‘여유’가 있다면 저자의 이런 시선을 흉내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 아침, 저녁으로 먹는 밥과 반찬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경력답게 아이들과의 추억도 내용에 담겼다. 특히 한 제자가 거미줄에 달린 이슬을 보고 ‘가만히 들어보면 음악이 들릴까?’라는 내용의 시를 썼다고 한다. 이런 상상력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일까.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시나 소설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데...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거미줄을 보면 그냥 ‘피해야지’ 정도 외에는 어떤 감정도 가질 수 없는 나였기에, 도시인으로서의 삶이 처량하게도 느껴졌다. 사실 거미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모른다. 거미줄이 보이기 무섭게 없애버리는 것이 도시의 인심이니까. 나도 어렸을 적엔 그런 감성을 분명 가졌을 것 같다. 그것들을 더 잃어버리기 전에 삶이 주는 예술이 어떤 것인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예술이란 시간을 내거나 날을 받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면서 보고 하는 일들이 다 예술이 될 수 있다. 몇 달 전 쓸쓸한 집을 꾸미려고 사온 금전수가 거실에 있다. 처음엔 금전수 잎이 필 때마다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다기에 산 금전수. 이제는 햇빛과 물에 반응하며 휘기도 하고 새싹을 돋기도 하는 금전수를 보며 같이 숨쉬며 사는 동반자 같다는 감정이입도 된다. 뭔가를 키워본 적도 없는 내가 마음을 주고 같이 정을 나누는 것을 보니 이것 또한 예술활동이란 생각이 든다. 그냥 두면 시들 수 있는 식물에게 내 마음과 햇빛과 물을 줘 살리고 있으니.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내가 마음을 주면 그냥 구름이 아닌 것이 된다. 오늘은 뭘 관찰할까. 내일은 어떤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줄까. 생각에 따라 일상생활의 조그마한 것들도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진리를 이 책이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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