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 표민수 감독의 드라마 제작론
표민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당신의 인생대본에는 무엇이 써져 있는가

 

나는 드라마광이다. 평상시 드라마를 자주 보고 진짜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발견하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곤 한다. 드라마를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서 속으로 걱정을 한 적도 있다. 흔히 TV는 바보상자라고 하지 않는가. 생각 없이 보게 되는 내용은 영양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를 보며 인생을 배운다. 드라마 내용을 가지고 인생에 빗대 질문을 만들어 친구와 토론을 하곤 한다. 이 정도면 드라마 보는 것이 바보상자를 보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가 되지 않을까. 이런 내가 드라마 제작 과정에 대한 책을 이제야 읽게 됐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한국 드라마는 세계에 수출돼 뜨거운 호응을 받을 정도로 명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내용이 정말 현실 같아서 드라마 내용에 빠져 있을 때는 그 뒤에 수고한 많은 사람들을 잊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존재가 머릿속에 살아났다. 인간을 신이 만들었듯이 드라마를 만든 신과 같은 또 다른 인간들(연출가, 작가, 배우 등)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은 참 의미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균형’이란 단어. 저자는 어떤 관점에 대해서 극단보다는 균형을 취하는 사람이었다. 캐스팅을 할 때도 그의 지론은 여지없이 실현됐다. 연출자, 작가, 배우가 돌아가며 캐스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일할 맛이 난다는 것이다. 보통 캐스팅의 경우 한국 드라마 특성상 주연 배우를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인지도도 필요하고(요즘 드라마는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연기도 어느정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여러번 노출이 된 톱스타 위주로 캐스팅이 된다. 그런데 이들의 요구조건도 까다롭다. 상대역으로 자기보다 인지도는 낮으면서 자기보다 연기력은 좋은 배우를 원한다고 한다. 그래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나.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니 캐스팅이 연출의 반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배우는 시청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되는 결과물이다. 이 조합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스토리 변경과 연출자의 연출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

 

평소 궁금했던 점도 많이 해결됐다. 왜 드라마 감독들은 여자들이 많고 작가는 여자들이 많은 것일까. 저자의 설명은 이랬다. 보통 여자들은 스토리 지향적이고 남자들은 테마 지향적이다. 즉 여자들은 과정을, 남자들은 결과를 중요시한다. 직업의 특성상 스토리 과정 하나하나에 관여해서 창작해야 하는 작가를 여자가 한다면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작가와 연출자가 각자의 역할을 나눠하면 자신이 어떤 스타일이든 문제될 것은 없다. 작가가 테마 지향적이라면 연출자는 스토리 지향적으로 드라마를 끌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균형의 원리가 적용됐다. 누군가의 강점은 다른 이의 또다른 강점과 만나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식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인들의 충돌과 조화 속에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1+1은 2보다 훨씬 큰 시너지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연기에 대한 챕터는 흥미로웠다. 배우는 타고난 끼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토끼가 진 것은 타고난 뜀 능력을 과신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끼는 뛰는 것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능력인데도 거북이를 이기지 못했다. 하물며 연기가 생존을 위한 필수적 능력이 아닌 인간은 말해 뭣하랴. 당연히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흔히 연기는 감정만 잘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논리가 철저히 뒷받침되지 않은 연기는 가볍다. 깊이있는 연기는 감정과 논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배우들이 즉흥적으로만 연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뒤에는 치밀한 계산이 있는 것이다. 또 대본을 자세한 예언서라고 표현한 부분도 공감이 됐다. 배우는 드라마에서 자신의 역할의 탄생부터 끝까지 적혀있는 예언서를 받는다. 곧 대본이다. 인간의 인생은 대본이 없다. 매일 새로이 써내려가고 끝을 알 수 없지만 배우는 캐릭터의 마지막까지 적혀있는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한다. 그러니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심정으로 엄숙히 대본을 읽어나갈 것이다. 문득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인생을 살아보는 배우들이 부러워졌다. 나의 인생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써져 있을까. 어쩌면 드라마와 달리 나의 인생 대본이 미완성인채로 시간이 가고 있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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